#육아휴직 #시터할머니 #등원 #하원
#육아휴직 #시터할머니 #등원 #하원
남편에게 큰소리쳐서 어렵게 한 이사였다. 시댁에서 비용을 보태기까지 해주셨다. 나는 직장 가까이로 이사만 한다면, 애들 오전 오후 유치원 픽업을 다 할 수 있고, 애들 돌보는 것도 내가 다 하면서 직장 다닐 수 있다고 자부했다. 그러면서 직장 가까이로 이사를 왔고, 애들 돌봐주시는 시터 선생님의 비용은 아끼기로 했다. 회사에 가까이에 이사를 오니, 아침저녁 시간 나는 부지런히 움직이기만 하면 됐다.
그런데, 내 생각만큼 아침저녁 등원 하원을 모두 시킨다는 건 쉽지 않았다. 등원시간에는 아이들이 시간에 맞춰서 딱딱 밥을 먹고 옷을 입고 로봇처럼 착하게 문 밖을 나서주지 않았다. 하원을 할 때면, 항상 넓은 유치원에 우리 애들만 덩그러니 남아있는 게 항상 속을 후벼 팠다. 유치원 계단을 내려와 바깥으로 나오면, 바로 이어져있는 놀이터에는 1~2시간 일찍 하원한 아이들은 집으로 돌아가기 바빴다. 하원길 함께 했던 전업주부 엄마들은 삼삼 오오 짝을 지어 하하 호호 수다를 나누다가 눈인사를 하며 집으로 돌아가는 시간이었다. 텅 빈 놀이터에서 일찍 함께 하원을 못한 아이들에 대한 죄책감을 내려놓느라, 저녁 8~9시가 되도록 놀이터에서 노는 두 딸들에게 집으로 돌아가자고 말을 못 했다. 나는 매일 저녁 너무 배가 고팠고, 하루종일 긴장했던 직장생활에 저혈당이 몰려왔다. 아이들을 집으로 데려와 씻기고 저녁을 먹이고 재우기까지 나는 체력이 없었다.
무엇보다도, 일을 다 끝마치지 않은 채 정시에 퇴근한다는 게 나 스스로 용납이 되지 않았다. 한참 많은 역할이 요구되는 과장 직급이었고, 저녁 시간 인적 네트워킹도 활발히 해야 하는 시기였다. 하지만 이 모든 것들을 뒤로 한채 나는 아이들 하원에만 목매달아 있었다. 스스로 나는 다 할 수 있다고, 눈에 쌍심지를 켜가며 이사를 한 나였기에, 남편에게 볼맨소리조차 못했다. 생각처럼 직장과 육아의 병행은 쉽지 않았다.
큰 마음을 먹고 작은 아이 육아 휴직 남은 기간을 마저 쓰기로 했다. 그 당시 남은 육아휴직을 쓰는 법령은 있었어도, 직장 내에서 남은 기간을 써보겠다고 손을 드는 이는 없었다. 마음속으로는 슬그머니 퇴사를 결심했다. 아침 등원 길 자신이 입은 코트 색깔이 마음에 안 든다고 투정을 부리는 둘째 때문에, 닫았던 현관문을 다시 열쇠로 열고 애들 방으로 신도 벗지 못한 채 뛰어들어와서는 둘째가 원하는 '토끼옷'을 집어 들고는 "토! 끼! 옷!!! 토끼옷!!! 이놈의 토끼옷!!!" 하고 미친년처럼 득음하듯 소리를 지르는 나를 발견하고서부터였다.
어렵사리 쓴 육아휴직이 이제는 끝나가고, 나는 복직을 앞두고 있다. 그런데 도저히 복직하기 전처럼 나는 아이들 모든 것을 감당해 낼 자신이 없다. 내가 버는 월급을 다 갖다 줄지언정, 아이들 돌봐주시는 분을 구해야겠다고 마음 먹었다. 좋은 분을 만나고 싶다는 염원을 담아 동네 네이버 카페에 구인 글을 하나 올린다.
"저는 맞벌이입니다. 아이들 하원하면 오후 2시부터 제가 퇴근할 저녁 8시까지 우리 아이들을 돌봐줄 분을 모십니다. 딸 둘이고, 아이들은 유치원을 다니고 있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