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학생 때였을 것이다.
어느 볕 좋은 토요일 오후로 기억된다.
이발을 하러 찾아간 동네 허름한 이발소의 낡은 소파엔
한 가족이 앉아 차례를 기다리고 있었다.
검은색 안경을 낀 아빠는 허공을 바라보며
알았다는 듯 연신 고개를 끄덕이고 있었고,
그 옆에 바싹 붙어 앉은 여덟 아홉 살쯤 보이는 아들은
손짓 발짓을 더해가며 TV에서 중계하는 고교야구경기의 상황을
눈먼 아비에게 설명하고 있었다.
나병을 앓았는지 코가 심하게 문드러진 엄마는
그 부자의 모습을 가만히 그리고 흐뭇하게 바라보고 있었다.
마흔여섯 해를 살았지만
아직 그보다 더
행복한 광경은 본 적이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