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금자-출금자
아들이 명절날 전화 한 통을 하지 않았다.
그래도 대한민국 국민이라면 명절이라는 것이 무엇을 뜻하는지 알 텐데...
생존만이라도 알리라 했건만.... 꼰대 같은 기준인지는 모르겠지만 명절에 연락도 안 하는 아들의 행동이 서운했다. 시간이 갈수록 서운함은 분노로 바뀌어갔다. 명절 기간이 지나고도 연락이 없는 것을 보며 나는 가만히 있지 않기로 했다. 가족 가톡방에 글을 남겼다. 한 마디로 "너 그렇게 사는 거 아니야. 기본도 안된 놈이 뭘 한다고 하는 게 웃기는군." 이런 말은 아니지만 맥락은 같다. 답장이 없었다. 며칠이 지나 나는 작은 아들의 고등학교 배정 소식을 알리는 글을 가족 카톡방에 올렸다.
큰 아들은 뜬금없는 장난 섞인 대답과 이모티콘으로 채팅창에 나타났다.
수그러들던 감정이 또 올라왔다.
오후에는 아들로부터 부재중 전화가 들어와 있었다.
아들에게 전화를 거는 대신 매달 부치는 돈을 입금했다.
다음 날 밤, 아들이 내게 전화를 걸었다. (명절이 지난 3일째)
“어 그래.”
“아휴.. 힘드네요. 그동안 너무 바빴어요.”
“그래? 바쁘지. 바빴겠지? 앞으로 더 많이 바쁘고 정신없을 텐데 명절날 전화 한 통을 할 시간이나 문자 하나 남길 여유가 없다는 게 참 이해가 안 된다. 너희 동생한테 너도 너희 형처럼 저렇게 명절에도 전화 안 하고 그렇게 살 거냐?라고 했다. 그건 기본이 안된 건지. 제일 중요한 게 무엇인지 알아야지. 화장실 갈 시간이면 충분히 문자나 전화할 수 있는 거지. 할아버지 할머니한테 간단한 안부 말씀 드리는 것이 그렇게 어려울까? 돈 버는 거 네가 하는 일에 최선을 다하는 것도 중요하긴 하겠지만 이런 작은 일을 하지 않고 뭔가를 이뤄내는 것이 그렇게 대단하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어쨌든 앞으로는 그렇게는 하지 마. 명절에 전화 한 통, 문자 하나 하는 것 그게 더 중요한 거야. 넌 그걸 안 했어. 네가 기분이 나빠도 어쩔 수 없어. 엄마는 이 말을 꼭 해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무슨 일로 전화한 거야? ”
“.....(한숨)”
“엄마가 지금 운전 중이라 다음에 통화하도록 하자.(전화 끊음)”
속이 시원했다. 나는 애들을 키울 때부터 나름의 기준을 가지고 있었다. 아무리 공부도 중요하고 아이들이 상처를 안 받는 게 중요하다고 하지만 남을 생각하지 않거나 기본을 지키지 않을 때는 엄하게 교육해야 한다는 입장을 고수했다. 그럴 때마다 내 지인들은 그렇게 교육하는 것이 어려운데 내가 대단한 사람인 양 얘기를 했다.
왜 나는 아이들에게 할 말을 하는 사람이 되었나?
그것의 근간은 나의 생각이다.
아이들이 좋은 대학을 가거나 훌륭한 배경을 가지는 것이 최고라고 생각하지 않았다.
제일 중요한 것은 기본을 지키는 것이었다. 애가 마음이 상한 이유가 오롯이 자신의 기분이나 이기적인 태도 때문이라면 가차 없이 교육을 시켰다.
"아이와 원수 되면 어떡해?"
"그러다 집 나가면 어떡해?"
걱정하는 말을 했다.
나는 그런 것으로 부모와 원수 되고 부모에게 대들거나 가출하면 이미 그 아이는 명문대를 가도 엄청난 돈을 벌어도 부모와의 관계는 끝이 나고 훌륭한 사람은 아니라는 생각을 가졌었다.
시간이 흘러 그렇게 큰 아이는 성인이 되었는데 나의 기준에서 아닌 행동을 하니 열이 차 오르는 것이 여러 번이다. 내 생각은 바뀌지 않았다. 그래서 성인이 된 아이에게도 같은 기준을 말했다.
이 일로 연락을 끊는다면 이미 아들은 내가 우려하는 상태일 것이 뻔하다.
하지만 나이가 드니 달라진 것은 있다. 반성과 여러 가능성들을 생각해 본다.
'다른 방식으로도 표현할 수 있지 않았을까? 혹시 아이에게 내가 생각지 못했던 상황이 있었을까? '
사죄? 화해? 의 의미로 아들에게 줄 빵을 만들었다. (5시간 동안) 소시지야채빵, 소금빵, 쿠키를 만들었다.
오늘 아침 일찍, 빵이 가득 담긴 상자를 9시 5분에 택배로 보냈다.
얼마 전 친구가 독립한 아들의 근황을 물었다. 그간 있었던 일들도 많지만 정리한 것을 다시금 꺼내고 싶지는 않았다. 엄마와 아들과의 관계를 명료하게 설명해 주었다.
“엄마와 아들의 관계는 입금자와 출금자 관계야.”
"그럼 거래 관계네."
"거래는 주고받는 개념이지. 그냥 일방적으로 입금하는 사람이 부모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