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렇게 나는 사업 PM이 되었다 #3
지지난 글, 지난 글과 이어집니다. 차례로 봐주시면 좋겠지만, 읽지 않으셔도 이해에 지장은 없습니다.
내가 봐도 나는 괴짜였다. 아무도 시키지 않은 일, 기대하지 않은 일에 매달리곤 했으니까. 하지만 게임이 좋아 업으로 삼은 사람들은 이를 '덕업일치'에서 온 열정, 낭만으로 받아들여주었다.
덕분에 직상 생활은 순풍에 돛 단 듯했다. 올해의 신입 사원상, 사내 컨퍼런스 우수 세션상 등 각종 상을 연달아 거머쥐고 언론사에서 취재 요청을 보내오는 등 그야말로 승승장구했다.
이처럼 직장 생활이 재미와 뿌듯함으로만 가득하면 얼마나 좋을까. 하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았다.
주변에서는 내게 늘 색다른 무언가를 바랐다. 더 새로운 접근, 더 따스한 감성, 더 효율적인 도구. 즐겁게 재잘대던 상상이 전에 없던 경험을 만들어내야 한다는 강박으로 바뀌니 신호가 오기 시작했다. 출근길엔 어지럼증과 헛구역질이 찾아왔고 퇴근 후엔 심장이 쿵쿵 뛰며 이유 없이 눈물이 나 잠을 이루지 못했다. 혹시 큰 병일까 두려워 어머니께는 말 한마디 못 하고 조용히 검진을 받았다. 결과는 번아웃. 가벼운 불안장애, 공황장애도 의심된다는 소견이었다.
행복하지 않은 내가 주변을 행복하게 할 수 있을 리 없었다. 설상가상으로 조직 개편이 단행되면서 나를 지탱해 주던 사람들과도 멀어졌다. 그렇게 전력으로 좇아오던 것들을 한순간에 잃어버린 듯한 날들이 이어졌다.
얼마나 방황했을까. 나를 걱정스러운 눈으로 바라보던 동기가 이야기했다. 글 쓰는 걸 특히 좋아하니 이참에 GM에서 CM으로 커리어를 전문화해 보는 게 어떻겠느냐고. 마침 병원에서도 사람이 같은 장애물에 반복해서 부딪히다 보면 결국 닳아버린다며 가능한 근로 환경, 내용을 바꾸어보라는 조언을 한 차였다.
약 3년이라는 시간 동안 나를 포근하게 품어준 둥지를 뒤로한 채 연약한 날개를 펴는 것은 실로 두려운 일이었다. 그러나 태어나려는 자는 하나의 세계를 부수어야 한다고 했다.
이제는 나아가야 할 때였다.
CM으로서 수행한 업무는 GM의 것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비교적 특이한 부분이 있다면 유튜브 콘텐츠 기획, 출연, 편집을 직접 했다는 것이다.
당시 담당했던 게임에는 여러 종류의 이벤트 재화가 존재했다. 이벤트 기간에 주어진 임무를 해결하여 재화를 얻으면 필요한 아이템과 교환할 수 있고 기간이 종료되면 사라지는 식이었다. 나는 만료일을 잊어버리는 바람에 기껏 모은 재화를 날려버리기 일쑤였다. 유저들은 더할 게 분명했다. 그래서 매주 금요일 종료 예정인 이벤트와 관련 재화를 상기시키는 영상물을 기획했다.
초반 영상은 버추얼 유튜버처럼 간판을 앞세웠다. 볼거리보다 정보를 제공하는 데 초점을 맞춘 데다, 많은 품을 들일 수 없는 상황이었기에 최소한의 공수를 들이려 했다. 내가 카메라, 마이크 앞에만 서면 딱딱하게 굳어버리기도 했고.
그런데 시간이 지남에 따라 얼굴을 보여달라는 요청이 쇄도했다. 정지된 이미지 대신 움직이는 인물이 등장하면 다양한 소식에 한층 쉽게 집중할 수 있을 것 같다는 의견이었다. 동료들 역시 보다 진정성 있는 커뮤니케이션을 위해 얼굴을 비추는 게 좋겠다며 촬영 지원, 동반 출연, 정규 업무 백업 같은 지원을 아끼지 않았다. 다시 생각해도 참 고마운 일이다. 많은 사람의 도움에 힘입어 이 콘텐츠는 파일럿 프로그램에서 정규 프로그램으로, 라디오에서 보이는 라디오로 발전했다. 또 주요 VoC와 반영 예정 사항을 안내하는 코너도 추가됐다.
그러나 문제가 있었다. VoC를 취합하고 읽는 것은 내 힘만으로도 할 수 있었다. 그러나 VoC를 게임에 반영하는 것은 달랐다. 먼저 게임의 방향과 구조, 조직의 상황 등 현실적인 여건을 따져보았을 때 적용 가능한 내용인지 검토해야 했다. 다음으로 세부 사항을 설계, 구현, 검증해야 했으며 심미적인 요소를 곁들여야 하는 경우 더 많은 시간이 필요했다.
이러한 사정을 듣고 "그래도 회사가 유저의 목소리를 인지하고 있다는 걸 알게 되었으니 기대하며 기다리겠다"라고 말하는 유저도 있었지만, "알면서 왜 들어주질 않느냐, 진심이라면 결과를 보여달라"는 유저도 적지 않았다. 내가 유저였더라도 동일한 반응이었을 터라 서운하진 않았다. 그저 스스로가 너무 무력하게 느껴졌고 좋아하는 사람들에게 무엇 하나 해줄 수 없다는 사실이 속상했다.
그즈음부터 직군 변경을 고려했다. 기획, 개발, 운영에 지금보다 깊이 관여할 수 있다면 유저들에게 더 많은 것을 적극적으로 해줄 수 있으리라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지금까지의 커리어와 관심사를 바탕으로 선택지를 좁혀나간 끝에 사업 PM의 길을 걸어야겠다는 결론에 다다랐다.
GM, CM, 사업 PM이 한 팀으로서 합을 맞추고 때로는 서로의 업무를 유연하게 맞바꾸는 문화가 형성된 상태였기에 충분히 가능한 일이라 생각했다. 면담 결과도 긍정적이었다. 사업 PM, 그중에서도 인터넷 방송 생태계에 환한 사람이 필요하던 참이라 딱이었던 것. 하지만 인사 조치는 몇 가지 사유로 인해 거듭 미뤄졌고 기다리는 시간이 분기를 훌쩍 넘기자 몸도 마음도 지쳐갔다.
그러던 중 유망한 자리가 생겼는데 관심이 있느냐는 연락을 받았다.
제안은 더할 나위 없이 감사했고 마음은 굴뚝같았지만, 고민이 컸다. 이름과 얼굴을 걸고 오래오래 함께하자고 약속한 상황에서 개인적인 욕심 하나로 많은 유저를 저버리는 것 같았기 때문이다.
이에 직무 전환 경험이 있는 몇몇 분께 수 차례 의견을 구했는데 "그런 마음이라면 하루빨리 새로운 일을 접하고 배워 유저들에게 조금이나마 일찍 보답하는 게 낫지 않겠냐"는 답에 무릎을 쳤다. 아득히 먼 곳을 꿈꾸면서도 시선은 눈앞을 벗어나지 못했구나 하며. 그렇게 새로운 도전이 시작됐다.
면접은 어려웠다. 분위기는 평온했고 질문은 합당했다. 문제는 나의 마음가짐이었다.
그동안 나는 회사와 유저를 잇는 다리이자 만인의 조력자로서 다른 사람의 말을 귀담아들어왔다. 또 선택의 순간이 오면 단 하나의 정답을 고르는 대신 최대한 많은 답안을 끌어안으려 했다. 하지만 사업 PM은 본인의 주관이 뚜렷해야 했고 상대를 근거에 입각해 설득할 수 있어야 했다.
예를 들어 면접 도중 "빵집을 운영하게 된다면 유동인구가 많은 곳에 있는 빵집, 외진 곳에 있지만 단골이 있는 빵집 중 어느 곳이 좋은 가요?"라는 질문을 받았다.
나는 "주력하는 빵이 무엇인지에 따라 다를 것 같습니다. 싸고 빠르게 끼니를 때울 수 있는 빵 위주라면 전자, 비용이 좀 들더라도 느긋하게 맛과 형태를 음미하는 빵 위주라면 후자가 적합해 보입니다."라고 답했다. 운영 직군 면접이었다면 여러 유저, 부서, 상황을 고루 고려한 답변으로 평가받음 직 했다.
다만 사업 직군 면접에서는 적절치 않았다. 내가 지원한 프로젝트는 MMORPG였다. 장르 특성상 소수의 결제 유저가 전체 매출의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을 가능성이 높기 때문에 후자를 골라 게임과 연결 지어 설명하는 게 훨씬 바람직한 대답이었다.
추천해 주신 분을 뵐 낯이 없어 몇 날 며칠 괴로워하던 중 받아본 결과는 예상외의 합격이었다. 이게 도대체 무슨 일인가 싶어 어안이 벙벙했는데 "마음이 여려 보여 걱정되지만, 그래서 더 잘할 수 있는 부분도 있을 것 같아 지켜보려 했다."는 피드백을 받았다.
부족함 안에서 가능성을 봐주신 분들의 안목에 누가 되지 않도록 우유부단한 면을 보완하는 것은 물론, 나만의 강점이 될 수 있는 부드러움 역시 발전시켜 가야겠다고 생각했다.
미래를 향해 떠나는 것에 미련은 없었으나, 유저들에게 마지막 인사를 전하고 싶었다. 이에 며칠 밤낮으로 장문의 메시지를 작성했는데 아쉽게도 공개하지 못했다. 예나 지금이나 내 이직이 그다지 영향력 있는 사건이라고 생각하진 않지만, 누군가의 퇴사가 공공연하게 알려짐으로써 분위기가 흐트러질 가능성을 완전히 배제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이에 만에 하나 상처 입은 분이 없기를, 돌고 돌아 웃음 띤 얼굴로 다시 만날 날이 있기를 기도할 뿐이었다.
이것이 내가 게이머에서 게임을 돕는 사람을 거쳐 게임을 파는 사람이 되기까지의 이야기다.
이 글이 속한 매거진 '누군가는 게임을 팝니다'의 제목에는 총 두 가지 의미를 담고 싶었다. 하나는 게임과 유저의 마음을 깊이 파고들어 그들이 필요로 하는 것과 원하는 것을 찾아내려는 사람이 있다는 것, 다른 하나는 게임의 건강한 성장과 존속을 위해 파는 것에 매진하는 사람이 있다는 것이다.
나는 지금 게이머로서의 경험, GM과 CM으로서 배운 지식을 요긴하게 활용하고 있다. 요컨대 디깅에는 도가 텄다. 그리고 PM 되어 맡게 된 셀링과 그 안에서 얻은 인사이트는 이제부터 차근차근 소개해보려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