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렇게 나는 사업 PM이 되었다 #1
앞서 살펴본 것처럼 게임 업계에는 수많은 전문가들이 존재한다. 기획, 개발, 아트 등 여러 직무 종사자들이 각자의 자리에서 저마다의 역할을 수행하며 하나의 게임을 완성해 간다.
나는 사업 PM으로서 각종 일정을 조율하고 경쟁 게임을 분석하며 수익화 모델을 제안하여 게임이 원활하게 서비스될 수 있도록 돕는 중이다.
이 글에서는 내가 왜 하고 많은 업계 중에서 게임 업계에 몸 담게 되었는지, 왜 그중에서도 사업 PM의 역할을 맡게 되었는지 이야기해보려 한다.
한부모 가정에서 자란 나는 집에 혼자 있는 시간이 많았고 어린 마음에도 외로움을 느끼곤 했다. 어머니는 그런 내가 안쓰러웠는지 없는 살림에도 작은 게임기 하나를 사주셨다.
처음으로 손에 쥔 게임보이. 작은 화면 속에서 펼쳐지는 마리오, 동킹콩, 알라딘의 모험은 내게 마치 다른 세계를 여행하는 듯한 기분을 선물해 주었다. 덕분에 내게 게임이란 세상을 내다보는 창이 되었다.
초등학교에 들어가서는 어린이 신문에서 퀴즈퀴즈(QuizQuiz, 1999)라는 게임을 다룬 기사를 접했다.
아케이드 게임을 하려면 오락실까지 찾아가 돈을 내야 하는 게 당연했던 시대에 집에서 무료로 원카드, 오델로 등을 즐길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신선했는데 게임이 각종 퀴즈를 통해 폭넓은 분야의 지식을 자연스레 익힐 수 있도록 한 게 놀라웠다. "게임은 돈과 시간을 낭비하는 짓이다.", "게임은 사람을 난폭하고 멍청하게 만든다."는 당대 여론에 정면으로 맞서는 퀴즈퀴즈의 모습에서 단순한 오락 그 이상의 무엇인가가 엿보였기 때문이리라.
어머니를 졸라 시작한 퀴즈퀴즈는 기대 이상으로 흥미로웠다. 게임보이로 즐겼던 게임들이 액션과 탐험의 재미를 선사했다면 퀴즈퀴즈 속 아케이드 게임들은 전략을 구상하고 행동으로 옮기는 맛을 알려주었기 때문이다. 사회, 문화, 역사, 과학 등 다방면에 걸친 지식을 외우고 맞추는 짜릿함도 빼놓을 수 없다. 돌이켜보니 이게 오늘날 게이미피케이션(Gamification)이라고 부르는 것 그 자체여서 남들보다 빠르게 귀한 경험을 한 셈이다.
그러나 가장 큰 즐거움은 뭐니 뭐니 해도 '사람'이었다. 성별부터 지역, 나이, 직업까지 무엇 하나 같은 게 없는 사람들이 게임 상에서 함께 울고 웃는 게 너무나 신기했다. 이때 나는 게임이 사람과 사람을 이어주는 매개체가 될 수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간혹 공지 사항으로 게임에서 만난 커플이 결혼에 골인했다는 소식이 들려올 때면 언젠가 나도 게임을 통해 운명의 상대를 만나게 되지 않을까 상상하기도 했다.
이후에도 바람의 나라, 메이플스토리 등 여러 게임에서 소중한 인연을 맺었다. 눈물 콧물 쏙 빠지는 사기 수법으로 일찍이 인생의 씁쓸함을 맛본 건 덤이고.
중학생이 되었을 때는 친구들을 따라 마비노기(Mabinogi, 2004)를 시작했다.
그전까지 즐겨했던 온라인 게임은 경쟁과 성장 위주였지만, 마비노기는 달랐다. '판타지 라이프'라는 슬로건에 어울리는 비현실적으로 아름다우면서도 묘하게 현실감 있는 세계, 감동과 반전이 있는 서사, 매력 넘치는 등장인물, 그 중심에 있는 나. 이러한 구도는 내게 이야기에서 오는 재미를 알려주었고 난생처음 '덕질'을 하는 계기가 되기도 했다.
특히 NPC 아이던에게 푹 빠져 실제 요리라고는 달걀 프라이 밖에 할 줄 모르는 주제에 0과 1로 이루어진 산해진미를 날이면 날마다 해다 바쳤다.
한편 마비노기는 게임의 내러티브가 가진 힘을 극대화하기 위해 유저들의 2차 창작을 적극 장려하고 있다. 예를 들어 공식 홈페이지에 유저들의 창작 활동을 활성화하기 위한 공간을 개설하고 정기적으로 우수 작가를 선발하거나 인기 작품을 소개하는 식이다. 나는 이러한 노력에 감화되어 팬아트를 쏟아냈다. 그 팬아트를 계기로 당시로선 흔치 않았던 동인 행사 '코믹월드'에 참여해 세상에는 예술, 판매 등 다양한 길이 있음을 깨닫기도 했다.
창작을 향한 동경은 꽤 오랜 시간 계속되었다. 과거의 나처럼 고독한 삶을 살고 있는 사람들에게 마비노기와 같이 환상적인 세계, 가슴 따뜻한 인물을 통해 기쁨과 위로를 전하고 싶었다.
이에 내가 안정적인 직업을 갖길 바랐던 어머니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게임 원화가의 뜻을 품고 영화, 애니메이션 특성화 고등학교에 진학하여 그림 공부에 뛰어들었다. 이왕 창작의 길을 걷기 시작했다면 전심전력을 다 해야겠다는 생각으로 애니메이션 제작 동아리에도 가입했는데 이게 인생의 전환점이 될 줄이야.
내가 속한 동아리는 매해 축제마다 단편 애니메이션을 선보였다. 문제는 모든 동아리원이 그림에는 열정적인 데 반해 일정 관리, 장소 대관, 모객, 작품 해설 등 행사 준비에는 영 관심이 없었다는 것이다.
이대로라면 축제를 성공적으로 마무리하기는커녕 정해진 기한 내에 애니메이션을 완성하는 것도 어렵겠다 싶어서 내가 나섰다. 먼저 일감을 캐릭터 콘셉트, 배경 콘셉트, 시나리오, 콘티, 스토리보드, 원화, 동화, 배경, 편집, 특수 효과, 사운드로 세분화하여 분배하고 일정을 관리했다. 그 과정에서 나는 상영회 포스터를 만들고 장소를 섭외했으며 애니메이션에 관한 굿즈를 제작했다.
다행히 시사회는 성황리에 막을 내렸고 수익금은 회식비에 사용되었는데 그 자리에서 "네가 없었더라면 이번 단편은 절대 완성하지 못했을 거야."라는 말을 들었다. 그때 알았다. 나는 재능 있는 사람들을 도와 결과물을 만들고 흥행시키는 데에서 창작 그 이상의 보람을 느낀다는 것을.
이후 문화, 예술에서 새로운 가치를 창출하는 것을 일컬어 '문화경영'이라고 한다는 걸 알게 되었고 경영학과에 진학했으며 경영학의 많은 부분이 심리학에 뿌리를 두고 있기에 더욱 심층적인 학습을 위해 심리학을 복수 전공했다.
그리고 대망의 취업 시즌이 시작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