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진공상태 Jul 17. 2024

상견례

잘 마쳤습니다.

7월 13일 토요일. 핸드폰 알람 소리에 눈을 떠보니 아침 6시다. 오늘은 전주에서 상견례가 있는 날. 옆에서 자고 있는 남자친구의 팔을 살며시 쓸어 내렸다. "먼저 씻을래?" 남자친구가 알았다며 일어나서 화장실로 향했다. 나는 나를 물끄러미 바라보고 있는 행복이(반려고양이)를 쳐다보며 말했다. "오늘 혼자 잘 있을 수 있지? 언니랑 오빠랑 전주 갔다올거야." 호진씨가 씻는 동안 나는 약을 먹고 커피를 마셨다. 그리고 혼자 있을 행복이를 위해 고양이들이 즐겨본다는 채널을 틀어놓았다. 호진씨가 다 씻고 나오자 이번엔 내 차례. 이를 닦고 머리를 감고 또 머리를 말리고.. 오늘을 위해 준비해 놓은 옷을 잘 챙겨 입었다. 7시쯤 집을 나서면서 엄마에게 전화를 했다. 엄마와 아빠를 용산역에서 만나기로 했기 때문이다. 엄마가 엄마도 이제 나갈거라면서 조금 있다 보자고 하고는 전화를 끊었다. 호진씨와 나는 집을 나와 항상 그렇듯 살짝 서로의 손을 잡고 부평구청역까지 걸었다. 오늘 부모님들이 무슨 옷을 입고 나올까 하는 얘기도 하고, 오늘 괜찮겠지? 라는 얘기도 하면서.

용산역에 도착해서 엄마를 보고는 깜짝 놀랐다. 분명히 편하게 입고 나오라고 했는데, 선글라스까지 챙겨서 끼고 나온 엄마를 보고 살짝 헉! 했다. 아빠는 뭐.. 평범한 양복을 입고 있었다. 호진씨랑 나는 서로를 쳐다봤다가 다시 우리 엄마를 쳐다봤다. "엄마, 엄청 이쁘게 하고 왔네요?" 나는 엄마를 보며 말했다. 엄마는 뭔가 신이 난 것처럼 보였다. 우리들은 기차 시간을 확인하고 플랫폼으로 향했다. 우리 부모님의 복장은 확인을 했으니, 호진씨 부모님이 어떻게 옷을 입고 나오실지가 궁금해지기 시작했다. 편하게 입고 나오시라고 했는데.. 괜찮겠지? 괜찮을거다.


호진씨 부모님은 서울에 사시다가 2년전에 정읍으로 귀농을 하셨다. 그래서 호진씨랑 호진씨 형이 상견례 장소를 알아보다가 정읍이나 부안에 마땅한 곳이 없는 것 같다면서, 전주를 택했고 식당을 예약했다. 전주에는 나의 셋째 작은아빠가 살고 계셔서 나는 몇번 방문을 한 적이 있다. 오늘 상견례가 끝나고 시간이 남으면 작은아빠랑 작은엄마도 보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작은아빠와 작은엄마가 사는 아파트가 전주역 바로 옆이기 때문이다.


전주역까지 가는동안 엄마는 계속 들떠있는 듯해보였다. 아빠는 기차에 앉자마자 주무셨다. 호진씨랑 나는 엄마랑 조용조용 이런저런 얘기를 나눴다. 한시간 반정도의 기차에서의 시간은 생각보다 빨리 흘러갔고, 어느새 전주에 도착했다. 우리는 기차에 내려서 택시를 타고 예약한 식당으로 갔다. 우리가 도착했을 때, 호진씨 부모님도 식당에 도착했다. 호진씨 형이 호진씨 부모님을 모시고 왔는데, 절묘하게 타이밍이 잘 맞은것 같았다. 호진씨 형을 보자 나는 반가운 마음에 손을 흔들었다. 호진씨 형도 나를 보자 웃으며 손을 흔들었다. 부모님들은 어색하게 인사를 하며 다 같이 식당으로 들어갔다.


식당에 들어가자 우리를 룸으로 안내를 해 주었다. 다들 자리를 잡고 앉아서 서로 통성명을 하기 시작했다. 부모님들은 서로 약간 어색해하셨지만 금새 몇마디 나누시더니 편안한 분위기가 흐르기 시작했다. 화기애애하다고 하기는 뭐한데, 그렇다고 어색한것도 아니었고, 다들 조근조근 말씀을 잘 하셨다. 전주라 그랬던건지 모르겠는데, 음식도 아주 맛이 있었다. 식사를 마친 우리는 식당의 1층에 마련된 카페로 자리를 옮겨서 더 이야기를 나누었다. 우리 아빠랑 호진씨 아빠가, 그리고 우리 엄마랑 호진씨 엄마가 그새 꽤 친해져있었고, 나는 생각보다 좋은 분위기가 신기하다고 생각했다. 오늘 처음 만난 사이인데, 다들 편안해 보였다.


이야기를 잘 마치고 난 후, 서로 헤어질 때 엄마들이 서로를 꼭 껴안았다. 우리 엄마는 연신 웃으며 호진씨 엄마의 손을 잡고 놓지를 않았다. 아빠들은 엄마들처럼 서로를 껴안고 그런건 아니었고 악수를 했는데, 둘다 얼굴에 미소가 만연했다. 나의 첫번째 남편은 한국 사람이 아니었기 때문에, 이런 상견례는 나도 처음이라 신기하기도 하고 여러가지 부분에서 좋다고 느꼈다. 어려운 자리일줄 알았는데, 처음 만났는데, 이렇게 친해지다니. 우리 부모님과 나와 호진씨는 택시를 타고 전주역쪽으로 이동을 했다. 호진씨 부모님은 호진씨 형이 정읍집으로 모시기로 했다.


전주역에 도착하자 작은아빠와 작은엄마가 우리를 기다리고 있었다. 나는 작은 엄마와 작은 아빠를 아주 많이 좋아한다. 그래서 너무 반갑고 좋았다. 작은 아빠와 작은 엄마는 호진씨를 처음 보았는데, 잘 대해주셔서 감사했다. 우리들은 근처 카페에서 한시간정도 다같이 이야기를 나누고 다시 서울로 돌아가는 기차를 탔다. 용산역까지 오는 동안 기차안에서 아빠는 다시 잠을 잤고 엄마는 아주 말똥말똥한 상태로, 누가봐도 기분좋아보이는 모습으로 나랑 호진씨를 계속 바라봤다. 용산역에는 저녁 6시쯤 도착을 했다. 용산역에 도착해서 엄마랑 아빠는 정릉으로 가고 나는 호진씨랑 인천가는 1호선을 탔다. 아주 알찬 하루였다. 그리고 모두가 기분좋은 하루였다. 이런 하루가 될 줄 몰랐었는데 신기했고, 기분이 좋았다.


모두에게 감사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 이승아

작가의 이전글 나의 첫번째 주례사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