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43년 ~ 1845년 파리의 열혈 혁명가 (2)

인간 마르크스 읽기

by 홍보경

# 변곡점


마르크스가 혼자 독학을 하며 써 내려간 『경제학-철학 수고』는 『파리 원고』 라고도 불리운다. 이 원고는 3 개의 초고로 구성되어 있다. 3개의 초고를 합치면 한 권의 단행본 분량에 달한다. 그는 생전 이 원고를 출판할 생각이 없었다. 그의 이론이 완전히 형성되기 전, 개인적인 연구를 위해 작성한 글이기 때문이었다. 본문을 살펴보면 '국민경제학자(Nationalökonomie)'들의 저서에서 발췌한 양이 어마어마하다. 원고의 최소 50% 이상은 발췌문인 것 같다. 이 원고는 말 그대로 '수고'이다. 그 많은 구절들을 손으로 필사했다는 이야기다. 그의 공부량이 정말 어마어마하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마르크스는 수많은 문헌들을 비교하며 말 그대로 '연구'를 하고 자신만의 독자적인 사상을 발전시켜 나갔다. 『경제학-철학 수고』는 변증법적 유물론의 맹아와 같은 글이라고 할 수 있었다. 독학으로 이만큼의 발견을 해 낼 수 있다니 그는 확실히 학자의 영혼의 소유자였던 것 같다. 게다가 이 원고를 집필한 것은 1844년 4월부터 8월까지인 고작 4~5개월 정도였다고 하니 원고를 얼마나 미친듯이 써내려 갔을지 감히 상상이 되지 않았다.


『1844년 경제학-철학 수고』원고, Dmitry Gutov의 작품. 그는 미친들이 휘갈겨진 마르크스의 글씨체에서 폭발적인 생명력을 느끼고 그 자체로 예술이 될 수 있다고 여겼다.


지금까지의 글들 중에서 이번 글을 쓰기가 가장 어려웠다. 경제학은 내가 가장 공부하고 싶지 않았던 분야이기도 했고 이런저런 생각들이 뒤엉켜 떠올랐기 때문이었다. 내가 했던 것이라고는 고작 독서와 필사밖에 없었는데도 며칠 내내 편두통에 시달렸다. 매일 두통약을 먹었다. 마르크스를 읽으며 고민해야 할 것은 거대 담론이 아니라 나의 구체적인 삶이어야만 한다. 개인적인 일상의 고민들이 보푸라기처럼 까슬까슬 일어나기 시작했다. 모르는 것들을 제미나이와 gpt에게 묻고 답하고 토론(?) 하다가, 이러다가는 내가 멍청해질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상한 기분을 느낀다. 지금 이 시대가 마르크스가 살았던 시기와 기묘하게 겹쳐진다. 과거의 그와 함께 거대한 변곡점 앞에 서 있는 것 같달까. 과거가 현재를 도울 수 있다면, 우리는, 아니 나는 어떤 차이나는 반복을 만들어낼 수 있을까?


마르크스가 살았던 시기는 산업혁명과 시민혁명으로 인해 인류사적으로 커다란 변화가 일어나던 시기였다. 농업과 상업이 주를 이루던 시대에는 세습에 의해 토지를 물려받던 소수의 영주가 농노를 소유하는 방식으로 부를 독점하고 있었다. 잉여생산물이 발생해도 농민들이 가질 수 없었으며 사유재산, 특히나 그 당시의 '생산수단'이었던 토지는 영주들만이 소유할 수 있었다. 그러나 산업 혁명과 시민 혁명 이후 봉건적인 신분 질서가 재편된다. 생산성이 비약적으로 향상되고, 상공업에 뿌리를 둔 부르주아지 계급이 등장한다. 이 때 권력의 주도권을 잡았던 사람들은 생산 수단을 가지고 있었던 사람들이었다. 공장과 기계를 가지고 있던 부르주아지들. 그리고 대토지를 가지고 있던 소수의 영주들. 그가 『경제학-철학 수고』를 집필하며 국민경제학자들의 저서를 통해 공부하고 연구했던 것이 이로 인한 자본주의 사회가 작동하는 원리였다.


이 일련의 변화들로 인해 기존의 노동과 자본에 대한 개념이 큰 변화를 겪었던 것이 마르크스의 시대였던 것이었다. 마르크스의 시대에는 소수의 자본가를 제외한 사람들이 모두 임금 노동자로 전락했다. 그리고 육체노동보다 정신노동이 더 많은 자본을 축적할 수 있게 되었다. 그렇다면 우리 시대에는 어떻게 될까? AI의 빠른 발전과 주식에 대한 광적인 정념은 정신 노동마저, 아니 노동 자체를 더욱 소외시킬 것이 분명해 보인다. 어떤 방식으로든 노동과 자본에 대한 의미가 다시 한 번 크게 변화할 것 같다. 인류는 점점 더 벼랑 끝으로 몰려가고 있다. 하지만 그걸 누가 모른다는 말인가. 이 모든 게 얼마나 공허한 소리일까 싶어 한동안 침울함에 빠져 있었던 것 같다.


# 닭장 속의 닭


『경제학-철학 수고』는 노동 임금에 대한 연구로 시작된다. 그리고 이 전제로부터 모든 것이 도출된다.


노동 임금은 자본가와 노동자 사이의 적대적 투쟁에 의해 규정된다. 자본가들에게 있어 승리의 필연성. 자본가는 노동자가 자본가 없이 생존하는 것보다 오랫동안 노동자 없이 생존할 수 있다. ... 그러므로 노동자들에게 자본, 토지 소유, 그리고 노동의 분리는 필연적이고 본질적이면서 파괴적인 분리이다. 자본과 토지 소유는 이러한 추상 속에서 존속할 필요가 없으나, 노동자들의 노동은 그렇지 않다. -『경제학-철학 수고』, 카를 마르크스


'자본'과 '토지 소유'는 그것들로부터 '노동'을 분리해내는 추상 속에서 존속할 필요가 없다. 이미 축적해 둔 사유 재산이 있으므로 굶어 죽지 않기 때문이다. 하지만 노동자들은 그렇지 않다. 일을 할 수 있는 능력이 있다고 하더라도 일을 할 수 있는 생산 수단을 소유하고 있지 않기 때문이다.


마르크스는 노동자를 "하나의 자본"이자 "상품"이라고 칭한다. 그러나 판매자 중심이 아닌, 구매자 중심의 상품이라는 점이 문제다. 사회의 부가 많아지든 적어지든 노동자는 손해를 보는 구조다. 사회의 부가 감소하면 노동자가 가장 먼저, 직접적으로 타격을 받는다. 사정이 안좋아지면 직원부터 자른다. 사회의 부가 증가하는 것이 그나마 노동자에게 가장 유리한 조건이다. 자본가들 사이에서 경쟁이 벌어지고 일을 구하는 노동자보다 일자리가 더 많아진다. 경영이 잘 되면 노동자에게 성과급을 지급한다. 하지만 이 경우에도 결국 가장 피해를 보는 것은 노동자이다.


윈은 아래와 같이 찰떡같은 비유를 든다. 회사가 잘 굴러갈 때에 느꼈던 묘한 허탈감의 정체가 바로 이 느낌이었다. 닭에게서 알을 탈취하고 소에게서 우유를 탈취하고 돼지에게서 새끼를 탈취할 때의 그 분열되는 느낌. 유능함이 곧 무능함이 되고 무능함이 곧 유능함이 되는 착란 상태. 돌이켜보면, 직장을 다니며 가장 두려웠던 때는 회사 '제품'을 통해 '세상'이 알고 싶어질 때였다.


똑똑한 닭 (이런 생물이 존재할 가능성은 없지만) 이 수십 개의 알을 낳은 뒤 온기가 식기도 전에 탈취당하는 것을 보면서, 자신의 생산력이 가장 풍부할 때 자신의 무능을 가장 크게 의식하게 되는 것과 마찬가지다. -『마르크스 평전』, 프랜시스 윈



마르크스는 노동자의 입장이 그나마 가장 유리한, 사회가 번영하는 상황의 끝을 비관적으로 전망한다.


마르크스는 아무리 경제 형편이 좋다 하더라도, 노동자에게 유일한 결과는 '과로와 빠른 죽음, 기계로의 전락, 자본의 노예화'라고 결론을 내린다. 분업은 인간들과의 경쟁만이 아니라 기계와의 경쟁도 도입함으로써 노동자를 더 의존적으로 만든다. 마지막으로 자본의 집적으로 산업은 점점 더 많은 양의 생산물을 내놓게 된다. 이것은 과잉생산을 낳고, 결국 노동자들의 대량 실직 또는 엄청난 임금 하락으로 끝나게 된다. -『경제학-철학 수고』, 카를 마르크스


결국 마르크스는 자본주의가 그 자체로 가지고 있는 내부적인 모순 때문에 붕괴될 것이라고 예상했다. 뭔가 이상하다고 느꼈다. 초기의 그는 분명 필연적 운명에 저항하는 인간의 자유를 이야기 했다. 하지만 혁명가의 시기를 거치면서는 헤겔처럼 역사가 어떤 하나의 목적으로 흐른다는 결정론적인 관점을 보여줬다고 느꼈다. 왜 그랬을까?


인간을 신뢰하는 것을 배우기 위해 산업이 독점의 형태로, 그리고 경쟁의 형태로 파멸되어야만 했듯이, 토지 소유는 그 두 가지 방식으로 그것의 필연적 몰락을 체험하기 위하여, 이 두 방식으로 전개되어야만 했다 -『경제학-철학 수고』, 카를 마르크스


나는 인간을 신뢰하지 못하는 사람이었고 그렇기에 누군가가 나를 신뢰한다는 사실도 믿지 않았다. 그래서 나의 삶을 기어이 파멸과 몰락으로 몰고 가고 싶어했다. 그래야만 인간을 신뢰하는 것을 배울 수 있다고 생각했다. 죽을 지경이 되어야만 살고 싶은 마음이 들 거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그 끝에서야 알았다. 가장 적극적인 행동이라고 생각했던 것이 가장 소극적인 행동이었다는 것을. 나는 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아서 그 모든 것을 했던 것이었다는 것을. 그 모든 과잉된 행동들은 역설적으로 극도의 무기력이었다는 것을. 마르크스가 인류에게 보았던 것 역시 그러한 무기력, 무사유, 극도의 나태함일 것이다.


마르크스도 한때 나처럼 생각했던 것이 아니었을까? '망해봐야 정신 차리지', '없어봐야 소중함을 느끼지', 와 같은 마음. 스승은 죽음이 판타지 같은 것이라고 했다. 죽음에 가까이 가 본 사람은 개과천선하여 완전히 다른 삶을 살게 될 거라는 환상 같은 것이라고. 그러나 그것은 판타지이기에, 다시 죽음에서 멀어지게 되면 어느순간 다시 살아왔던대로 똑같이 살게 될 것이라고. 나 역시 판타지에 취해 있었다. 그러나 그 끝에서 깨달은 것은 그것이 안개같은 환상이었다는 것이었다. 적어도 말년 이전의 마르크스에게는 그만큼이나 인류가 답답하고 안쓰러워 보였던 것일지도 모르겠다.


위의 문단에서 그의 마음을 조금은 느낄 수 있을 것 같았다. 누구보다 영민한 그였는데 자신의 주장이 오해될지도 모른다는 사실을 모를리 없었을 것이다. 결국 인간들이 서로를 신뢰하는 사회가 되었으면 하는 그의 바람이 너무 간절한 나머지 어떤 모순 같은 것에 빠지게 되었던 것은 아니었을까? 마르크스가 살아돌아와서 그의 진심을 교묘하게 이용하여 수많은 사람들을 고통에 빠뜨린 독재자와 선동가들을 본다면 너무나 비참하고 슬플 것 같다.


# 오해


마르크스에 대해 공부하며 내가 얼마나 많은 사람들의 마음을 쉽게 오해하고 있었는지를 깨닫고 아득해지곤 했다. 그 사람의 마음을 보지 않고 내가 기분 나쁘거나 서운하다는 이유로 진심을 알아주지 않았던 순간들이 스쳐 지나가면서 후회가 밀려왔다. 마르크스를 통해서 애덤 스미스를 다시 알게 되면서도 그랬다.


마르크스는 몇몇 경제학자들에 대해서는 비판적이긴 하나 깊은 존경심을 품고 있었다. 그 중에서도 특히 애덤 스미스에 대해서는 각별한 존중을 보였던 것 같다. 애덤 스미스의 『국부론』이나 '보이지 않는 손'은 누구나 알 정도로 유명하지만, 마르크스를 읽으며 그에 대해 오해하고 있었다는 것을 깨달았다. 무척 부끄럽지만 나는 그를 일종의 신자유주의 풍의 무한 경쟁을 불러온 나쁜 (?) 경제학자의 이미지 정도로 인식하고 있었다.


그러나 스미스는 마르크스가 말하는, 자유인들이 연대하는 사회를 꿈꾸던 사람이었다. 그가 『국부론』을 썼던 근본적인 이유는 부를 증대시켜 모두가 행복한 세상을 만들기 위함이었지 자본가가 노동자를 착취하는 세상을 만들기 위함이 아니었다. 그는 인간이 '자기보존의 존재이자 타자공감의 존재'라는 점을 있는 그대로 보았던 사람이었다. 그는 인간의 선함을 믿었던 사람이라는 느낌을 받았다. 어쩌면 그는 너무 순진하고 도덕적이었기에 그 많은 오해를 받았던 것이 아니었을까 싶다. 스미스는 경제학에 관심을 갖기 이전에 도덕 철학자였고, 자신의 묘비명에 『국부론』 대신 자신의 다른 저서 『도덕감정론』의 저자로 기록되길 바랐다고 한다.


우리가 저녁 식사를 할 수 있는 것은 푸줏간 주인이나 양조장 주인, 빵집 주인의 자비심 덕분이 아니라, 그들이 자신의 이익을 챙기려는 마음 덕분이다. - 『국부론』, 애덤 스미스


인간이 아무리 이기적이라고 가정할지라도, 인간의 본성에는 분명 이와 상반되는 몇 가지 원리가 존재한다. 이 원리들로 인해 인간은 타인의 운명에 관심을 가지게 되며, 단지 그들이 행복해하는 모습을 보는 것 외에는 아무런 얻는 것이 없더라도 타인의 행복을 자신에게 필요한 것으로 여기게 된다. - 『도덕감정론』, 애덤 스미스


스미스가 시장에 국가가 개입하지 않아야 한다고 말했던 이유는 효율성 때문도 있었지만 국가의 통치 계급에 대한 불신의 이유도 컸다. 그렇기에 국가의 정당한 개입, 즉 독점, 임금 체불, 담합, 분식회계 등 불법 행위는 금지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자본주의가 발전할수록 분업이 심화되면 개인이 점점 무능해질 것을 걱정하여 공교육의 중요성을 주장하기도 했다. 그는 공공의 이익에 대해 진심으로 고민했던 사람이었다.


자본가가 제안하는 새로운 상업적 법률 및 규제들에 대해서는 항상 큰 경계심을 가지고 주목해야 하며, 그것들을 매우 진지하고 주의 깊게 오랫동안 신중하게 검토한 뒤에 채택해야 한다. 왜냐하면, 그들은 그들의 이익이 결코 정확히 공공의 이익과 일치하지 않는 계급, 그리고 사회를 기만하고 심지어 억압하는 것이 그들의 이익이 되며, 따라서 수많은 기회에 사회를 기만하고 억압한 적이 있는 계급으로부터 나온 제안이기 때문이다. - 『국부론』, 애덤 스미스


그는 인간의 마음 속에는 '내면의 재판관' 이 존재하며, 그 재판관은 타인으로부터의 인정을 통해 일을 한다고 생각했다. 데이비드 흄과 친구이기도 했던 그는 '공감'을 강조했다. '공감'과 '내면의 재판관'이 '자기보존'에서 '타자공감'으로 가기 위한 연결고리였다. 그는 인간 본성에 선함이 있음을 믿었다. 그는 오히려 토마스 홉스를 비판하며 다음과 같이 말했다.


자연 상태는 전쟁 상태이며, 시민 정부가 수립되기 전에는 인간 사이에 안전하고 평화로운 사회가 존재할 수 없다는 것이 홉스 씨의 교의로 잘 알려져 있다. ... 그토록 혐오스러운 교리를 반박하기 위해서는 모든 법이나 실정법에 앞서 인간의 마음에는 본래 특정한 행동과 감정에서 옳고 칭찬할 만하며 덕스러운 자질을, 그리고 그 외의 행동과 감정에서는 그르고 비난받을 만하며 악덕한 자질을 구별할 수 있는 능력이 있다는 것을 증명해야 했다.- 『도덕감정론』, 애덤 스미스


스미스가 살아돌아온다면, 나같은 사람들에게 무한 경쟁을 주도한 나쁜 사람 정도로 오해받는다는 걸 보고 얼마나 억울할까 싶어 정말 미안했다. 아래 구절을 읽으며 육성으로 웃음을 터뜨릴 수밖에 없었다.


그러므로 타인에 대한 동정심은 많고 자신에 대한 동정심은 적은 것, 즉 이기심을 억제하고 자비로운 애정을 베푸는 것이야말로 인간 본성의 완성이며, 오직 그것만이 인류 사이에 감정과 열정의 조화를 이루어 그 안에 모든 은혜와 적절함을 가져다줄 수 있다. 이웃을 사랑하는 만큼만 자신을 사랑하는 것, 또는 같은 의미로 이웃이 우리를 사랑할 수 있는 만큼만 자신을 사랑하는 것이 자연의 위대한 계명이다. - 『도덕감정론』, 애덤 스미스


결국 스미스가 '보이지 않는 손'을 주장했던 이유는 인간을 믿었기 때문이었다. 그는 인간의 악함과 선함을 공정하게 보려고 했던 것 같다. 삶은 원래 크고 작은 싸움의 연속이다. 내가 그를 오해했던 이유는 싸움 자체를 피하고 싶었던 나의 나약한 마음 때문이었다. 나는 얼마나 많은 사람들의 진심을 오해 했을까?


# 소외된 노동


하지만 마르크스는 스미스보다는 세상을 조금 더 냉철하게 보았다. 그는 국민경제학자들의 가장 기본적인 전제 조건부터 공격한다. 바로 '사유재산'에 대한 논의였다.


국민경제학은 사유 재산이라는 사실에서 출발한다. 국민경제학은 우리에게 그 사실을 해명하지 않는다. 국민경제학은 사유재산이 현실에서 겪게 되는 물질적 과정을 일반적이고 추상적인 공식으로 표현하거니와, 그 경우 그러한 공식은 국민경제학에게 법칙으로 간주된다. 국민경제학은 이러한 법칙들을 개념적으로 파악하지 않는데, 다시 말해서 국민경제학은 그 법칙들이 어떻게 해서 사유재산의 본질에서 생겨났는지를 확증하지 않는다. 국민경제학자가 움직이는 유일한 수레바퀴는 소유욕, 소유욕을 가진 사람들 사이의 전쟁, 경쟁이다 - 『경제학-철학 수고』, 카를 마르크스


고전 경제학자들은 사적 소유를 근본적인 조건으로 생각하고 이것에 대해 의문을 가지지 않았다. 그러니까, 그들은 사유 재산을 생산해내는 인간의 마음인 '소유욕' 은 이해했지만, 소유하려는 경쟁의 시작점인 기울어진 운동장이 만들어지게 된 이유에 대해 고찰하지 않았다. 하지만 마르크스가 보기에는 그 이유가 가장 중요한 것이었다. 그리고 여기에 있어서도 그는 변증법적인 역발상을 한다. 즉, 국민 경제학자들은 사유 재산이 있기 때문에 노동이 소외되고 있다고 생각했지만, 마르크스는 노동이 소외되고 있기 때문에 사유재산이 발생한다고 생각했다.


사유재산은 외화된 노동, 자연과 자기 자신에 대한 노동자의 외적 관계의 산물이요, 성과이며, 필연적 귀결이다. 그러므로 사유재산은 외화된 노동, 다시 말해서 외화된 인간, 소외된 노동, 소외된 생활, 소외된 인간이라는 개념의 분석에 의해 분명해진다. 국민경제학은 노동자(노동)와 생산의 직접적인 관계를 고찰하지 않음으로써 노동의 본질 안에 있는 소외를 은폐한다. -『경제학-철학 수고』, 카를 마르크스


노동이 소외되었다는 것은 노동자가 노동을 할수록 소외감을 느낀다는 것을 의미한다. 노동자들이 생산해 내는 상품은 회사의 것이지 노동자들의 것이 아니며, 노동 자체는 자아 실현과 괴리되며, 사랑의 관계조차 거래의 관계로 생각하게 하고, 인간에 대한 불신으로 인해 서로에게 소외감을 느끼도록 한다.


마르크스는 부르주아지 자본가로 영입되기 쉬웠던 봉건 지주들에 대해서도 비난해 마지 않았다. 그는 어떻게 대토지 소유자가 자본가로 변화하게 되는지를 설명한다. 기계의 발달로 비약적인 생산성의 향상이 농업에까지 미치자, 가장 많은 토지를 가지고 있던 영주들이 농장을 공장식으로 운영하기 시작한다. 그러므로 초기 자본인 토지를 많이 가지고 있을수록 부르주아지가 될 확률이 높았다. 그 과정에서 그들은 공유지로 함께 사용하던 땅을 부당한 방식으로 사유화하기도 했다. 가장 많은 토지를 가지고 있는 영주가 공유지를 차지하던가, 권력을 가진 영주가 서류와 법으로 소유자를 자신으로 지정한다던가, 농민들의 문맹을 교묘하게 이용하여 형식적인 절차로 투표를 진행한다던가 하는 부당한 방식이었다. 산업 혁명이 가장 먼저 일어났던 영국에서 모직물 공업의 발달로 일어난 '인클로저 운동'이 대표적이었다. 이 사태는 루소가 밝힌 불평등의 기원을 현실에서 보여준다.


"조그만 땅에 울타리를 치면서 '이것은 나의 것이다' 라고 말해야 한다고 생각했고, 사람들이 자신의 말을 믿기에 충분히 단순하다는 사실을 발견했던 최초의 인간이 바로 시민사회의 진정한 기초자였다". -『인간 불평등 기원론』, 장 자크 루소


루소의 말에 고개가 끄덕여졌다. 그래. 애초부터 불평등한 조건을 만든 저들이 나쁜거지. 하지만 한편으로는 마음 속으로 찝찝했다. 자본가들도 그들 나름대로의 고충이 있을 테니까. 특히 개천에서 용 났다는 속담에 어울릴만큼 자수성가해서 성공한 자본가들에게는 노력의 대가라고 여겨질 테니까. 나라도 그렇게 생각했을 것 같았다. '내가 이만큼 고생했는데 이만큼도 못 누려?' 라는 마음이 쉽사리 떨쳐지지 않을 것 같다. 오히려 부족함 없이 자랐기에 행복하기 어렵다는 것도, 전부는 아니겠지만, 마음으로 이해가 됐다. 나도 어느정도 그 수혜를 입은 배부른 투정쟁이 중 한 사람이었으니까. 그래서 두렵고 또 부끄러웠다. 나는 그들만큼 부자가 아니기에 안전한 위치에서 마음껏 자본가들을 비난할 수 있는 것이니까.


솔직히 고백컨데, 직장에 다닐 때 나는 월급에서 세금이 떼이는 것이 아까웠다. 부끄럽지만 그게 내 진정한 속내였다. 하물며 내가 자본가라면 그 많은 돈이 모두 세금으로 나가는 것이 아깝지 않을 수 있을까? 자신이 없었다. 세금이 제대로 쓰이지 않을 것이 걱정일수도 있으니, 그 돈을 나에게 소중한 사람에게 준다고 생각해봤다. 역시 아깝지 않을 자신이 없었다. 속이 쓰렸다.


어떤 면에서 중산층은 부르주아와 프롤레타리아 사이에서의 계급적 정체성의 분열을 가장 심하게 겪는 계급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프롤레타리아이면서 부르주아에게 감정 이입을 하게 되는 자아 분열. 그렇기에 오히려 어떤 계급에게도 배척당하는 모호한 계급이 아닐까. 이런 내가 마르크스 앞에 섰을 때 떳떳할 수 있을까? 마르크스에 대한 글을 쓸 자격이 있을까? 또 다시, 자신이 없었다.


구정에 친가에 갔다가 부모님과 부동산에 대한 이야기를 하면서도 마음이 답답하고 괴로웠다. 첫째로는 나의 의존심을 발견했기 때문이었다. '절대로 의존하지 않을거야' 라는 마음은 뒤집어진 의존심이었다. 둘째로는 나는 아무런 능력도, 이룬 것도 없는 백수임에도 불구하고, 그 의존심 때문에 스스로를 중산층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었다. 부모님 덕분에 경제적 결핍이 없이 자랐으니 사회적인 부채가 있다는 생각에 마음이 불편했다. 셋째로는 1인분 하기에도 벅찬 주제에 이런 걱정을 하는 것이 가장 괘씸한 기만이라는 것을 알기에 괴로웠다. 이런 마음 가지고는 아무것도 할 수 없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 분열되는 마음이 앞으로 내가 해결해 나가야 하는 가장 큰 숙제일 것이다.


# 프랑켄슈타인


흥미롭게도 프랜시스 윈은 마르크스의 '소외된 노동' 과 그가 편지에서 자신의 등에 난 특별히 지저분한 종기 하나를 '내 등에 있는 제2의 프랑켄슈타인'으로 언급한 것 사이의 연결점을 발견한다. 그는 마르크스가 이 비유를 썼던 것이 어떤 직관적인 끌림 때문이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마르크스를 연구하는 학자나 비평가 가운데 누구도 이 이야기와 메리 셸리의<프랑켄슈타인>- 자신을 창조한 사람과 맞서는 괴물의 이야기 사이의 분명한 유사성에 주목하지 않았다 (마르크스가 프로메테우스 전설에 매료되었던 것을 생각한다면, 그 소설의 부제인 '이 시대의 프로메테우스'도 다시 한 번 보게 된다). -『마르크스 평전』, 프랜시스 윈


"이것이 단편소설의 좋은 주제가 될 거라는 생각이 들었네. 앞에서 보면 포트 와인, 붉은 포도주, 흑맥주와 커다란 고기 덩어리로 내적인 인간을 잘 먹이는 인간이 있는 걸세. 앞에서 보면 게걸스럽게 먹어대는 인간이 있다는 거지. 하지만 뒤를 보면, 등을 보면, 외적인 인간이 있는데, 이건 염병할 종기야. 만일 악마가 계속 잘 먹여주고 보살펴줄 테니 이런 상황을 계속 유지하자고 한다면, 이 악마를 데려가 달라고 다른 악마를 부르겠네." - 마르크스가 엥겔스에게 보낸 편지에서


마르크스는 꽤 많은 시간들을 질병이나 만성적인 건강 문제로 인해 침대에서 보냈다. 그 자존심 강했던 그가 오죽 고통스러웠으면 종기를 없애기 위해 악마를 부르겠다고 할 정도였을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마지막까지 펜을 놓지 않았던 그의 정신력에 정말이지 경의를 표하게 된다.


얼마나 괴로웠는지 마르크스가 막내딸 엘레아노어에게도 종기 이야기를 하자, 그녀가 말했다.


"하지만 그것도 아빠 살이잖아요!"


왠지 이 소설을 읽어야만 할 것 같았다. 경험상 이런 강렬한 끌림은 형용할 수 없을만큼 깊고 다채로우며 지독한 괴로움 속으로 인도했다. 밤을 새워 책을 다 읽었다. 마침내 책장을 덮었을 때 깨달았다. 이건 우리의 이야기였다. 메리 셸리, 그녀는 19살의 나이에 이 소설을 썼다고 했다. 도대체 뭐하는 미친 여자지? 어떻게 그 나이에 이 감정들을 이토록 잘 묘사한다는 말인가? 경악과 경탄이 동시에 덮쳐왔다. 나는 대중매체가 생산한 '프랑켄슈타인'의 이미지를 오해해왔다. 부디 들어달라는 그의 간절한 목소리에 소리도 표정도 미동도 없이 가슴 가장 깊은 곳에서 무수히 무너져 내리며 오열해야만 했다. 나는 책으로 만난 진짜 목소리에 귀를 기울여야만 했고 하룻밤 사이에 다시 모든 시간들을 겪어야만 했다.


저주받은 창조자! 어째서 자기마저 역겨워 등을 돌릴 흉악한 괴물을 빚어냈단 말인가? 신은 연민을 갖고 자신을 본떠 인간을 아름답고 매혹적으로 창조했다. 그러나 내 모습은 당신의 더러운 투영이고, 닮았기 때문에 더욱 끔찍스럽다. 사탄에게는 그를 숭배하고 격려해줄 동료 악마들이 있었다. 그러나 나는 고독하고 미움받는다. -『프랑켄슈타인: 현대의 프로메테우스』, 메리 셸리


'프랑켄슈타인'을 창조한 과학자 빅터 프랑켄슈타인은, 자신이 만들어 낸 창조물이 탄생하는 순간 극심한 혐오에 사로잡혀 연구실에서 뛰쳐나온다. 버려진 '프랑켄슈타인'은 홀로 유랑하며 백지 상태에서 스스로의 힘으로 세상을 경험하고 배운다. 그에게는 분명히 선한 마음과 의지가 있었다. 인간과 다르지 않았다. 아름다운 음악을 들으면 눈물 흘리고 자연을 보고 경탄하며 인간적인 사랑의 감정을 느끼면 가슴 속 깊이 감동했다. 그러나 인간들은 그의 흉측한 모습을 보고 그를 증오하고 혐오하며 경멸한다. 그는 평생 아무에게도 사랑받지 못해 혼자가 된다. 그리고 자신을 만든 인간에 대해 분노와 원한의 감정을 품게 된다. 빅터 역시 자신이 저지른 잘못 때문에 끔찍한 회한과 절망에 사로잡혀 아무도 이해할 수 없는 괴로움 속에서 살아간다. '프랑켄슈타인'은 벼랑 끝에 선 심정으로 인간 빅터에게 찾아가 자신의 진솔한 이야기를 털어놓으며 구원을 청한다. 동정과 자비심이 동한 빅터는 그를 믿고 도와주기로 약속한다. 하지만, 결정적인 순간에 빅터는 혐오와 증오 그리고 의심에 사로잡혀 '프랑켄슈타인'을 배신한다. 결국 지독히도 질긴 운명으로 엮여버린 두 존재는 헤아릴 길 없이 깊은 비극과 절망 속에서 공멸하게 된다.


소설 곳곳에서 마르크스의 마음에 깃들었을 짙은 그림자를 느낄 수 있었다. 어쩌면 내가 마르크스에게 끌렸던 것은 우연이 아니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마르크스는 소외된 또 다른 자신, 종기이자 프랑켄슈타인인 그것과 함께 살아가는 법을 터득했을까? 메리 셸리는 자신의 작품을 마치 사산아처럼, 빅터가 프랑켄슈타인을 바라보듯 애증했다고 한다. 마르크스가 "나는 마르크스주의자가 아니다" 라고 말했던 것처럼 자신의 평생의 과업에 대해 그토록 참담하고 비참한 감정을 느꼈을까? 어느 누가 그의 그 심연의 지독한 괴로움을 알아줄 수 있을까? 그들이 나에게 자신의 삶을 걸고 절박하게 말하고 싶었을 메시지는 무엇일까? 나는 나의 '프랑켄슈타인'을 사랑할 수 있을까?



마르크스는 아이들을 즐겁게 해주기 위해 동화들을 지어내곤 했는데, 이를 통해 아이들은 '자기 소외'의 개념을 어릴적부터 주입받았다고 한다. 엘레아노어는 자신의 회고록에서 가장 좋아했던 동화인 <한스 뢰클>을 언급했다.


"그 이야기는 몇 달씩 계속되었다. 아주 긴 연재물과 같았다.... 한스 뢰클은 호프만 같은 마법사였으며, 장난감 가게를 운영하고 있었고 늘 "일을 열심히 했다". 그의 가게에는 아주 멋진 물건들이 가득했다. 나무로 만든 남자와 여자, 거인과 난쟁이, 왕과 여자, 일꾼과 주인, 노아가 방주에 데리고 들어간 수만큼이나 많은 짐승과 새, 탁자와 의자, 마차, 온갖 종류와 크기의 상자들이 있었다. 한스는 마법사였지만, 악마에게나 정육점 주인에게나 자신의 의무를 다 이행하지 못했다. 따라서 비위에 거슬리는 일이었지만, 늘 악마에게 장난감들을 팔아야 했다. 이렇게 팔린 장난감들은 멋진 모험을 하다가 결국에는 다 한스 뢰클의 가게로 돌아왔다"


늘상 경제와 정치를 비롯한 철학적인 주제들 그리고 인간의 악덕과 미덕의 늪에 파묻혀 있었으니 그의 병적인 고뇌가 아이들에게 지어내주는 이야기에까지 뭍어나왔을 것이 당연했다. 그래도 동화에서는 악마에게 팔았던 장난감들이 다시 한스 뢰클에게 돌아왔으니 다행이라고 해야할까. 마르크스의 내면에서는 인간에 대한 사랑과 환멸이 들끓으며 수없이 분열을 일으키고 있었을 것 같다. 점점 더 많이 알아갈수록 그의 삶에 대해 어떤 태도를 취해야할지 몰라 괴로웠다.


# 자연스러운 삶


사회주의로서 사회주의는 본질로서의 인간과 자연의, 이론적 실천적 감각적인 의식에서 출발한다. 현실적 생활이 적극적인, 더는 사유재산의 지양, 공산주의에 의해 매개되지 않는, 인간의 현실인 것처럼 사회주의로서 사회주의는 적극적인, 더는 종교의 지양에 의해 매개되지 않는, 인간의 자기 의식이다.

공산주의는 부정의 부정으로서 긍정이며, 그에 따라 인간 해방과 회복의 현실적인, 임박한 역사 발전을 위한 필수적인 계기이다. 공산주의는 임박한 미래의 필연적인 형태이며 에너지로 충만한 원리이지만, 공산주의는 그 자체로 인간 발전의 목표- 인간적 사회의 형태 - 가 아니다. -『경제학-철학 수고』, 카를 마르크스


마르크스는 『경제학-철학 수고』에서 사회주의를 그가 생각하는 최종적인 이상 사회로, 그리고 공산주의를 사회주의로 이행해 나가는 상태로 보았던 것 같다. 그러나 그가 생각하는 공산주의는 다소 추상적이었다. 그래서였는지 그는 공산주의가 아닌 것을 말함으로써 더 많은 것들을 설명한다. 그는 사유재산 (여성을 포함하여)을 나누자고 말하는 조야한 공산주의자들 (오언, 생시몽, 푸리에 같은 사상가들), 민주적이든 전제적이든 정치적 본성을 따르는 공산주의자들, 국가의 지양을 동반하지만 여전히 사유재산에 영향을 받는 공산주의자들 (구체적으로 언급되지는 않지만, 나의 추측으로는 무정부주의자들을 지칭하는 듯했다. 프루동과 푸리에 등)을 모두 비판한다.


사회적 성격이 운동 전체의 보편적 성격이다. 사회 자체가 인간을 인간으로서 생산하듯이 사회는 인간에 의해 생산된다. 그러므로 사회는 인간과 자연의 완전한 본질통일이고 자연의 진정한 부활이며, 인간의 관철된 자연주의이고, 자연의 관철된 인간주의이다. -『경제학-철학 수고』, 카를 마르크스


마르크스가 말하는 공산주의는 '자연스러운 인간'들이 살아가는 사회였다. 이러한 사회에서는 자연스럽게 공동체적 활동과 공동체적 향유가 생겨난다. 하지만 "사회성의 직접적인 표현"이 반드시 "직접적인 공동체적 활동과 공동체적 향유라는 형태" 만으로 존재하지는 않는다고 말한다.


내가 학문적 등으로 활동하고, 좀처럼 타인과 직접 공동으로 수행할 수 없는 어떤 활동을 수행하고 있다 해도 나는 인간으로서 활동하기 때문에 사회적이다. 나의 활동의 재료가 – 사상가가 활동의 수단으로 삼는 언어조차도 – 나에게는 사회적 산물로서 주어져 있을 뿐만 아니라 나 자신의 현존이 사회적 활동이다. 그러므로 내가 나에게서 만드는 것, 그것을 나는 사회를 위해, 사회적 존재로서 나의 의식을 가지고, 나에게서 만든다. -『경제학-철학 수고』, 카를 마르크스


부끄럽지만 요새 들어 부쩍 '나 지금 뭐하고 있는거지?' 라는 생각이 자주 들었다. '글 쓰는 것도 노동이라고 할 수 있을까?' 부터 시작해서 '내가 쓰는 글이 언젠가는 돈을 받아도 될만큼의 가치가 있어질까?'라는, 마음이 한껏 꺾이는 생각까지. 그 때 이 문장을 만났다. 이 글을 쓸 때 마르크스는 무슨 마음이었을까? (나보다 훨씬 위대한 글을 썼음에도) 그 역시 불안하고 두렵고 울적했겠지. 특히나 아이가 막 태어난 갓난아이를 가진 한 집안의 가장이었는데. 비록 나에게는 합리화라고 하더라도, 조악한 글밖에 써내지 못하더라도, 그에게 미안하지 않을 글을 써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 화폐


마르크스는 자본주의의 핵심 원리라고 할 수 있는 분업에 대해서도 비판한다. 애덤 스미스를 비롯한 국민경제학자들은 분업을 생산성과 효율성 향상을 위한 핵심 원리라고 생각하며 적극적으로 권장했다. 이 분업을 통해 교환 가치와 잉여 생산물이 생겨나고, 잉여 생산물을 교환하기 위해 화폐가 생겨난다. 그럼으로써 절대적인 신, 자본이 증식하기 시작한다. 마르크스와 국민경제학자 사이에 절대로 타협할 수 없는 지점은 이 모든 불평등의 시작점인 사유 재산이었다. 국민 경제학자는 부의 증대가 모든 사람에게 이익을 줄 것이라고 생각하지만 마르크스는 시작부터 불공정한 게임이기에 양극화가 더 심화될 수 밖에 없다고 생각했다. 이런 사회에서 노동자는 결국 동물과 다름 없는 존재로 전락할 거라고 내다봤다. 인간적인 기능, 즉 자신의 능력으로 무언가를 생산해내는 노동을 할 때는 인간성으로부터 가장 멀어져 있기 때문이다.


화폐를 묘사하는 장면에서 그는 다시 한 번 위대한 작가들의 힘을 빌린다. 괴테의 『파우스트』와 셰익스피어의 『아테네의 티몬』에서 화폐의 본성을 절묘하게 묘사하는 장면들을 인용한다.


먼저 괴테의 문장을 해석하는 것으로부터 시작한다. ... 나의 존재와 능력은 결코 나의 개성에 의해서 규정되지 않는다. 나는 못생긴 사람이지만 가장 아름다운 여자도 사들일 수 있다. 따라서 나는 추하지 않은데, 추함의 작용, 사람을 겁나게 하는 힘은 화폐에 의해서 없어지기 때문이다. 나는 - 나 개인의 특성에서 보면 - 절름발이지만, 화폐는 나에게 24개의 다리를 만들어준다. 따라서 나는 절름발이가 아니다. 나는 사악하고 비열하고 비양심적이고 똑똑하지 못한 인간이지만 화폐는 존경받으며 따라서 화폐의 소유자도 존경받는다. 화폐는 최고의 선이며 따라서 그 소유자도 선하며, 그 밖에도 화폐는 내가 비열하기 때문에 겪는 곤란에서 나를 벗어나게 한다. 따라서 나는 존경할 만한 사람으로 여겨진다. 나는 똑똑하지 못한 사람이지만, 화폐는 모든 사물의 현실적인 정신이니, 어떻게 그 소유자가 똑똑하지 못한 사람일 수 있겠는가? 게다가 그 소유자는 똑똑한 사람들을 살 수 있고, 똑똑한 사람들을 지배할 수 있는 힘을 가진 자가 그 사람들보다 똑똑하지 않겠는가? 인간의 마음이 갈망하는 모든 것을 화폐를 통해 마음대로 할 수 있는 나는 인간의 모든 능력을 가진 것이 아니겠는가? 따라서 나의 화폐는 나의 모든 무능력을 그 정반대의 것으로 전환시키는 것이 아니겠는가? -『경제학-철학 수고』, 카를 마르크스


셰익스피어는 화폐에서 두 가지 속성들을 특별히 부각시킨다:

1. 화폐는 눈에 보이는 신이며, 모든 인간적이고 자연적 속성을 그 반대의 것으로 전환시키는 것이요, 사물의 보편적 혼동과 전도이다. 그것은 불가능한 일들을 친근한 것으로 만든다.

2. 화폐는 보편적 창녀요 인간과 국민들의 보편적 뚜쟁이이다. -『경제학-철학 수고』, 카를 마르크스


한 때 나는 여행을 즐겼었다. 물리적으로 새로운 장소에 가는 여행뿐만 아니라, 새로운 것들을 도전하는 여행, 새로운 사람을 만나는 여행까지도. 그 때마다 두렵지 않았다. 젊음이라는 자산 때문만이 아니었다. 돌이켜서 생각해보면, 그 때의 나는 화폐라는 절대적인 신을 등에 업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전혀 생소한 곳에 가도 두렵지 않았다. 화폐만 있다면 가장 안전한 곳을 찾아 갈 수 있고 배를 굶지 않을 수 있었고 언제든지 새로운 경험을 돈으로 살 수 있었고 위험에서 빠져나올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처절하게 오만한 생각이었다. 그 모든 헛된 자신감들은 모두 화폐가 나에게 빌려준 힘들이었다. 주인을 잃자 나의 형편없는 자존감은 하염없이 쭈그러들었다.


그 결과 인간(노동자)은 가장 동물적인 기능을 할 때만, 즉 먹고, 마시고, 생식할 때만, 또는 기껏해야 자신의 거처와 장식품 속에 있을 때에만 자신이 자유롭다고 느낀다. 반면 인간적인 기능을 할 때는 동물과 다름없다. -『경제학-철학 수고』, 카를 마르크스


쿠팡에서 같은 자리에 서서 여덟시간 동안 포장 작업만 반복하고 있노라면 정말이지 내가 기계가 된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옆에서 흘러가는 컨베이어 벨트가 나의 동료처럼 느껴질만큼. 그들의 흐름에 내가 동조된다고 느낄때면 더더욱. 최근 쿠팡에는 AI 기술이 도입되었고, 기계들의 흐름은 조금 더 '인간적'이 되었다. 화장실에 갈 때 밥을 먹고 물을 마실때에만 나는 자유를 느낀다. 노동자든 자본가든 화폐라는 주인의 지배를 받는 노예들은 누구나 동물이 되고 기계가 된다. 현자들의 섬뜩한 예언이 부디 현실이 되지 않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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