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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루니 Nov 28. 2023

화란 (2023)

삶과 현실과 죽음의 삼분법


한국영화를 가장 사랑할 수 있는 사람은 한국인이 아닐까.



화란 (2023)

감독 : 김창훈

주연 : 홍사빈(연규 역), 송중기(치건 역), 김형서(하얀 역)


*스포 있음


보통 영화를 좋아한다고 하는 사람들은 대부분 한국영화를 좋아하지는 않는다. 왜 그지점이 그리 노골적인지는 잘 모르겠다. 한국영화에도 찾아내면 즐거운 영화들이 생각보다 많은데. 오늘 이야기할 화란이 그런 영화 중 하나다.


나는 누아르를 단편적으로 즐기는 것만으로도 만족하는 까탈스럽지 않은 관객이다. 그런데 이 화란이란 작품은 스토리 이면에 뭔가 보이는 것들이 더 있었던 것 같다.


얘는 아직 어려서 그런 거 잘 몰라요,
그러니까,


조직의 작은 형님을 국회의원으로 만드려고 성접대를 시사하는 자리에 큰 형님은 막내인 연규를 투입시키려고 하니 치건이 연규에 대한 걱정 반, 일처리에 대한 걱정 반으로 했던 말이다.


그 말에 그러니까, 하고는 괄호 안에 (이용하기 쉽지) 라는 말이 들어있는 것처럼 뜸을 들이는 큰 형님의 모습을 보면서 어쩐지 다음소희 라는 영화가 생각났다. 다음소희에서는 직접적으로 느꼈던 현실의 악랄함이 화란에서는 은유적으로 반영되어 있는 장면이었던 것 같다.




화란은 삶과, 현실과, 죽음에 대해 말하고 있는 영화다. 언뜻 보면 이 영화는 치건이 ‘애새끼’시절의 자신을 보는 듯한 연규를 새아빠의 지옥에서 끌어올리는 구원서사처럼 보인다. 치건이 연규를 위한 그런 역할로 보인다.


그러나 마지막에 연규의 손에 죽길 원하는치건의 모습에서 이 영화의 진정한 주인공이 치건이 아닐까 라는 생각이 들었다.


애새끼는 그때 이미 죽었어,


치건은 시종일관 연규에게 이 말을 한다. 낚시꾼에 의해 건져졌지만 아버지는 자신이 죽을뻔한 사실도 몰랐던 그때부터 자신의 <삶>은 끝이라는 뜻이다. 치건에게 낚싯줄은 생명줄이 아니라 도리어 <현실>의 굴레와 같다고 보인다. 무의미한 ‘해야 되는’ 것들에 파묻혀 다람쥐 통처럼 반복해야 했기 때문이다.


치건은 연규를 위해 대신 해결책을 모두 만들어 두고 있었는데, 정작 연규는 스스로 해결하겠다며 하얀을 데려와 ‘부탁’을 하고선 결국 돈을 만들어오지 못하자 손을 자르는 것으로 해결을 하려 했다.


연규는 치건이 말할 시간을 주지 않았다, 이 사회에서 배운 대로 행동하느라. 그런 연규를 처음에는 저지시키고 대화를 하려고 했던 치건은 어느 순간 연규는 돌이킬 수 없어졌다는 것을 느꼈던 것 같다.


아니, 어쩌면 그 순간이 올 때까지 공을 들여 연규를 붙잡아 두고 있었던 것처럼도 보인다. 연규의 손에 마침내 <죽기> 위해서. 낚시꾼은 자신을 살려준 것처럼 보이지만 새로운 굴레가 됐듯, 자신도 연규에게 낚시꾼과 같은 굴레였을 것을, 연규 스스로 끊어내길 원했던 것일지도 모른다. 사실 연규를 위함 보다는 자기 자신이 이 삶도 죽음도 아닌 현실이란 굴레에서 진정으로 놓이고 싶었던 것이 더 클지도 모르겠다. 낚시꾼의 손에 산 게 삶이 아니었듯, 낚시꾼의 손에 죽는다면 죽음이 아니기 때문이다.


애새끼는 그때 이미 죽었다고 했지, 그런 질문은 살아있는 사람이나 하는 거야.


치건을 통해 분명히 할 수 있는 점은, <삶>과 <현실>은 결코 같지 않다. 삶과 죽음의 이분법이 아니라 삶과 현실과 죽음의 삼분법을 보여주는 이 영화는 치건을 통해 관객에게 질문을 던진다. 당신의 삶은 왜 그래야 하나요? 가 있는 삶인지, 그럴 필요가 없는 현실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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