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탈 직장인' 고지를 눈앞에 두며

퇴사를 앞두고 나다움을 지키기 위한 용기를 내는 글

by 루플레아


2021.10. 어느 날




처음 해보는 퇴사도 아니고 이미 두 번의 경험이 있는데도, 이번엔 무난하지 않은 과정을 지나고 있다. 그만큼 이 결정의 무게가 결코 가볍지 않기 때문이다. 다시는 더 없을 거라 장담하는 '내 인생 마지막 퇴사'이기에, 버리고 비워내야 할 마음이 많은가 보다. 아직 미련이 많은 건지도 모르겠고.


이번 퇴사 결심이 남다른 것은 다른 곳으로의 '탈주'도 아니고 당장 힘들어서 선택한 '탈출'도 아니기 때문이다. 직장생활의 익숙함을 벗어나기로 작정한 새로운 '시작'이기 때문이다. 사실 이건 이 회사에 입사한 당일부터에 걸어둔 나와의 약속이었다. 이곳에서 할 수 있는 경험을 끝으로 더 이상 회사생활은 하지 않겠다고.


그래서였을까? 나는 이곳에서 유독 과중하고도 난잡한 업무와 분위기를 초인적으로 감내했다. 내게 이곳은 그야말로 전쟁터였다. 질투와 견제로 점철된 인간관계에 상처받는 날들이 많았고 버팀목이었던 절친한 동료들의 잇단 퇴사를 지켜보며 당장 그만두고 싶은 마음을 이성의 끈으로 혹독히 붙잡았다. 최대한 모든 상황을 긍정적으로 보려고 애쓰며 버틴 것. 그 뿐 이었다. 내겐 어떤 날도 쉽지가 않았다. 왜 굳이 감당했느냐 묻는다면, 이곳이 내겐 마지막이었으니까. 환경에는 휘둘리고 싶지 않았던 것이다. 직장인으로서의 끝을 낸다면 그게 내가 결정한 이유로 내가 버틸 수 있는 한에서 스스로 끝맺고 싶었다. 그렇게 내가 버티며 믿은 신조는 '의지만 있다면 안될 게 없다'였다.


그렇게 작정한 덕분인지 이 치열한 전쟁터에서도 내게 얻는 것이 많았다. 입사 초반부터 기량과 잠재성을 과분히 인정받았고 다양한 경험과 경력을 쌓았기 때문이다. 특히 내 이름과 얼굴, 목소리를 내걸고 회사에서 해내는 일이 많았다. 그건 단순히 '회사 일'이 아니었다. 나의 얼굴과 이름을 걸었기에 내 진심을 담지 않을 수 없는 과정이었다. 거기서 얻는 가치는 꽤 깊이가 있었고 더욱 나의 커리어를 빛나게 해주었다고 생각한다. 그토록 괴로웠어도 그때로 되돌아가겠느냐 묻는다면, 나는 다시 그 여정을 선택할 것 같다. '빛을 받아 반짝이는 순간에도 그림자가 드리우는 곳이 있다'는 사실을 어쩌면 그 여정이라서 얻을 수 있던 깨달음이었기도 하다.


"건강한 거 같은데..?" 싶은 외양에도 허약한 구석이 많고 잔병치레도 잦았던 나는 직장인이라면 으레 달고 사는 만성 스트레스 통증쯤으로 여긴 복통이 어느 날 유독 이상하게 다가왔다. 평소답지 않게 나는 곧장 병원에 갔고 수술이 불가피한 위급한 상태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내 인생에 처음으로 갑작스러운 수술 일정이 덜컥 잡혔다. 주위에선 괜찮은 거냐고 걱정 어린 마음과 놀라움에 안부를 물었지만 오히려 내 반응이 너무나 무뎠던 것 같다. 그때 했던 생각은 '휴직기간이 생겼네. 드디어 쉬겠네..' 였다. 도대체 어떻게 살았던 거지 나는.


점차 입원 날짜가 다가오기 시작하면서 나는 알 수 없는 감정에 혼란스러워지기 시작했다. 직장인으로 살던 시간들이 주마등처럼 스쳐갔다. 앞만 보고 '뛰어야만' 가능했던 일거리들을 나는 마치 훈장처럼 여기며 해내었을 뿐이었다. 워커홀릭. 내 이름 대신 '강사'라는 삶 뿐이었다. 강의 직무를 오래 맡으며 감당했던 것은 생각보다 무거웠던 것들이었다. 나에게 탁월한 전문성을 요구하는 수많은 타인의 시선, 나 스스로도 남다르길 바랐던 욕심. 더욱 치열한 삶을 살 수 밖에 없던 이유였다. 사회초년생 시절부터 '나약하면 절대 프로가 될 수 없다'는 다짐은 잘 지켜낸 것처럼 보이지만, '나'는 없고 '직업인'으로서 기능하며 살아온 삶이 남았다는 것을 이제야 깨달은 것이다. 왠지 모를 허무함을 느꼈던 순간, 그제야 진짜 '나'를 만난 것 같았다. 그 자각은 '나'에게 너무나 미안해져 저절로 눈물만 났다. 더 이상 이렇게 살아선 안될 것 같다고, 그러고 싶지 않다고 처절히 깨달았던 밤이었다.


그동안 살던 인생과 완전히 다르게 살겠다고 다짐했다. 내가 좋아하고, 하고 싶은 것들 하면서, 좋은 사람들과 진심을 나누는 의미 있는 인생. 그게 참 간절했다. 그렇게 살아가면, 정말 내 꿈도 이룰 수 있을까? 사실 여전히 하고 싶은 것도, 잘 해내고 싶은 것도 많은데. 어쩌면 이 모든걸 해낸다는건 비현실적인 꿈일까?

아직은 그 방법을 잘 모르겠지만... 이제라도 각성한게 다행 아닐까. 무엇보다 지친 몸과 마음만 잘 챙길 생각만으로도 모자를 타이밍이었다. 내 몸을 건강하게 되찾는다는 단 하나만을 목표할 에너지만 겨우 남아있었다. 그렇게 생각하니 어떤 명예든 내겐 무의미했다. 그렇게 '탈 직장인'으로의 선택을 확신했다. 비로소 처음으로 어느 누구도 생각하지 않고 나만을 우선하는 선택을 했다.


직장인을 그만둔다는 선택은 꽤 큰 용기가 필요한 일이다. 늘 살아온 익숙한 일상을 멈춘다는 것을 넘어, 바꾸기로 노력한다는 자체는 큰 용기 없이 감당하기 어렵다. 당연함이 주는 안정감 속에 숨겨진 수많은 혜택을 포기해야 하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월급이 주는 안정감에 취해 다시 이 쳇바퀴를 굴리는 선택을 하고 싶지 않았다. 어쩌면 내가 훨씬 더 행복해질지 모를 삶을 평생 모르고 살아가고 싶지 않았다.


안전한 울타리 없는 야생에 있기로 한 게 정말 잘한 선택인지, 사실 여전히 불안하고 걱정한다. 그럼에도 내가 살아야 할 방향이 이쪽이었다는걸 진작부터 알았던 것처럼, 나는 이 선택에 무작정 거는 기대와 희망도 있다. 어쩌면 이럴 인생일걸 알고 있었는지도 모르고. 눈에 띄는 확신은 아직도 모르겠지만.. 이순간 유일한 정답은 스스로를 잘 다독이고 믿어주는 것 뿐이다. 그게 할 수 있는 방법이고.


퇴사 당일까지도 혹독한 스트레스를 주는 이곳에서의 여정은 끝까지 쉽지 않다. 자잘한 파열음에 귀 기울이지 않겠다는 다짐을 이 글을 통해 한번 더 되새긴다. 더 넓은 세상으로 핸들을 돌리는 것만으로도 나는 충분하다. 겪어야 할 것들이 있다면 기꺼이 부딪쳐보겠다. 역경에 겁내기보다 나다움을 믿고, 느껴보지 못한 새로운 행복을 만나러 떠나보겠다. 이 도전만으로 설레는 박동소리에 나는 더 집중하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