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존엄하게 산다는 것>을 읽고
이 책을 만난 건,
이 책을 볼 수 있게 '독서모임'이라는 걸 생전 처음 시작할 수 있었던 건
감히 운명일지도 모르겠다는 벅찬 마음을 잠시 밝히며.
약 10년의 직장생활을 마무리하며 맞이한 백수 생활이 어느덧 8개월 차에 접어든다. 시간이 빠르게 흐르는 것을 야속해하며 지난 시간 내게 무엇이 남았는지를 잠시 들여다보았다.
이렇게 길게 쉬어본 적도 없고 이렇게 오래 쉴 줄도 몰랐지만 절대적인 안정과 휴식이 필요했던 건강상태였기에 주위 사람들은 쉬는 것에 스트레스받지 말라고 했다. 하지만 무의미한 건 못 참는 '생산성 추구 인간'인 탓에 자꾸만 그 8개월의 공백을 한 뭉치로 보게 된다. 뭔가 외적으로 남은 게 없다는 기분에 자주 자책도 하면서.
하지만 이 책을 읽는 동안, 나는 8개월을 결코 헛되지 않게 보냈음을 이제야 확신했다. 그동안 애썼다고 고생 많았다고, 지금 잘 가고 있다고 작가에게 인정받은 기분까지도 든다. 아무 계획 없이 제멋대로 나아가고 있는 줄 알았던 여정은 '존엄'이라는 이름의 방향으로 이어져오고 있었음을 깨달았기 때문이다. 새로운 커리어를 위해 방향과 방법을 찾는 이 시점, 홀로 사회에 선 나는 어떤 사람으로, 어떤 일로 자립할 것인지의 그 목표를 어렴풋이 찾은 것 같기도 하다. 혼자 고민했다면 절대로 하지 못했을 확신을 나는 이 책을 만나 해낸 것이다. 참 놀랍고 신기하다. 적절한 타이밍에 적절한 동기부여 매개를 만나는 건 진정한 행운이 아닐 수 없다.
예전부터 생각한 건 '나는 참 자아가 강하구나..'라는 거였다. 나만의 철학이라 해야 할지, 적어도 '이렇게는 해야지!'라는 소신이라 해야 할지. 요즘 말로 하면 '나다움'에 대한 의식 수준이 유별나다고 느낀 적이 많았다.
그래서 직장생활에서는 크고 작은 부침을 자주 경험했다. 차분하고 묵묵하게, 야무지게 일하는 사원임에 분명 하나, 어느 포인트에선 무언의 의사나 자기 주관을 강하게 표시하기도 하는 '직장인스럽지 않은' 의문의 우수사원.
차분하게 일하는 모습도 내가 맞고, 때로는 곤조를 부리는 모습도 내가 맞다. 보편적인 직장인의 생존 마인드와는 조금 달랐던 것도 인정한다. 지위나 권력 앞에서 나의 자존을 뭉개기보다는 신념을 지키는 쪽으로 선택해 왔기 때문이다. 그걸 이 책에서는 우리가 따라야 할 '존엄'이라고 표현해 준다..(당황)
그러나 내가 경험한 조직 안에서는(아마도 보편적인 한국의 조직 체계에서는) 그 존엄을 실현한다는 게 '잘 못'처럼 여겨질 때가 있다. 그래서 때로는 내가 틀린 사람처럼 여겨졌을지도 모른다. 거기서 오는 상처가 있기도 했다. 조직 생활에 대한 회의감도 자주 찾아왔고.
'내가 직장생활을 잘못하는 걸까? '
'정말 이 세상에 나와 같은 생각을 하는 사람은 없는 걸까?'
'그럼에도 조직에 있어야 하니, 나를 없애고 융화를 해야 하는 걸까?'
결국 건강에 문제가 생겨, 예상치 못한 타이밍에 나는 조직의 굴레에서 벗어나게 되었다. 탈 직장인 세상을 찍먹 하면서 매번 알게 되는 건, 놀랍게도 그동안의 나는 잘못되지 않았다고, 틀린 사람이 아니었다고 증언하는 멋진 사람들, 내면이 단단했기에 성공할 수 있었던 사람들이 가득한 세상이었다.
자신의 시간을 갈고닦으며 단련하는 삶이 당연한 사람들,
진심으로 잘 되기를 응원하고 격려하는 마음이 있는 사람들,
기꺼이 자신의 것을 내어주고 나누며 공헌하는 사람들.
내가 봐왔던 사회생활 안에서는 '과연 있을까' 했던 사람들이 존재했다. 아니 한가득이다.
그렇다면 나는 도대체 그동안 어떤 세상에서 누구와 함께였던 걸까.
존엄하기 위해서, 인간다움을 깨닫고 실천하기 위해서는
그 길을 혼자서는 배울 수 없고 혼자 갈 수 없기에 '함께'여야 한다.
그렇기에 내 주위에 누가 있는지가 정말 중요한 것이었다.
(그래서 독서모임에서 함께할 이들과의 시간도 괜히 더 기대되는지 모르겠다)
의식하지 않는 인간은 그저 나약하다. 이제는 의식하고 생각하는 삶이 결코 쉽지 않은 세상이 되어버려서, 간신히 하루를 버텨내는 것에도 아낌없이 칭찬해 주는 게 미덕이 될 정도다. 하지만 그래서 더욱 우리는 치열하게 나다움과 인간다움을 고민해야 하는지도 모른다.
다만 그 고민이 당연함이 아니라 아직도 선택으로 여겨지기에, 또 누군가에겐 사치로 여겨지기에, 여태 우리의 내적문제들은 늘 도돌이표처럼 되풀이되는 것일지도 모른다. 그래서 존엄한 사람을 추구하며 적극적인 삶을 살아야 하는 게 우리의 숙제일 거다.
다시 나의 8개월을 다시 돌아본다.
나는 전보다 내가 무엇을 좋아하는지 무엇을 하고 싶은지, 어떤 삶을 원하는지 잘 알고 있다. 또 자신을 돌볼 줄 아는 게 가장 중요한 걸 깨달아서, 이제는 귀찮던 운동을 꾸준히 하고 있고 이왕이면 건강한 양질의 식사를 챙긴다. 한때는 풀 메이크업과 반듯한 옷을 입지 않으면 쉽게 외출도 못할 정도였지만 민낯도, 쌩손톱도, 헐렁한 티셔츠와 바지도 나에게 훨씬 더 익숙해졌다. '나'를 향해 집중하고 내실을 기하는 노력은 자연스럽게 주위 사람들 가족, 친구, 동료를 향해 진심으로 고마워할 수 있는 마음으로 변하게 했다. 불필요한 물건도 사람도 과감히 정리하니 진짜 나에게 필요한 것들이 남으며, 더욱 소중함을 느낀다.
나이가 어쩌고~ 신분이 어쩌고~ 하며 이유를 달던 것들에 눈치 안 보고
내가 진짜 좋아하고 사랑하는 것에는 진심을 다하게 됐고
안일했던 집안 살림에도 하나씩 내 손으로 최선을 다해보니
저절로 환경까지도 관심을 두고, 좀 더 친환경적인 삶, 인간다운 삶을 살아간다.
그러고 보면, 얼마 전 정말 오랜만에 만난 친구가 5시간 대화 끝에 내게 전한 말이 있다.
"지은아. 나 오늘 계속 느낀 게... 너 정말 성장한 거 같아. 지금 정말 좋아 보여."
'생산성 추구 인간'에게 또 다른 찬사가 아닐까!
진짜 중요하고 소중한 건 눈에 보이지 않는 거라고 했는데, 그걸 알면서도 왜 그동안 보이는 결과에만 연연했을까. 다시 한번 더 멀리, 더 크게 바라보며, 의식하며 성찰하는 삶을 얻은 것에 감사한다.
이보다 더 큰 의미를 가진 백수생활 더 없지!
이 모든 걸 존엄이라는 가치로 연결 지을 수 있게 된 이 책과, 이 글들이 더없이 소중하게 느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