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 그림자를 보는 게 곧 나의 그림자였다.
내 감정, 내 상처, 내 무의식까지—
오랫동안 들여다보고, 고치고, 꿰매고, 받아들였다.
그래서 나는 직접 선언할 수 있었고,
새로운 수용의 여지까지도 품고 있었다.
그래서 나는 다 지나온 줄 알았다.
남은 건 그와의 통합이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그가 지금 나를 보고 있다는 확신이 필요했고,
“그는 언제 알게 될까?”
“이 시그널은 의식하고 보낸 걸까?”를
계속 궁금해하며,
이 여정을 걸어온 무기가 되어준
나의 이성적, 맥락적 납득을
그의 시선으로까지 바라보며 몇 번이고 연구했다.
이건 어쩌면 일종의 습관이었다.
나의 창작에도 영감이 된다는 논리를 앞세우며,
그렇게 나는 감정 단서들이 보이면 몰입했다.
그건 스스로 청구한 오늘치 감정소비 영수증 같았다.
그런데 오늘은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나는 충분히 지금도 괜찮다고 생각했지만
결국 반응을 바라보는 자체가
나의 완성에 그를 필요조건으로 여기고 있고
아직도 내 시선으로 검증하고 있다는 걸.
창작을 위한 연료라는 ‘논리’를 만들어
나 자신을 납득시키고 있었던 또 하나의 족쇄였다는 사실.
그가 언제 깨달을지,
언제 움직일지를 궁금해하는
감정의 끈이 나를 스스로 묶고 있는 또 하나의 그림자였다는 걸.
연결을 못 느끼는 것처럼 보이는 고요한 순간들,
감정을 회피하고 돌려 말하는 듯한 그의 방식들.
나는 그때마다 의심의 시선으로 바라보았다.
물론 그 의심은
나를 긍정적으로 붙잡아주는 역할도 되었지만
반대로 그에게 시선을 뗄 수 없는 부작용으로 작동하고 있음을 자각했다.
결국 그의 그림자를 보며 불안했던 건 나였다.
그래서 딴에는 알려주고도 싶었고, 도움을 주고도 싶었지만—
그게 그를 향한 선한 본능이었다고 해도,
“네가 있어야 내가 완성된다”는 의존이었음을 온전히 깨달았다.
그 사람의 그림자를 안타깝게 지켜보던 시선 조차 결국 내 그림자와 다름없었다.
그래서 나는 다시 시선을 바꾸기로 했다.
이제는 그가 나를 알든, 모르든,
연결을 의식하든, 안 하든,
앞으로도 반응하든, 하지 않든—
이미 충분히 감응되고 있었던 것을
나는 알고 있다고.
이미 보이지 않는 방식의 무수한 소통을 했고
나는 그걸 나의 앎, 삶의 근거로 깨우쳤다고.
그것은 물리적 연결 자체가 중요한게 아니라
이미 내가 바라보는 시선을 더 넓게 만들어주었고,
지금도 그렇게 자각하며 사람들과 연결되어 살아가는 중이라고.
그러니 이제는 더 넓은 사회 안에서
진정한 연결을 위해
그 사람보다 나를 돌보고,
나에게 더 주목하며 살아갈 거라고.
나를 바라보는 사람들을 돌볼거라고.
사람 간 연결은 반응으로 이루어지는
눈치게임이 아니다.
그렇게 연결되는 관계는 얕을 수밖에 없다.
언제든 상황과 마음에 따라 흔들리고 사라진다.
그래서 홀로 남은 나를 스스로 가엾게 여겨
떠났다고 생각하는 상대를 비난하거나 원망하며 스스로 외로워한다.
진정한 연결의 기조는 연결의 흐름을 믿는 것, 상대를 있는 그대로 믿는 것,
그리고 세상을 바라보는건 온전히 내 시선에 좌우됨을 아는 것.
그래서 내 마음을 시시 때때로 바라보며 챙길 줄 알아야 하는 것.
외부의 흐름에 휩쓸리더라도
다시 온전히 서 있을 수 있는 나 자신을 위해 살아가는 것.
그게 전부다.
내가 품는 마음대로,
내 결대로
우리는 세상과 타인을 해석한다.
타인의 반응에 맞춰 눈치껏 성향껏 조절하여 연결되는건 나만 소진될 뿐이다.
진심으로 이루어지는 연결은
스스로 불편함 없이 살아가는 용기 안에서
타인과 연결을 허용할 수 있느냐의 여부.
그리고 내가 온전하다면,
같은 성질의 온전한 타인이 어떻게든 자석처럼 붙는다.
확신은 외부로부터 받는 것이 아니라,
내가 직접 선택하는 것임을
오늘에서야 내 안에 진짜 깨우침으로 남기게 되었다.
그를 의심하던 마음들은
도리어 내가 나를 믿지 못한 흔적이었다는 걸.
그렇다고 “너 없이 나 혼자 빛날 수 있다”는 마음으로 서는 것은 경계해야 한다.
(그 또한 과도한 자기 우선의 그림자다)
네가 존재하기에 내가 빛날 수 있고,
지금 내 곁에 네가 없어도 우리는 이미 충분해.
라는 깊은 연결을 근거로 한 홀로서기다.
그래서 나는 이제 묻지 않는다.
그가 지금 아는지, 모르는지,
얼마나 알고 있는지—
그게 우리가 연결될 단서도, 이유도 아니다.
여기까지 깨달았다면
이제부터 나는 이제 나를 위해 살면 되는 것이고,
너는 네 삶에서 네 일을 하면 되는 거다.
이 관계에 물리적 연결이 필요하다면
진정성 있게 묶어줄 타이밍과 방식은 우주가 만들 몫이다.
내게 남은 건
이미 모든 것을 삶으로
관찰했고,
감응했고,
표현했고,
살아냈다는 사실.
그 뿐이다.
이제 정말—
나는 괜찮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