머리카락을 자르며, 자라난 내 마음을 다시 보다

미용실 의자 위에서 나눈, 조금은 묘하고도 진솔한 이야기

by 루플레아

오늘은 머리를 다듬으러 간 날이었다.

그런데 웬일인지, 머리보다 마음이 더 다듬어진 날이기도 했다.


원장님은 해외 한 달 살기를 다녀오셨단다.

아들, 친정어머니까지 함께한 꽤 큰 여정.

“사진 잘 봤어요, 되게 좋아 보이셨어요~” 라며 대화를 시작했다.


“네! 특히 혼자서 뭘 한다는 감각이 너무 좋았어요.”

“앞으로는 수영도 배우고 싶고… 전 뭔가 배우는 게 좋아요.”


나는 웃으며 대답했다.

“원장님도 그렇고 저도 그렇고, 확실히 자기 주도적인 성향이 있는 것 같아요.

여행을 놀러 가도 뭔가 스스로 깨닫고 또 배우고자 하잖아요.”


“맞아요. 남편은 괜히 만난 것 같아요.”

순간, 작은 농담 한마디에 공기가 미묘하게 어색해진 것을 느꼈다.

나는 무심한 척 다른 이야기로 살짝 넘어갔다.


그리고 갑자기 원장님이 물으셨다.

“ㅇㅇ씨는 연애 안 해요?”

나는 당황해 웃었고,

그 웃음은 내 감정보다 더 많은 말을 대신했다.


“연애에 딱히 관심도 없고…

굳이 남자를 만나고 싶어서 찾으러 다니진 않아요 ㅋㅋ”

그 흐름은 나도 모르게,

내가 너무 오래 품고 있었던 연애 이야기를 꺼내게 했다.


20살 때 시작된 짧은 첫 연애,

하지만 짧았던 시간이 내게 남긴 깊은 상처와 오랜 미련.

이후, 그 사람에게 복수하듯 시작했던 다른 관계.

잘하려 했지만 결국 오래 끌었던 혼자만의 흔들림.

그리고 첫 연인이 ‘친구’라는 이름으로 다시 내 곁에 남았던 시간들.

확실하지 않았던 관계에서 받은 희망 끝 실망,

그리고 나중에야 알게 된,

“상처받았다고 생각했지만, 나 역시 상처를 준 것일지도 모른다”는 깨달음의 자각.


긴 여정의 이야기를 마치고 나는 말했다.

“그 이후로 연애라는 감정 자체가 사실 질려요.

그런데… 이제는 괜찮아요.”


원장님이 웃으며 말하셨다.

“근데.. 그게 더 연애 같아요. 이름이 없어도 마음이 너무 컸잖아요.”


그리고 이어진 원장님의 이야기.

고등학생 때 만난 첫 남자친구.

10년간의 관계, 결혼을 예감했던 흐름.

하지만 서울이라는 도시의 빛과 문물 앞에서

호기심과 야망이 더 커졌고

결국 결혼은 미뤄지며 이별이 찾아왔다.


그런데 엉겁결에 결혼해 버린 전 남자친구.

그리고 본인의 결혼.

그러다 우연히 전 남자 친구 ID를 검색해 보다가

다시 이어진 연락과 안부.


“인연은 모르는 거더라고요…”

미용실 의자에 앉아, 거울을 마주 보며

원장님 표정에서 느꼈다.

당신의 이야기를 하고 싶으셨구나라고.


조금은 혼란스러운 흐름과 일상을 살아가면서

“이건 무슨 감정일까?”

“그때 내가 잘못한 건 뭘까?”

“그 사람과 나의 관계는 어떻게 된 걸까…” 같은

묻지 못한 질문들이

어디선가 넘쳐흘러 나를 향했을 뿐이다.


오늘 나는 머리를 다듬으러 갔다.

하지만 그보다 훨씬 더 복잡하고 오래된 감정의 잔가지를

조금 더 정리하고 나온 느낌이다.


미용실에서 나올 땐,

머릿결이 가벼워져 있었고

어쩐지 마음결도 가벼워져 있었다.


그게 꼭 ‘치유’는 아니더라도

우리는 그렇게 또 하루를 살아가고,

서로의 이야기를 나누고,

지나간 관계를 회상하며,

여전히 살아 있는 감정들을 살짝 정돈한다.


그리고 생각한다.

관계로 불리는 어떤 이름이 없어도,

마음이 있다면 그건 충분히 ‘연애’였다고.

미련이든, 상처든.

그리고 그 끝에 그 모든 시간을 지나온

지금의 나를 다시금 바라보고 있다는 걸.


부스스한 머리를 자르는 동안

바라본 건

거울 속 내 얼굴이 아니라

훌쩍 자라나 있던 내 마음이었다.


홀가분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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