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자엄마하나와 남자아이셋의 첫번째이야기
아이들이 아빠와 전화한다.
“네, 아빠~ 오늘은 거기서 만나요?”
그 통화를 보고 있는 동네 언니는 들어서는 안 될 말을 해야 하는 것처럼 작은 귓속말을 나에게 한다.
“아빠 만나나 보지?”
나는 큰소리로 대답한다.
“웅 매주 주말마다 애들 아빠랑 밥 먹잖아.”
너무 아무렇지도 않게 대답했나?
언니는 나의 태도를 보고 당황해한다.
나는 이혼을 했다.
지금보다 더 잘 살고 싶어서 그랬다.
사람들은 나에게 묻는다. 혼자서 아이들 세 명을 키우기 힘들겠다며.
힘들다는 기준을 어디에 두어야 할까?
경제적인 상황을 두고 이야기한 것일까? 양육을 염두에 두고 이야기하는 것일까?
물론 경제력을 이야기하자면 하나보다는 둘이 낫겠지만. 그 부분은 자발적인 선택이었기에 누구 탓을 할 수도 없다.
아이들을 키우는 양육을 말하자면 비록 이혼해서 나에게는 남이지만 아이들의 아버지로서 자랑할 만하다고 인정하는 부분이 있다.
엄마와 아빠의 이혼으로 인해서 한 집에서 다 함께 살 수 없는 점은, 아빠를 너무도 좋아하는 아이들에게 미안한 부분이다.
그래서 아빠가 필요하면 언제든지 볼 수 있도록 우리 집과 애들 아빠의 집은 걸어서 10분이면 닿을 거리로 선택했다.
만약에 무슨 일이 생기면 바로 아빠 집에 뛰어갈 수 있도록 하기 위함도 있었다.
사람들은 또 궁금해한다.
“다시 살려고?”
아니라고 해도 믿으려 하지 않았다.
선입견이라는 것이 그렇다.
하루는 아이들과 대화를 해 보았다.
“엄마 생각에는 너희들이 살던 동네고 친구들도 다 여기 있고
그리고 아빠도 가까이 사니까 엄마아빠가 이혼을 했다고 해서 낯선 동네로 가는 것보다는 여기가 좋겠다고 생각했어.
그래서 그냥 이 동네에서 살기로 했는데 혹시 너희들 엄마 이혼한 거 창피해?”라고 떨리는 마음으로 물어봤다.
아이들은 1초의 고민도 없이 이야기한다.
먼저 초등학교 2학년인 막내아들은
“애들이 우리 집 아빠네 집, 집이 2개나 된다고 부러워해요. 그래서 난 좋아요.”라고 말한다.
초등학교 6학년인 둘째 아들은
“ 내 친구 중에는 아빠랑 같이 사는데 나보다 더 아빠를 못 보는 친구들도 있어요.
그리고 어떤 애는 엄마 아빠도 있는데 할머니, 할아버지랑만 사는 애도 있고. 그래서 괜찮아요.”
중1 학년 큰아들
“ 난 좋아요. 온라인 강의 들어야 하는데 애들이 다 컴퓨터 쓰고 있으면 아빠네 집에서 수업을 들을 수 있거든요. 아빠가 그렇게 하라고 했어요.”
내가 쓸데없는 걱정을 하고 있었다.
아빠를 만나고 무엇을 먹었는지 무슨 이야기를 했는지 세명의 아이들이 돌아가면서 조잘거린다.
아빠가 너무 좋다며 나에게 자랑한 날의 이야기이다.
그날은 만나기로 한 날도 아니었다.
나는 출근했고 코로나로 인해 아이들끼리 집에 있었던 아침이었다.
지금 나올 수 있냐고 아빠에게 전화가 왔다.
빨리 나오라고 해서 아이들은 겉옷만 대충 입고 슬리퍼를 신고 나갔다.
어디를 간다는 말도 안 하고 아이들을 자동차에 태우고 출발한다.
한참을 달려 내린 곳은 산 중턱, 벚나무들이 지붕처럼 엉켜있었고. 벚꽃잎이 하늘하늘 내렸단다.
큰아이의 표현에 의하면 비밀의 정원에 들어 온 기분이었다고 했다.
아이들 아빠는 “너희들한테 빨리 여기 보여주고 싶었어.”라고 했다.
엄마에게 부족한 감성적인 부분을 아빠에게서 채워가는 아이들을 보면서
나는 아이들에게 “할아버지가 너의 아빠 같았으면 엄마는 좀 더 행복했을 것 같아.”라고 인정했다.
한때는 아이들에게서 아빠의 닮은 행동이 보일 때면 진저리가 쳐질 만큼 싫어서 야단칠 때도 있었다.
살아가면서 힘든 일이 있을지라도, 예쁜 것 보면 사랑하는 사람이 떠올리는 자상한 마음.
그 마음.
닮았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