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 많이 부족했다.

호박이 이야기 -

by 루이첼

조금 늦어서 인지 출근길 2호선에 자리가 많다.

성수역까지 가는 동안 앉아서 이어폰을 귀에 꽂고 고개를 들었는데.

아주 똑같이 생긴 아빠와 어린 딸이 다리를 달랑거리며 맞은편에 앉았다.

동그란 얼굴도 똑같고 앉은 모습도 똑같은 부녀지간이다.

안경 쓴 모습도...

여자아이는 5살 정도 되었을까

.

.

우리 아들 호박이도 5살부터 안경을 썼다.

아무 의미 없이 말하기 좋아하는 사람들은 으레 "으이구 너 티브이 많이 봤구나?"라고 했지만.

선천적으로 난시를 가지고 태어난 아이는 영유아 건강검진 때 눈이 잘 안 보인다는 걸 알았다.

안과종합전문병원에 가서 각종검사를 하고 처음 안경을 쓴 날도 오늘같이 비가 내리는 봄이었다.

"우와.."

안경을 쓰고 선명해신 세상을 다시 본 5살 호박이의 반응이었다.

그리고 혀 짧은 5살 특유의 그 발음으로

"엄마 낳아 주셔서 감사합니다."라고 했던 그 목소리가 생각이 났다.

그때 호박이는 14개월 어린 동생 고구마가 있었고. 몇 년 후에 막냇동생 감자가 태어났다.

그리고 호박은 6,7살 내내 안경 때문에 많이 야단을 맞았다.

"안경 잘 챙기지 못해?!!!"

내가 그랬다.

6,7살이 무엇을 어떻게 챙긴단 말인가 그래서 엄마가 있는 것이 아니던가.

그 애보다 더 어린 동생에 비해서 큰 아이 같아 보였다.

스스로 무엇이든 알아서 잘해주기를 바랐던 난 특히 안경 때문에 잡들이를 했다.

정말 안경 때문에 그 아이에게 그랬을까?

아니면..

해결하지 못하는 감정을 아이에게 쏟아버렸던 건 아닌지.

13년 전 어린 호박이에게 다시 달려가서 안아주고 싶다.

엄마가 미안해..

미안해..


퇴근길에 훌쩍 커버리고 기숙사 생활을 하고 있는 호박이에게 용건 없이 전화를 해 본다.

안 받는다.


호박이에게 전화가 왔다.

"네 엄마. 아까 족구 중이었을 때 전화 했네요."

"웅 족구 했구나. 저녁은 먹었니?"

"이제 먹어야 줘."

"그래.. 그냥 해봤어. 생각나서."

"네."


... 나도 아이처럼 엄마로서 자라고 있는 거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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