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말에는 심즈 4로 우리 부부와 똑같이 생긴 심(캐릭터)을 만들어 플레이를 하며 종종 시간을 보낸다. 처음엔 건축모드로 현실 속 우리 집과 똑같은 구조의 집을 지어서 정말 집에 사는 느낌으로 게임을 했다. 소품 하나하나까지 집을 그대로 본떠 만드니 리얼한 느낌이었다. (살다 보니 집이 작아져 결국 갤러리 속 그림 같은 집으로 이사하긴 했지만...)
심즈를 시작한 지 반년 정도 되니 어느새 애도 두 명이나 낳고, 육아도 겪었다. 현실에서는 아직 결혼한 지 1년 된 신혼부부인 우리에 비해 진도가 좀 빠르긴 하지만, 어느 정도 현실성이 있고 플레이를 하면서 인생의 교훈을 길어내기도 한다. 오늘은 심즈로 가족 플레이를 하면서 배운 것들을 정리해보려고 한다.
1. 육아
결혼 전에 우리 부부는 육아에 대한 이야기를 자주 나눈 편이어서 육아 스타일을 어느 정도 스스로 안다고 생각했었다. 그러나 진짜 심즈에서 애를 길러보니 나의 태도는 예상과 조금 달랐다. 현실의 나는 '자율방임형'을 주장했지만 막상 애를 키워보니 잘 키우고 싶은 욕심이 생겨 아이를 엘리트(?)로 키워내는 데에 혈안이 되었다.
학교를 다니기 시작하고 나서는 추가 점수를 위해 숙제를 하루라도 거르지 않기 위해 노력한다든가, '친구 사귀기'보다 늘 '열심히 공부하기'를 선택하는 편이었다. 그러다 보니 첫째 이새는 좋은 학업점수를 받아오긴 했지만 사람이 많이 모이는 장소를 꺼려하는 대인기피형(?)으로 자라 버렸다.
둘째 이진이는 어릴 때부터 하루종일 육아도우미를 붙여놓고 키우다가 아이의 욕구를 제때 채워주지 못해서인지 성향에 '불행한 영아'라는 딱지를 얻어버리고 만다... 어린 시절 부모의 케어와 세심한 육아가 중요하다는 걸 보여주는 교훈이었다. 여담이지만 심즈에서 나오는 애기 심들은 확대해 보면 젖살이 통통한 볼때기와 아장아장 걷는 모습이 정말 정말 귀엽다.
현실의 우리는 아이를 갖기 위해 노력 중이지만, 나중에 실제 육아를 할 때 유념해야 할 몇 가지 포인트들을 얻어낼 수 있었다. 게임은 게임일 뿐이고 현실에서 잘하는 게 중요하니까.
2. 저장하지 않고 종료
심 부부도 가끔 부부싸움을 한다. 그런데 제때 해결하지 못하면 관계가 파국으로 흘러갈 때가 있다. 작은 오해를 즉시 풀지 못하면 서로 한 마디도 섞지 않으려 하고, 그 이후엔 억지로 말을 걸어도 서로를 비난하는 등 부정적 상호작용이 난무한다.
당혹스러움에 게임종료 버튼을 누르고는, 팝업화면에 뜨는 몇 개의 선택지 중 '저장하고 종료'가 아니라 '저장하지 않고 종료'를 누르고 싶은 욕구에 사로잡힌다. 실제로 상황이 너무 걷잡을 수 없이 악화되어 해결의 여지가 없고 그저 이전으로 돌이키고 싶을 때엔 이 버튼을 몇 번 누르기도 했다. 그럴 때 문득 든 생각은, 실제 인생에도 '저장하지 않고 종료'와 같은 버튼이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인생에서 저지르는 수많은 실수들을 없었던 것마냥 덮어버리고 싶은 욕망은 누구에게나 있다. 만일 오늘 하루를 '저장하지 않고 종료' 할 수 있다면...? 그런 달콤한 상상을 하기도 한다. 이 버튼을 누르고 다음에 다시 게임을 켜면 온갖 부정적인 일이 발생하지 않은 단계로 돌아간다. 그 이전 상황으로 돌아가 나쁜 일이 일어나지 않은 시나리오로 다르게 플레이하는 것이다. 그렇게 하면 싸움도 불화도 없이 깔끔하다. 이러한 점에서 심즈 속 세상이 참을 수 없이 부럽기도 하다.
남편에게 이 이야기를 했더니 '맞아. 하지만 인생은 그런 게 아니야'라는 즉각적인 피드백이 돌아왔다. 아쉽게도 현실엔 저장하지 않고 종료할 수 있는 옵션은 없다. 문제는 어떻게든 해결해야 하고 돌이키고 싶은 게 있다면 열심히 노력해서 회복해야 한다. 오해가 있다면 상대에게 다가가 대화로 풀어야 한다. 현실은 심즈 속 세계와 다르다.
3. 인생의 목표
심즈에서는 심의 거시적인 인생 목표를 설정하게 되어 있다. 그리고 이와는 별개로 생활과 보다 밀접하고자잘한 소망들이 한 번에 3~4개씩 생겨난다.
인생 목표에는 '행복한 대가정 만들기', '억만장자 되기', '최고의 사업가 되기' 같은 것들이 있다. 현실에서도 목표지향적 삶을 살아왔던 나는 이 거시적인 목표를 이뤄주는 데에 목을 맸다. 직업에서 최고레벨에 도달하기 위해 직장에서 뼈 빠지게 일하고, 열심히 돈을 벌어오곤 했다. 그러다 보니 일상에서 생겨나는 작은 소망들('좋아하는 장르의 음악 듣기', '데이트하기', '누군가에게 키스하기' 등)을 채우지 못해 어딘가 불만족스러운 결핍 상태가 되고 스트레스 레벨이 최고치에 달하기도 한다.
그래도 목적달성부터 해야 직성이 풀리는 나는 인생 목표를 우선적으로 2~3개 정도 이뤘고, 그다음에 약간 쉬어가고 싶은 마음에 다음 목표를 설정하지 않았다. 그랬더니 세상에나, 인생이 너무 편해지는 게 아닌가! 그냥 수영장에서 누워서 물에 떠 있기를 한다든지 자동모드로 심이 원하는 행동을 하게끔 내버려두었다. 그래도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심지어 스트레스를 받지도 않았다.
내 심 특성 중 하나가 덤벙 거림이었는데, 소망 란에 종종 '4시간 동안 덤벙거리지 않기'가 뜨곤 했다. 소망이 4시간 동안 덤벙거리지 않아 보는 것이라니 귀엽기 짝이 없다. 단순히 넘어지지 않는 것만으로도 소망을 이뤘다고 알림이 뜨며 소량의 보상 포인트가 쌓였다. 이 지점에서 배운 것은 다음과 같다. 목표를 단순화하면 쉽게 행복해질 수 있다는 것이다. 크고 거창한 행복을 얻진 못하지만 소소한 행복만으로도 사람은 기분이 좋아진다. 인생 별 거 있나. 이런 순간이 모여 삶이 되는 것이다.
반대로, 오랫동안 심들의 인생 목표를 설정하지 않은 채 플레이를 하다 보니 재미가 없다는 또 다른 맹점이 생겨났다. 심 가족에게 아무 새로운 일이 일어나지 않고, 노력에 따른 성과와 보상이 주어지지 않으니 그냥 하루하루 기본 욕구(허기, 수면욕구, 배설욕구 등)를 채우는 게 다였다.
나는 평소에도 루틴대로 살아가는 걸 좋아하는 사람이기 때문에 심즈를 좋아하는 것이기도 했지만, 이벤트가 없고 도전요소가 없으니 나조차도 일상 플레이에 흥미가 떨어졌다. 결국엔 밸런스가 중요하다. 너무 꿈만 추구해도 메마른 삶이지만, 그렇다고 아무런 목표도 자극도 없는 무던한 삶은 따분하고 지루하다.
고작 게임 하면서 무슨 교훈인가 싶기도 하지만, 나에게 현생을 사는 데 참고할 만한 무언가를 가상세계에서 대리경험하며 배운다는 건 즐거운 일이다.
이외에도 몇 가지를 간단하게 정리해 보자면,
치트키로 돈을 벌어 비싼 집으로 이사 가면 미관도 아름답고 살기에 편하지만, 얼마 후 어마어마한 금액의 청구서가 날아온다. (버는 수입에 맞는 크기의 집에서 살아야 한다) 분수에 안 맞는 생활에는 대가가 따른다. 인생에는 치트키가 없고 삶에는 언제나 계산서가 따라붙는다.
자식들이 학교에서 연달아 좋은 성적을 받아오거나, 성인이 되어 자기 직업을 갖는다고 해도 그것만으로는 목표 달성이 안 된다. 이것 또한 아무리 자식을 키워도 결국엔 우리 부부의 인생이 중심이 되어야 한다는 뜻이 아닐까 싶었다. 자식의 자아실현이 곧 부모의 자아실현은 아니기 때문이다.
마지막으로... 현실엔 '다이어트 물약'이 없다... 평소 규칙적인 운동과 건강한 식단만이 살 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