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기표현의 시대에서 '비밀스러움'을 지향하는 이유
가장 소중한 이야기들은 쓰여지지 않았다.
그걸 안 썼고 앞으로도 안 쓸 것이기 때문에 나는 무사한 듯했다.
이슬아, <일간 이슬아 수필집> 中
장 그르니에는 철학 에세이 『섬』에서 '비밀스러운 삶'을 꿈꾼다. "오직 나만의 삶을 갖는다는 즐거움을 위"해서다. 비밀을 지키기 위해 그가 견지하는 태도는 이렇다. 자신을 드러내는 말을 하지 않는다. 타인과 이야기를 해야 한다면 실제보다 더 보잘것없는 사람인 척한다. 가본 나라에 대해서도 안 가본 나라인 듯 군다. 잘 알고 있는 사상을 누가 이야기하면 처음 듣는 듯 행동한다. 누가 유식한 척해도 토 달지 않는다. 사회적 지위마저 낮춘다.
이 책을 처음 읽었을 때, 자기 자신보다 더 괜찮은 사람인 척하기 위해 가슴을 부풀리는 사람들에게 싫증이 났던 터라 나는 장 그르니에가 꿈꾸는 비밀스러운 삶이 마음에 들었다.
책에는 데카르트가 비밀스러운 삶을 영위하는 전략도 나와 있었다. 데카르트는 대도시 암스테르담에 살면서 사람들에게 자신의 삶을 훤히 노출시킨다. 자주 만나는 수위에게는 먼저 말을 걸고, 수위가 호기심을 발동시키기 전에 선수를 쳐 자신에 관해 미주알고주알 털어놓는다. 이땐, 꼭 매우 디테일하고 솔직하게 속 얘기를 털어놓아야 의심을 사지 않는다. 여기서 신경 써야 할 건, 속 얘기를 털어놓는 분야는 데카르트에게 전혀 중요하지 않은 분야여야 한다는 것이다. 사람들의 호기심을 실컷 충족시켜 주고 나서야 데카르트는 "정신은 자기만의 것으로 간직할 수 있었다"
이 책을 읽은 후부터 나도 '비밀스러운 삶'을 지키기 위해 은밀히 매진해 왔다. 원래도 이미지 관리하듯 두루뭉실 얘기하는 데는 재주가 없었지만, 솔직함의 한계엔 늘 신경을 쓴다. 속 얘기를 털어놓고 싶어도 조금은 남겨놓고, 디테일에 더 힘을 주고 싶어도 결국은 힘을 뺀다. 그렇게 '나만 아는 나'를 내 안에 남겨놓고 '나는 비밀스러운 사람이지' 흡족해한다. 글을 쓸 때도 마지막 한 조각의 비밀은 꼭 남겨둔다. 솔직하게 써야 한다는 걸 잊지 않으면서도, 남에게 보여주지 않을 나만의 삶이 있어야 한다는 것 또한 기억한다.
황보름, <단순 생활자> 中
제가 자주 사용하는 저만의 세 가지 방식을 알려드릴게요. 제가 말씀드리는 방식이 모두 옳은 것은 아니고 시간과 장소, 상대방에 따라 달라진다는 걸 알아주세요. 첫 번째로 일단 투쟁하지 마세요. 여러분의 말을 들어주지 않는 곳에서 왜 투쟁하나요? 에너지를 아끼세요. 우리가 준비됐다고 해도 상대방이 준비되지 않았으면 상대방을 설득시킬 수 없어요. 상대방은 우리가 자신에게 도전한다고 생각하죠. 그러니까 준비되지 않은 상대방을 설득시키려 하지 마세요.
두 번째는 상대방이 몰라도 괜찮으니 여러분의 방식으로 상대방을 이기는 거예요. 우리는 언제나 상대방이 우리의 마음을 알아주길 바라요. 그러나 그것을 알아주는 상대방은 드물어요. 제가 사람들로부터 빈번히 받는 질문이 있어요. “직장에서 부장님이 커피를 타오라고 하면 어떻게 해야 하나요?” 저는 그들에게 그 요구에 저항하지 말고 커피를 타라고 해요. 대신 커피에 침을 뱉으라고 하죠! 침을 뱉는 것을 부정적으로 보는 시각은 서구 문화적 관점이에요. 다른 문화권에서는 이를 다르게 보죠. 국한된 생각으로 상황을 피하지 말고 웃으면서 당신만의 방식과 사상으로 상대방을 이기세요.
마지막으로 일단 침묵하고 실력을 쌓으세요. 첫번째 방식에서 그랬듯이 내 말을 듣지 않으려는 사람에게 힘을 쓰지 마세요. 그곳에 쏟을 힘으로 자신의 실력을 길러 성공하면 내가 그들에게 다가가지 않아도 그들이 먼저 나에게 와요. 그들이 나에게 와서 내가 필요하다고, 대가를 줄 테니 조언을 해달라고 하죠. 부모님이나 가족도 마찬가지예요. 내가 성공하면 내 말에 수긍하지 않았던 그들이 나를 자랑스러워할 거예요. 실력이 나 자신을 입증해주죠. 나를 향한 대우도 달라지고요. 그러니까 다른 곳에 공들이지 말고 나에게 공들이세요. (출처 : 덕성여대신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