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루이제 Jun 24. 2020

상대적 빈곤

상대적 빈곤은 타인의 돌봄노동을 착취한 흔적이 없는 매무새, 누군가가 무급 또는 염가로 발휘한 정성 위에 군림하고 있지 않은 무해함에서 드러난다. 


계급은 작은 디테일이다. 옷의 꼬깃한 주름, 밑단의 실밥, 진작 사라진 섬유유연제 냄새의 아득함, 훈육을 거치지 않은 말투, 밥먹을 때 내는 소리, 앉아 있을 때의 자세, 야망이나 욕망의 원초성, 균형 잡히지 못한 삶의 패턴, 대화 상대의 눈빛을 쳐다보는 시간의 길이와 그 깊이, 무언가를 덮기 위한 어설픈 화장이나 향수 냄새 같은 것들. 


나는 그래서 예전부터 너무 빳빳하게 잘 다려진 옷, 정확하고 은은한 향기가 나는 사람을 동경하면서도 무서워했다. 지나치게 여유로운 미소는 왠지 모르게 부당하고 서늘하다. 그의 어깨 너머에 가려진 존재를 생각나게 했으므로. 자신조차 모르고 있는, 지금의 그를 있게 한 수많은 기제들을, 내가 상대적으로 박탈당한 무엇을 상기시켰기 때문이다. 

작가의 이전글 비밀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