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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루이제 Jul 05. 2020

자유와 안정 사이에서

계급은 안정을 가리킨다

작년에 절교한 친구 D는 주기적으로 내 꿈에 나타난다. 대개는 그 친구가 당시 내게 심한 말을 남기고 떠난 걸 미안해하고 후회하면서 먼저 연락을 해 온다는 것이 주 서사를 이룬다. 이미 인연이 끝난 친구 이야기를 계속 꺼내게 되는 데에는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그 친구가 나의 본질적인 부분들을 가장 많이 건드린 사람이라는 건 그중에서도 주요한 이유일 것이다. 


그 친구는 나의 재능을 아낀다고 자주 말해주었다. 내 글을 좋아했고, 어둠 속에서도 빛나는 내 사유와 내가 지닌 성장 가능성을 믿어주었다. 뒷배경이 탄탄하지 않음에도 학업을 이어가려는 과정에서 미세한 어려움들을 겪어봤기 때문에 나는 반드시 좋은 선생님이 될 거라고 응원하기도 했다. 그러나 나는 결정적으로 석사에서 박사과정으로 진학하는 중간 단계에서 막힌 채 계속해서 망설였다. 하루는 멋진 연구를 해서 근사한 학자가 될 거라는 부풀린 말로 주변인들을 현혹하다가, 또 다음날이 되면 나랑 어울리지 않는 꿈을 꾸는 것 같다며 조용히 단념했다. 원치 않게 허언증 환자가 돼버린 것만 같았다. 


어쨌든 이왕 박사를 한다면 북미, 특히 미국 쪽으로 지원하고 싶었던 나는 박사과정 프로그램들을 틈틈이 검색했고 그 과정에서 기대와 실망만 되풀이하는 나날들이 이어졌다. 미국 대학의 학과 홈페이지 'People' 란에 자랑스럽게 올라 있는 박사과정생의 대부분은 백인이었고, 가뭄에 콩 나듯 아시안 학생을 발견해도 적어도 미국 명문대에서 학부를 졸업한 사람들이 대부분이었다. 이들의 화려한 CV를 보고 있자면 나와 너무도 다른 세계에 사는 사람들 같았다. D에게 이런 이야길 털어놨더니 "걔넨 원래 그래. 엄청 뭐라도 있는 척하고 써놔."라는 말이 되돌아왔다. 그런데 뭐라도 있으니까 저렇게 쓸 수도 있는 것이 아닌가 싶었다. 


작년 가을, 그 친구가 우리 관계는 여기서 끝내자는 문자를 보냈을 때 내게 남긴 수많은 말들 중에는 '박사고 뭐고 일단 네 마음의 병부터 돌보라'는 문장이 있었다. 사실 마음이 힘들어서 그 채팅창을 나중에는 아예 지워버렸기 때문에 정확한 워딩은 기억이 나지 않는다. 어쨌든 위에 쓴 것과 유사한, 가시 돋친 문장이었다. 언제는 국내 박사를 한다더니 또다시 유학이 가고 싶어 진 거냐고 비아냥거렸다. 박사 진학을 둘러싸고 D에게 고민상담을 했다가, 여러 조언들을 다 잘 흡수해서 해외 박사라는 선택지로 귀결되는 듯하더니, 또 결정적인 순간에 다시 자신이 없어져서는 원점으로 돌아가는 일을 몇 번이나 반복하는 나를 보고 지쳤던 탓이다. 


그녀가 '마음의 병'이라고 언급할 만큼 나는 약했고 내 선택에 자신이 없었다. 아니 나에 대한 믿음이 없었다. 그리고 이것이 내 콤플렉스와도 연관이 있다는 걸 당시에도 어렴풋이 알았다. 나의 계급적 약점은 스스로의 재능을 굳건히 믿고 나아가지 못한다는 것이다. 이는 어떤 상황에서도 날 받쳐줄 뒷배의 부재, 혹시 발을 잘못 디뎠을 때에도 날 건사해 줄 그 어떠한 견고한 토대의 결여에서 나온다. 아무리 재능이 있어도 자본이 결합된 전략과 적절하고 철저한 매니지먼트가 없으면 나보다 재능 없는 애들과의 경쟁에서 질 수 있다는 걸 알았기 때문이고, 부모님의 사회경제적 지위가 보장되는 애들에겐 전혀 다른 차원의 문이 열려있어서 이들이 나보다 100배는 쉽게 이런저런 기회를 얻을 수 있다는 걸 깨달았기 때문이며, 등록금과 생활비에 관한 탐색전 없이 연구 질문에만 오롯이 몰두하면 되는 사람들이 갖고 있는 '순수한' 연구 의지와 그 안정적인 삶의 템포를 나는 절대 상상하지 못할 것이라는 두려움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종국에는 안정된 선택을 한다는 것이 모든 내러티브의 방점이었다. 아니, 가장 안정적인 선택지에 체크하며 나를 둘러싼 배경적 요인을 지질하게 사족으로 덧붙인다. 나는 도전하기보다 안주하는 길을 택한다. 현재 주어진 이직 옵션들 중에서도 내게 중요하게 고려되는 가치는 자유보다는 안정이다. 그렇게 자유가 중요하다고 외쳤으면서, 막상 상황이 닥치니 나는 얼마든지 내 자유를 희생할 준비가 되어있었다. 이는 스스로에게도 아주 흥미로운 지점이었다. 


지난 몇 달간 이직을 준비하면서 내가 어떤 사람인지를 열심히 성찰하는 시간을 보냈고, 워낙 상반되는 성향을 동시에 지니고 있는 사람인지라 바람에 낙엽 휘날리듯 흔들렸다. 1) 자유롭지만 평생 있기엔 애매한 직장. 2) 규칙이 많지만 안정된 직장 사이에서 말이다. 그러나 막바지에 이르러서는 결국 본질적인 영역으로 돌아간다. 나는 창조적이고 자유로운 상황에 내던져지기보다 전통이 있는 집단과 정해진 계약을 맺고 오래도록 결탁하고 싶다. 내 능력을 만인을 위해 발휘하고자 고군분투하기보다, 정확한 바운더리 내의 공동체에서 정해진 노력을 하고 정당하게 인정받고 싶다. 이것마저 내 계급성이라고 굳이 강박적으로 이름 붙일 필요는 없겠지만, 갈림길에서 어떤 방향으로 걸어갈지 판단하는 데에 있어서 계급적 영향이 없다고는 볼 수 없을 것이다. 


곧 내가 내려야 할 결정은 내 인생의 향후 몇십 년을 좌우할 중대한 결정이 될 것이다. 이 결정을 둘러싼 요인들을 수많은 관점에서 조명할 수 있다. 나의 직업관, 가치관, 인생의 거시적/미시적 목표, 적성, 취향, 미/추에 대한 기준 등... 아주 다양한 잣대를 들이댈 수 있겠지. 이번 글에서 언급한 계급 요인은 그중에서도 단 한 가지 프레임에 불과하다. 각각의 카테고리별로 모두 이와 같은 글을 한 편씩 쓸 수는 없겠지만, 삶의 기로에서 명징하게 판단하고 싶은 나로서는 내 사고 구조를 낱낱이 해체한 뒤 검토하는 수밖에 없다. 이 글 또한, 내가 지금 하고 있는 고민의 기저를 보다 잘 포착하고 싶어서 쓰게된 글이다. 


하지만 이러다가도 난 최종 순간에는 직관에 의존하는 웃긴 인간이다. MBTI 결과에서도 나왔듯 나는 무려 51대 49의 확률로 현실주의보다는 직관을 따르는 유형이니까. 결국에 '감'을 믿고 나아가겠지. 계급이고 가치관이고 뭐고 그게 최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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