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 괜찮지 않아

남편의 공황장애 극복기(2)

by 안성미

"오빠~. 오빠~"

한동안 잠을 자면 악몽을 꾸고 식은땀이 흐르고 힘들었지만 중학생 오빠(청년)는 아무한테도 표현을 못했다. 자식 잃은 부모는 매일 술로 울부짖으며 아파했지만 중학생 아들(청년) 역시 놀랐고 누구보다 지금 무섭다는 것을 마음에 두지 못했다.


'만약 심부름을 안 갔다면. 어떤 심부름이었는지 지금은 기억 안 나지만 농땡이 안치고 더 빨리 달려왔더라면. 횡단보도 앞에서 오지 말라고 손짓하지 않았다면.... 했더라면,... 하지 않았다면... 내 동생은 살아있겠지?'


모든 일이 자신의 잘못 때문에 벌어진 일이라고 생각하면서 어린 중학생 오빠의 마음엔 칼날 같은 상처가 깊게 자리 잡기 시작했다.


시간은 진한 것을 흐리게 하는 묘약이 있다. 당장 죽을 것 같이 슬픈 일이나 힘든 일을 겪어도 목숨이 붙어있으면 살아지게 되니 말이다. 그래서 어른들이 늘 그랳나 보다. "견디라고. 이 또한 지나가리."


혹독한 서울살이는 어른도 중학생 오빠(청년)의 가족들에게도 매일 헤쳐나가야 하는 치열한 전쟁터였다. 시간이 흘러 시골에서 올라온 7 식구는 6 식구로 변했지만 좁은 방 한 칸에서 먹고 잠자는 것은 변하지 않았다.


그러던 어느 날 밤 조금 이상한 소리에 중학생 아들(청년)은 잠시 잠이 깬다. '뭐지?' 하면서도 왠지 일어나면 안 된다는 생각과 함께 눈을 감고 가만히 누워있었다. 이윽고 부모님의 어떤 행위가 끝난 후 그제야 돌아누워도 된다는 안전한 생각을 하면서 이내 잠이 들었다.


시간이 흘러 어느 날 중학생 아들(청년)은 기분이 묘하게 좋은 꿈을 꾼다. 꿈속에서 어느 이쁜 여인의 몸을 쓰다듬으며 극도의 긴장감을 느끼는 데에 짜릿짜릿하다. 그렇게 무언가에 홀려 달아오르고 있는데.

갑자기 손을 누가 확 끌어 잡는다.


그리곤 여기저기서 싸대기가 날아온다. 정신이 번쩍 들면서 일어나기는 했는데 어지럽다. 매 맞으면서 그제야 뭔 짓을 했는지 생각이 난다. 이쁜 여인의 몸은 중학생 아들(청년)의 엄마였고 싸대기 때리는 사람은 아버지였다. 그리고 중학생 아들(청년)은 세상에 둘도 없는 귀신 들린 아이가 되어 무당굿을 해야 했다.


그 일이 있은 다음 날 마당 한복판에서 중학생 아들(청년)은 귀신 들린 사람으로 앉아있고 무당은 연신 춤을 춘다. 어른들 서너 명은 앞에서 열심히 무언가를 빌고 있다. 그 후 중학생 아들(청년)은 더 말이 없어졌고 그의 형, 누나는 차례차례 집을 나갔다.


시골에서 밭대기 하나로 주렁주렁 자식들 입에 풀칠하는 게 힘들었다. 그래서 몇 안 되는 세간살이 다 싸서 서울살이 해보겠다고 올라왔다.


가난하고 배운 것 없는 부모는 얼마 안 되어 막내 자식 하나 잃었다. 또 하나 자식은 천하의 파렴치한 행동을 한다. 푸닥거리를 해서라도 이 불길한 액귀를 쫒아야 한다. 무지했던 시절에 그게 최선이었다.


그저 자식들이 배불리 먹고사는 게 다라고 생각했다. 하루하루 몸이 부서져라 일하고 돌아온 엄마는 어느 날 술이 가득 취해서 죽어라 울고 소리치다가 oo을 마셨다.


그 쓰러진 엄마를 엎고 뛰는 아버지 옆에 중학생 아들(청년)은 함께 했고 다행히 엄마는 살았다. 식도가 반은 손상을 입었지만.


결혼한 지 아마도 20년이 지났을 쯤인가 어느 날 남편이 순댓국을 먹으러 가자고 했다. 가끔 재래시장에서 소주 한잔으로 이런저런 얘기를 하는데 그날따라 뭔지 모르지만 입을 다물고 한동안 먹기만 했다.


그러더니 나지막하게 이야기를 시작한다. 고백할 것이 있다고 하면서. 그때 들은 얘기다. 눈에는 눈물이 그렁그렁 맺혀서 나를 쳐다보며 하는 말.

"자기야~ 난, 괜찮지 않아. 정말 힘들어."

"......"

그 모습이 또렷이 생각난다. 한동안 나는 아무 말 못 했고 어떤 말을 해야 될지 생각도 안 났다. 그런데 뭐라고 주절주절 얘기를 했던 것 같다. 아무 쓸데없는 말을.



남편의 공황장애 극복기(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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