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눈에 콩깍지가 씌었다.

남편의 공황장애 극복기(3)

by 안성미

국민학교 지금으로 말하면 초등학교를 6번 옮겨 다녔다. 어렸지만 생활기록부 앞면에 초등학교 이름 적는 칸이 모자라서 위에 적는 것을 보았기에 또렷이 기억난다. 왜 그렇게 학교를 옮겨 다녔는지는 기억이 안 난다.


암튼 새 학년 새 학기가 시작될 쯤이면 어김없이 엄마의 손에 이끌려 낯선 학교를 방문해야 했다.


처음 보는 교실, 콩나물시루 안에 있는 새로운 아이들은 나를 뚫어지게 쳐다보고 담임선생님이라고 하는 분은 어디 어디 자리로 들어가라고 얘기했다. 난 당연 다른 아이들도 그런 줄 알았다.


그런 일이 하도 익숙하다 보니 낯선 사람들 앞에 서는 것이 그리 쑥스럽지 않았다. 아마도 그때부터 난 사회생활에 남달리 적응을 잘했던 것 같다.


국민학교를 졸업하고 여중, 여고를 다녔는데 전학은 하지 않았다. 변함없이 이사는 했지만 버스를 타고 다닐 수 있는 나이로 성장했기에 6년을 잘 버티었다.


난 형제가 없다. 가족은 아빠, 엄마 이렇게 셋이다. 일가친척도 없다. 내 나이 때쯤이면 형제가 적어도 셋 이상은 되던데 한 번도 그것에 대해 궁금해하지 않았다.


대학은 여대가 아닌 남녀공학을 갔는데 신기했다. 남자라고는 아빠와 그리 멋지지 않은 학교 선생님 보는 것이 전부였기에 비슷한 또래의 남학생을 보는 것이 재밌었고 설레었다.


어느 날, 갑작스러운 휴강이 있었다. 집에는 가기 싫었고 바로 앞에 앉아있는 같은 과 남학생 형(그 당시 나보다 위의 남학생을 부르는 호칭)에게 말했다.


“형! 막걸리 한 잔 어때?”

“...... 그럴까?”


쑥스러움도 없이 처음으로 말을 걸었고 그날 둘이는 신나게 마셨다.


그 후 사람들은 우리를 CC(campus couple)라고 불렀다. 공부하기 위해 학교를 간 것이 아니라 연애하기 위해 학교를 다녔다.


그 형은 당시 머리는 짧았고 지금 얘기하는 밀리터리 모양의 바지를 즐겨 입었다. 몸은 말랐고 얼굴은 곱상했다.


홍콩의 인기스타 유덕화를 많이 닮았기에 내가 좋아할 만했다.

성격도 부드럽고 자상하고 유머 감각도 있어서 연신 나를 웃게 했다. 내 눈에 콩깍지가 단단히 씌었다.


어두움을 안고 살아가는 사람인 줄은 꿈에도 몰랐다. 마냥 그를 좋아했다.


처음 내가 먼저 말을 건 남자.

나의 첫사랑

30년을 넘게 함께하고 있는 사람

남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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