흰 눈이 펑펑 쏟아지는 모습을 기다린다.

남편의 공황장애 극복기(4)

by 안성미

“자기야, 일어나. 일어나. 빨리~”

“.......”

곤하게 잠들었던 나를 흔들어 깨우며 겨울 외투를 입히고는 밖으로 데리고 나간다.

“자기야, 저기 봐봐.”

부스스 눈을 뜨고 위를 쳐다본 나는 깜짝 놀랐다. 가로등 불빛에 하얀 눈발이 펑펑 쏟아지는데 그 모습이 너무 아름다웠다. 정말로 위에서 하얀 종이 가루를 퍼붓는 듯 반짝반짝 빛났다.

“와~~ 진짜 멋있다.”

“헤헤. 멋있지? 내가 며칠 동안 만든 거야.”

아마도 25년은 된 것 같다. 새벽에 술이 잔뜩 취한 남편의 손에 이끌려서 반지하 계단에서 쳐다본 광경이다. 잊을 수가 없다.



남편은 소년같이 감성적인 사람이고 자상한 사람이다. 생선요리를 하면 먼저 뼈를 일일이 발라 가족들 밥그릇에 일일이 올려주고는 자기 밥숟가락을 뜬다.


하지만 어떨 때는 갑자기 화를 내고 짜증을 낼 때도 많아서 화기애애한 분위기가 갑자기 얼어붙는 경우도 많았다. 평소에는 그리 온순하고 순한 양인 사람이 돌변하여 주위를 얼어붙게 만든다. 아이들도 그럴 때는 아빠의 기에 눌려 며칠 동안 살얼음을 걷듯이 조용히 지내야만 했다.


징글징글하게 많이도 싸웠다. 오죽하면 친구들이 사랑도 싸움도 참 정열적으로 한다고 했을까? 말이 좋아 정열적이지 당사자는 중상을 입은 전투병이 된다.



가끔 남편은 가슴이 많이 뛴다고 얘기했다. 가만히 있으면 심장이 터질 듯이 뛰는데 시간이 지나면 괜찮아진다고. 그러던 어느 날 TV에서 연예인들이 ‘공황장애’로 인해 활동을 중단한다는 소식을 듣는데 남편이 느닷없이

“나도 혹시 저런 거 아닐까? 조금 비슷한 것 같아.”

혼잣말로 지나가듯이 말하는 데 그리 심각하게 듣지 않았다. 나도 하루하루 삶이 그리 행복하지 않았고 힘들었기 때문이다.


‘인생이 다 그렇지. 뭐. 자기만 힘든가? 나도 죽을 맛이지만 그래도 버티며 살고 있다고.’



남편은 언제부턴가 술을 먹는 횟수와 양이 늘어나기 시작했다. 말수도 적어졌다. 밤새 술을 먹고 자다가 새벽이면 일어나서 어김없이 출근했다. 술을 먹지 말라는 얘기를 아무리 해도 듣지 않았다. 그것으로 인해 언성을 높여가며 많이 싸워도 보았지만 허사였다.


잠도 제대로 못 자고 불면증에 시달렸다. 마른 사람이 점점 더 말라갔다. 상황이 심각해지는 것을 느끼고 있을 무렵 남편이 급기야 이런 말을 한다.


“나 죽고 싶어. 사는 게 재미가 없어. 근데 죽기 전에 너 살 수 있는 기반은 마련하고 죽어야 하지 않겠니?”




그리고는 OO 대학병원 정신과를 찾았다. 상담 시간은 오래 걸렸다. 1차 상담을 젊은 여의사한테 받은 후 2차 상담은 나이가 지긋이 든 노신사 같은 의사에게 받았다. 진단명은 ‘공황장애’와 ‘우울증’이었다. 예상했지만 막상 받으니 마음이 이상했다.

인생이란 흰 눈이 펑펑 쏟아지는 아름다운 모습만 보고는 살 수 없다. 눈이 내릴 때는 환상적이고 이쁘지만 그 후로 그 눈은 애물 덩어리가 된다. 땅에 닿으면 흰색의 눈은 흙과 여러 가지 오물과 섞여서 지저분한 색깔로 변한다. 또한 누군가 미끄러져서 넘어지기 전에 얼른 눈을 치워야 한다. 그 눈이 다 녹아서 흔적도 없이 사라지면 어느새 잊고 또 눈이 오기를 기다린다.



의사가 환자(남편)는 나가라고 하고는 보호자(나)를 불렀다. 그리고는 조곤조곤 얘기했다. 남편분이 지금까지 잘 버텨줬다고. 하지만 지금 위험 단계이니 가족들이 잘 살피고 힘들어도 더욱 사랑해 주라고. 안 그러면 그는 죽는다고.

병원을 나오면서 운전하고 있는 남편의 옆모습을 언뜻 보았다. 피부는 축 처져있고 흰머리가 눈에 띄게 많았다.

약 7, 8년쯤 된 것 같다.

본격적인 공황장애와 우울증과의 싸움이 시작된 것이.



남편의 공황장애 극복기(3)

https://brunch.co.kr/@luisse2000/15

이전 06화내 눈에 콩깍지가 씌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