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빠! 보고 싶다(1)
“OO야, OOO야, 나가 버려. 재수 없는 년. 왜 내 옆에 붙어있는 거야?”
서랍장에 옷들이 밖으로 다 던져진다. 성냥통이 날아가서 바닥에 다 흩어진다. 사람들은 지나가며 힐끗힐끗 쳐다보고 누군가는 던져진 옷과 흩어져있는 성냥개비를 줍기 바쁘다. 엄마다. 대낮에 술도 안 먹었는데, 안에서 밖으로 육두문자를 날리면서 씩씩거리고 있는 사람은 다름 아닌 나의 아빠.
엄마는 던져진 옷가지들이 흙에 묻을까 털기 바빴고 혹여 연한 색깔의 옷이 더럽게 되기라도 하면 그때 투덜댔다. 방안에는 아빠가 연신 피워대는 담배 연기 때문에 들어갈 수가 없다.
한바탕 소란이 끝났다는 것을 감지한 엄마는 수거한 옷을 가지고 빨래를 시작한다.
“아이고~ 내가 저 인간 때문에 머리가 터져서 죽을 뻔한 게 몇 번인데....”
난 그 옆에서 쪼그리고 앉아 엄마가 시작하는 푸념과 한풀이를 들어야 했다.
내 기억 속의 아빠는 무엇이든 뜯어고치는 일을 했다. 오디오를 비롯한 tv, 어느 날은 트럭을 고치고 있었다. 학창 시절에 집에 오면 매일 트럭 밑에 들어가서 수리하고 그 옆에서 엄마는 온종일 서서 대기하며 심부름했다.
한여름 뙤약볕에도 추운 겨울에도 아빠가 무언가 고치는 날에는 엄마는 늘 그렇게 서 있었다. 온갖 구박과 짜증 섞인 육두문자 소리를 들으면서.
아빠는 술도 놀음도 하지 않았고 누구를 때리지도 않았다. 단지 서랍이란 서랍은 다 뒤져서 옷가지들을 던지고 성냥통을 던지며 입으로는 쌍욕을 해댔다. 상대는 오직 한 사람. 엄마였다.
엄마는 대항하지 않았고 일방적으로 당하기만 했다. 어렸을 때는 엄마가 아빠한테 잘못해서 혼나는 줄 알았는데 머리가 크면서 그렇지 않다는 것을 알았다. 어린 눈에 엄마가 구박받는 것을 보면
‘왜 엄마는 아무 말도 못 하고 당하기만 하는 거지?’라는 강한 의문이 들면서 엄마의 보호자로 아빠랑 싸우고 싶었다. 하지만 너무 무서웠다.
아빠는 나에게 소리 한번 지른 적 없고 욕을 한 적도 없으며 무척 자상한 아빠였다. 그런데 엄마한테는 순간순간 참으로 못되게 인정머리 없게 대했다.
중학교 3년 내내 하루도 빠짐없이 신정동에서 대림동까지 아빠 트럭을 타고 등교했다. 집과 학교가 멀어서 늘 미안해했고 안쓰러워하며 나를 끔찍이 사랑해 주었다. 그런 아빠를 상대로 싸움을 하는 것이 두려웠다.
시간이 흘러 결혼하고 난 두 아이의 엄마가 되었다. 연년생의 아이를 키우게 된 나에게 부모님은 애들도 돌볼 겸 가까이 이사 왔고 둘째 아들을 돌 때까지 키워주셨다. 부모님의 도움으로 아이들도 잘 키우고 화기애애하게 보내고 있던 어느 날 엄마의 다급한 전화를 받았다.
“또 시작이다. 네 아빠가 또~.”
그리고는 통화가 끊겼다. 난 부리나케 큰아이를 유모차에 태우고 냅따 달렸다. 엄마 집까지 뛰면 5분 거리였다. 달리면서 그동안 잊고 있었던 아빠의 그 행동들이 마치 비디오를 보는 듯 떠올랐다.
‘안돼, 안돼. 아이들한테는 절대 그 모습을 보여주지 않을 거야.’
집에 도착하니 익숙한 광경이 벌어지고 있었다. 동네 사람들은 나와서 쳐다보고 있고 아빠는 육두문자를 하면서 옷을 집어던지고 있었다. 밖에 서서 둘째 아이를 업고 발을 동동 구르는 엄마 모습을 보는 순간 기가 막히고 눈에서는 불이 났으며 뚜껑이 열렸다.
주위를 둘러보니 분해된 전자제품과 여러 가지 공구들이 널브러져 있었다. 무언가를 또 고치고 있었던 게다.
엄마에게 첫째도 맡기고
“엄마, 나가 있어.”
하고는 아이들과 엄마를 밖으로 내 보냈다.
내 눈에 망치가 보였다. 망치를 손에 쥐고 현관문을 닫고 소리쳤다.
“아빠! 이젠 제발 그만해. 계속 이렇게 할 거면 나 이 망치로 여기 집안 유리창 다 때려 부술 거야. 이제 나도 할 수 있어.”
소리를 고래고래 지르며 바락바락 험한 말들을 쏟아부었다. 아빠는 순간 멈칫하더니 입이 떡 벌어지며 놀란 표정으로 쳐다보더니 무어라 했던 것 같다.
난 눈에 보이는 게 없었다. 망치를 들어 올리는 순간 아빠는 소리쳤다.
“미친 O”
그리고는 둘 다 멈췄다.
난 그날 태어나서 처음으로 아빠한테 욕을 들었고 그다음부터 엄마의 보호자가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