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편의 공황장애 극복기(5)
A 부부와 함께 술을 즐겁게 먹었다. 끝내자고 했다. 이미 먹을 만큼 먹었고 친구는 집에 가야 하니. 3차였다. 안 되다고 고집을 부린다. 옥신각신하는 사이에 A 부부는 사라지고 집에 와서도 실랑이는 이어졌다.
감정이 극에 달아올라서 남편의 뺨을 때렸다. 술을 먹어서일까? 아니면 그동안의 울분, 서러움의 폭발이라고 할까? 처음이다. 남편이 가만히 있네. 분이 풀리지 않아서 또 때렸다. 남편은 그만하라고 하면서 계속 맞았다. 한 5~6대 때린 듯하다. 남편이 꼭지가 돌았는지 나를 한 대 쳤다. 그리곤 기절했다.
아침에 눈을 뜨니 머리가 어지럽고 무심코 거울을 보는데 한쪽 눈이 시퍼렇게 멍이 들었다. 남편은 아이들을 챙겨 학교 보내고 본인도 출근한 것 같았다.
그날 저녁 남편은 아주 늦게 들어왔다. 심각하게 나에게 한 말. 수십 년이 흘렀는데도 또렷하게 기억한다.
“이혼해. 난 너를 감당할 수 없어.”
무슨 귀신 씻나락 까먹는 소리인지. 누가 누구를 감당할 수 없다는 건지. 그동안 부부싸움이라는 것을 얼마나 많이 자주 했는데.
그런데 남편은 진정이었나 보다. 시간이 지나면서 사태의 심각성을 깨달은 나는 바로 꼬리를 내렸다. 무릎 꿇고 마치 파리가 된 듯 두 손 모아 싹싹 빌었다. 몸싸움으로 싸움한 것은 그것이 처음이자 마지막이었다. 그 후론 입으로만 싸웠다. 늘 내가 불리했지만.
엄청 신경질적이고 화를 잘 내는 남자, 혼술을 367일 하는 사람, 영화관에서 영화를 볼 수 없는 사람, 화 한번 내면 주위를 온통 싸늘하게 얼음 빙판으로 만드는 사람,
한번 우울해지기 시작하면 물에 빠진 담요처럼 축 처져서 건져내기가 힘든 사람, 회사를 오래 다니지 못하고 수시로 바꾸어도 월급은 제때에 갖고 온 사람(몇 번은 밀림),
명절날 시댁에 가면 늘 시어머니랑 다투고 오는 사람, 험한 일만 찾아다니다가 급기야 손가락 하나가 절단된 사람, 주물 공장에서 일하다 얼굴 전면 화상을 입고도 가족에게 알리지 않은 사람,
어느 때부터인가 자주 우는 사람. 이 사람이 급기야 병에 걸려서 스스로 목숨을 버릴 수도 있다는 의사의 말에 난 무엇이든 해야 했다.
왜냐하면 이 능력 없고 아픈 남자를 내가 너무나 사랑하기 때문이다.
말이 없어지고 의욕 상실에 온종일 TV만 쳐다보고 있는 사람. 술에 절어 마치 집에서 노숙인처럼 생활하는 이 사람을 어디론가 데리고 나가야 했다. 어느 날은 수십 년 만에 찾은 대공원으로 다음 날에는 남산으로 그다음 날에는 전통 시장으로. 직장 생활을 하고 있었으므로 평일에는 힘들었고 주말, 휴일을 이용해서 종일 함께 했다.
매주 OOO 검색이 일상화되었다. 자유로운 시간과 공간에 스트레스받지 않기 위해서 지하철이나 버스를 이용했다. 죽어가는 화초를 정성을 다해서 살리는 마음으로 최선을 다했다.
폰에 저장된 이름도 남편을 ‘정성’으로 바꾸었다. 문자나 전화가 올 때 ‘정성’이란 단어를 보면 흐트러졌던 내 맘을 순간 잡을 수 있었으니까.
그런 시간이 2년 정도 지나니 몰라보게 남편은 생기를 찾았다. 병원에서 처방받은 약의 힘도 컸다. 본인이 증세가 호전되어 1년 정도 약을 중지하더니 지금은 다시 약을 먹는다.
아직 완쾌라는 말은 못 하겠다. 옆에서 지켜본 사람으로서 당사자의 엄청난 노력과 의지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수시로 찾아오는 번민, 우울감, 스트레스는 감당하기 힘든가 보다.
보통 사람에게도 공황장애, 우울증 증세는 조금씩 있다.
‘난 이겨낼 수 있는데 왜 넌 그럴 수 없니?’라고 할 수 있다. 처음엔 나도 그 대열에 속했지만 이젠 조금 안다.
바로 다르기 때문이라는 것을. 살아왔던 세월도 환경도 유전자 등 많은 것들이.
이것을 알고 인정하는 데 수십 년이 걸렸다.
남편과 나의 공황 장애, 우울증과의 싸움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아마도 죽어야 끝나지 않을까 싶다. 여기까지 왔고, 살고 있음에 감사하다. 극복은 아니고 현재 진행 중인, 그저 사는 날까지 잘 달래면서 살아야 할 듯하다.
남편의 공황장애 극복기(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