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생님은 옷을 젊게 입고 다니시는 것 같아요."
급식실로 향하던 중 뒤따라오던 우리 반 여학생 시아가 들릴 듯 말 듯 속삭이듯 말한다.
나는 괜히 기분이 좋아져 시아에게 장난을 건다.
"뭐야, 나이에 어울리지 않는 옷을 입고 있다는 거야?"
내가 장난치듯 말하자,
"선생님이 예쁘시다는 거예요, 후훗"
시아는 한 손으로 입을 가리며 웃으며 말한다.
항상 내 옆에 와서 차근차근 좋은 말만 하는 아이 시아. 5학년 치고는 체격이 키 160인 나와 비슷해 나란히 걷고 있으면 뒤에서 엄마와 딸로 오해할 듯 친근해 보인다. 시아가 부끄러운 듯 말을 마치고 나서 내 앞을 지나쳐 우유갑이 담긴 노란 바구니를 급식실 입구에 휙 던져놓는다.
"스읍! 그렇게 휙 던지면 조만간 그 바구니 부서질 듯?"
눈을 가늘게 뜨고 내가 다소 엄한 목소리로 말하니 시아는 머리를 긁적이며 제가 던져놓은 노란 바구니를 조심스럽게 한쪽에 정렬해 놓는다. 그 옆에 노란 바구니가 네 개 정도 더 있는 걸 보니 6학년을 제외한 나머지 학년이 벌써 급식 중인 모양이다.
"선생님, 휴지 좀..."
옆에 앉아 밥을 먹던 승현이가 조심스럽게 나를 보며 죄송하다는 표정으로 내 앞에 놓인 티슈통을 건네주라고 한다. 보아하니 승현이 옆에 앉은 소정이 반찬을 흘려 휴지를 달라고 부탁한 모양이다. 나는 티슈통을 들어 잠시 장난을 친다. 건네는 듯하다 다시 내 쪽으로 가져오기를 반복하자 아이들이 키득키득 웃는다. 승현이에게 휴지를 부탁한 소정이가 손을 뻗는다. 나는 휙 던지는 시늉을 하다 이 정도는 됐다 싶어 티슈통을 천천히 전달한다.
"선생님, 지훈이가 밥을 또 받으러 가요."
영지가 신기하다는 듯 나를 보며 말한다. 그 말에 된장국을 한 입 떠먹고 2차 급식을 시작한 지훈이를 향해 엄지 척을 하자 지훈이 입꼬리가 귀에 걸린다.
"확실히 4학년 때보다 급식을 잘 먹어요. 작년엔 개미 눈곱만큼 밥을 받아오고 반찬도 진짜 요만큼 받아서 정말 1분도 안 돼서 급식판을 내놓고 나갔어요."
현웅이가 밥 먹다 말고 생각났다는 듯 엄지 손가락을 검지 손톱에 대고선 말하다 컥컥! 하며 목구멍에 밥알이 걸렸다고 얼굴에 사색이 되어 물을 마시러 뛰어나간다.
"현웅이는 항상 저래요. 밥 먹을 때도 요란하고, 시끄럽고. 그리고 저렇게 반찬을 받아와도 자기가 먹기 싫은 건 못 먹는다고 징징대요."
옆에서 보고 있던 미정이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며 젓가락으로 미역줄기를 깨작깨작 건드리고 말한다.
"그건 너도 비슷해. 지금 봐. 젓가락으로 반찬을 깨작거리고 있잖아. 친구 흉보기 전에 너 자신을 알라."
나는 곧바로 미정이에게 한마디 한다. 미정이는 어이쿠, 맞네요. 하며 괜히 머쓱한 듯 '나도 물 마셔야지.' 중얼거리고 나간다.
옆에서 조용히 급식을 먹던 반장 세진이가 깨끗해진 자기 식판을 나에게 보여준다.
"세진이는 늘 급식을 다 먹는구나. 잘 먹으니까 키가 그렇게 쑥쑥 크나 보네."
나보다 더 급식을 잘 먹는 세진이를 보며 감탄 섞인 말을 하니 자기는 아직 배가 고프다며 다시 2차 급식을 하러 식판을 들고 일어선다. 식판을 보니 오늘은 반찬이 꽤 조화롭다. 치즈가 들어간 카레밥, 열무김치, 김치전, 콩나물, 멜론이다.
가끔은 소고깃국에 고추장돼지고기볶음, 소고기장조림, 신깍두기, 숙주나물, 마카롱처럼 고기종류가 한 번에 세 가지가 들어 있어 당황스러웠던 기억이 난다. 그럴 땐 나보다 아이들이 반찬에 대해 더 까칠하게 분석하는 경우도 많다.
"국이 싱겁네요. 국간장을 조금 넣었나 봐요."
"요즘 김치를 담그지 않나 봐요. 계속 신김치만 나와요."
"왜 이렇게 가지나물이 계속 나오지?"
나는 속으로 '너희들은 그래도 무료급식 아니냐, 나는 돈을 내고 먹는다. 가끔 나도 도시락을 싸 오고 싶어.' 하고 말을 삼킨다. 특히 반찬 배분이 잘못되는 경우 마지막 학년은 정작 받아야 할 반찬을 못 받는 불상사도 생긴다.
"반장, 나 이제 가도 돼?"
현웅이가 그만 먹고 싶은지 엉덩이를 들썩이며 반장에게 자기 식판을 보여주자,
"어? 밥을 다 긁어먹어야지. 그리고 김치는 왜 안 먹었어?"
반장 세진이가 꼼꼼하게 확인하며 단칼에 말한다.
"알았어. 근데... 나 이 김치전은 매워서 못 먹어. 그러니까 밥만 깨끗하게 다 먹고 갈게."
현웅이는 그렇게 말하면서 나를 슬쩍 본다. 세진이는 어이가 없다는 표정이다. 나는 속으로 현웅이에게 한마디 하고 싶으나 저번에도 급식태도에 대해 지적했다가 현웅이 부모 귀에 들어가 ‘식성이 까다롭다’, ‘김치 트라우마가 있다’, ‘못 먹는 걸 먹으면 토한다’는 등의 말을 들은 게 생각이 난다. 나는 그저 김치전을 입에 넣고 와그작와그작 씹어먹기만 한다.
"선생님, 현웅이는 4학년 때도 저랬어요. 토마토에도 트라우마가 있다면서 한 번도 먹은 적이 없어요."
세진이가 어이없어하며 나에게 미주알고주알 이른다. 옆에서 듣고 있던 미정이도 세진이를 거든다.
"맞아요. 엄마가 만들어 주는 토마토는 맛있는데 학교에서 나오는 토마토는 맛없다면서요. 참 그 애는 과일에 씨가 있는 건 다 안 먹어요. 입에서 씨를 골라내는 게 귀찮다면서..."
입안에 있던 음식물이 조금 흘러나오자 미정이는 앗차! 하며 고개를 숙이고 말을 멈춘다.
"미정아, 밥 먹을 땐 말을 아끼는 게 어때? 입속 음식물이 보이니까 밥맛이 떨어지는 것 같아."
그 모습을 본 승현이가 조용히 말한다. 승현이는 항상 이치에 맞는 말만 하는 아이다. 부모 모두 교사인지라 매사 예절 바르고 성실하며 공부도 잘한다. 무슨 일이든지 꼼꼼하게 끝까지 해내는 끈기까지 갖추고 있어 우리 반 아이들에겐 찐 모범생이다. 그래서 승현이가 무슨 말을 하던지 그 말엔 토를 달지 못한다.
점심을 먹고 나서 잠시 커피를 마시러 탕비실에 들른 나는 아침에 원두커피를 마셨으니 이번엔 믹스커피를 탄다. 원래 물을 끓여야 맛도 훨씬 깊어지는데 귀찮아서 정수기 온수를 받은 뒤 티스푼으로 휘휘 젓는다. 한 모금 들이키니 밍밍하다. 교무실에서 청량한 웃음소리가 들려온다. 그냥 교실로 올라갈까 하다 교무실 문을 열고 들어간다. 탁자 위에 고구마줄기가 한가득 올려져 있다.
"1교시 꼬마농부시간에 5학년 아이들이 고구마줄기를 이렇게 한아름 뜯어서 가져왔네요. 필요하면 가져가요."
교감선생님이 환하게 웃으며 말한다. 실과시간에 교담선생님과 농부선생님이 우리 반 아이들을 데리고 밭을 정리하며 고구마줄기를 뜯은 모양이다. 고구마줄기를 다듬을 줄 아냐는 교감 선생님 말에 나는 잠시 어릴 적 숙모네가 운영한 식당이 떠오른다. 주메뉴가 장어탕과 아귀찜이었는데 밑반찬으로 고구마줄기무침을 많이 만들어야 해서 어른들 틈에 끼어 나도 고사리 같은 손으로 고구마줄기 뜯기를 한 기억이 난다. 지금은 내가 반찬을 직접 해서 먹는 것도 아니지만, 사실 만들어 먹는 것도 귀찮아 가져갈 생각도 없어서 그냥 눈웃음만 짓고 교무실을 나온다.
복도에서 보건 선생님과 마주치자, 선생님은 나에게 할 말이 있는 듯 시선을 건넨다.
"선생님, 점심시간에 5학년 남자애들 네 명이서 체육관에 와서 놀았는데요. 오늘 저학년 체육놀이시간이 있는 날이라 나가서 놀아라고 했더니 말을 듣지 않더라고요."
보건 선생님은 잠시 숨을 고르더니 말을 이어간다.
"게다가 잡기놀이까지 하다 현웅이랑 지훈이가 다투기까지 했어요. 제가 가서 두 아이에게 ‘여기는 수업 중이니 밖으로 나가서 대화를 하라’고 했더니, 지훈이가 정색하며 이렇게 말하더라고요. ‘선생님, 저희가 지금 해결해야 할 일이 있어서 그러니 잠시 비켜주세요.’"
그 말에 나는 깜짝 놀란다.
아무래도 그 말에 보건 선생님은 꽤 당황했으리라. 여전히 얼굴빛이 울그락불그락하다. 방금 전까지의 상황이 머릿속을 맴도는 듯하다.
"그래서 제가 그랬죠. ‘너희들 상황은 알겠지만 지금은 저학년 수업 중이라 방해가 된다. 그러니 밖으로 나가서 해라.’ 라고요. 아마 지금도 계속 체육관 밖에서 서로 싸우고 있을 거예요."
그제야 선생님 목소리에 힘이 조금 빠지고 세상 후련한 듯 안색이 밝아진다.
"아... 그래요. 알겠습니다. 알려주셔서 감사합니다."
정중히 인사를 드린 나는 교실로 올라가 화장실에서 나오고 있는 승현이와 소정이에게 말한다.
"얘들아, 지금 바로 체육관에 가서 우리 반 남학생들 네 명 다 오라고 할래?"
"네, 선생님."
나는 책상을 정리하며 상담공책을 찾아 기록할 펜도 함께 꺼낸다.
"선생님, 남학생들 지금 다 오고 있는데요."
복도로 나갔던 승현이와 소정이가 다시 교실문을 열고 들어오며 말한다.
"응, 그래."
여학생들은 분위기를 눈치챈 듯 조용히 자기 자리로 돌아가 다음 시간 준비를 한다.
"자, 너희들도 알다시피 보건 선생님께서 체육관에서 있었던 일을 말해 주셨어. 이제 너희가 말해 줄 차례야. 누구부터 이야기할래?"
나는 최대한 평정을 유지한 채 담담한 어조로 말한다. 현웅이가 손을 든다. 얼굴이 상기되어 있고 이마엔 땀이 송골송골 맺혀 있다.
"점심을 먹고 제가 체육관에 줄넘기하러 갔단 말이죠. 저학년들이 체육을 하고 있고 선생님께서 방해되니 나가서 하라고 했어요. 저희는 그럼 구경만 하겠다고 양해를 얻고 의자에 앉아 있었죠. 그런데 어느 순간 다시 몸이 근질근질해서 아이들끼리 술래잡기를 하자고 했고요. 그렇게 놀다가 지훈이가 술래가 돼서 저를 잡고 10초를 세는데 너무 빨리 세는 바람에 제가 다시 술래가 됐거든요. 그게 너무 화가 나서 저도 지훈이에게 복수하고 싶었어요. 그래서 지훈이를 잡으로 갔는데 바로 앞에 민기가 있어서 눈짓으로 지후를 잡자고 했죠. 민기가 다시 술래가 돼서 지후를 잡으려고 했는데 세진이가 그 앞에 있어서 세진이를 잡게 됐어요."
현웅이의 말을 이어서 세진이가 말한다.
"자기들끼리 눈짓으로 하는 게 수상하고 제가 잡힌 게 화가 나서 물어봤어요. 왜 우리를 속이냐고. 그랬더니 원래는 저를 잡으려고 한 게 아니라 지후를 함께 잡으려고 눈짓을 했는데 지후 앞에 제가 있어서 저를 잡은 거라고 했어요."
지훈이와 민기도 현웅이의 말과 같다며 고개를 끄덕인다.
"그럼 하나만 묻자. 처음 체육관에 갔을 때 저학년 놀이체육선생님께서 구경만 하라고 하셨다고 했지?"
나는 노트에 필기 중이다. 아이들이 말한 부분을 볼펜으로 짚어가며 질문한다.
"네."
네 명이 동시에 대답한다.
"그 시간이 저학년 수업시간이잖아. 너희들도 구경만 할 거라고 약속을 했으면 끝까지 구경만 했어야지. 갑자기 술래잡기를 하니수업에 방해가 돼서 보건선생님까지 놀라서 체육관에 가셨잖아. 그 점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지?"
일단 아이들이 체육선생님과 함께 한 약속을 집중공략한다.
"그 점은 저희가 잘못했습니다."
역시 네 명이 동시에 잘못을 인정한다.
"그리고 제가 선생님께 이야기를 하다 보니 느낀 게 있는데요. 술래잡기를 한 것은 잘못한 게 맞고요. 술래잡기도 놀이인데 제가 지훈이에게 복수하겠다는 생각은 좀 심했던 것 같습니다. 그래서 그 점은 지훈이에게 미안합니다."
갑자기 현웅이가 지훈이에게 사과를 한다. 예상치 못한 일이다.
"저도... 말씀드릴 게 있습니다. 저도 현웅이를 잡을 때 10초를 너무 빨리 세 버린 게 잘못한 것 같습니다. 원래는 세는 템포가 있거든요. 장난이었긴 한데 현웅이 말을 들어보니 그 입장에선 화가 날 만도 합니다. 저도 현웅이에게 사과하고 싶습니다."
지훈이도 역시 현웅이에게 사과를 한다. 이게 그 선한 영향이라는 것인가? 나는 속으로 미소 짓는다.
"선생님, 저도 생각해 보니 놀면서 서로 속일 수도 있는데 제가 너무 예민하게 반응한 것 같습니다. 그리고 저를 잡으려고 한 게 아닌 걸 알게 돼서 괜히 오해했어요."
세진이까지 자신의 마음을 솔직히 털어놓자, 술래잡기 소동으로 시작된 다툼은 어느새 자연스러운 사과로 이어진다. 하지만 나는 좀 더 확실한 쐐기가 필요해서 덧붙인다.
"그래. 혹시 더 하고 싶은 말 있니? 괜히 집에 가서 생각하다가 오해가 남은 부분 때문에 괜히 속상하지 않도록 말이야."
"아뇨. 없습니다."
그렇게 술래잡기 소동은 마무리된다.
5,6교시 미술시간에 입체 표현 활동을 하는 데 손이 빨라 작품을 제일 먼저 완성한 지훈이 돌아다니며 자기 도움이 필요한 지 친구들에게 묻는다.
"고마워, 지훈아. 나 이거 가위로 오리는 것 좀 도와주라."
현웅이는 손이 느려 미술시간마다 작품을 완성하는 데 어려움을 겪는다. 하지만 오늘은 지훈이 도움으로 꽤 그럴싸한 작품이 완성된다.
"지훈아, 나 좀 도와줘."
세진이가 또 지훈이를 부른다. 여기저기 바쁘게 돌아다니며 친구들에게 도움을 주는 지훈이 얼굴에서 미소가 사라지지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