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향인의 새 학년 준비법

대인관계

새 학년 준비 기간 3일 중 마지막 날을 보냈다. 첫날은 개인 사정으로 참석하지 못했고, 둘째 날은 오후에야 얼굴을 비췄다. 그리고 오늘, 비로소 온전히 그 자리에 앉아 있었다. 몸은 회의실 의자에 있었지만 마음은 아직 문턱 어딘가에 걸쳐 있는 기분이었다.


새 학교는 늘 그렇듯 낯설다. 낯설다는 말속에는 긴장과 두려움, 조심스러움과 작은 용기가 함께 들어 있다. 스무 살 무렵 처음 직장에 발을 디딜 때의 낯섦은 기대에 가까웠다. 무엇이든 가능해 보였고, 실수조차 배움이라 믿을 수 있었다.

하지만 지금의 낯섦은 조금 다르다. 이미 쌓아온 시간 위에 또 하나의 ‘처음’을 얹어야 한다는 부담이 있다. 경력이 길어질수록 시작은 가벼워지지 않는다. 오히려 더 무거워진다. 괜히 얼굴이 달아오르고, 말 한마디를 건네기 전에도 잠깐씩 숨을 고르게 된다.


가장 어려운 건 어울림이다. 서로 오래 알고 지낸 사람들 틈에 앉아 있으면 나는 잠시 꿔다 놓은 보릿자루가 된다. 대화는 유쾌하게 오가고 웃음소리는 가볍게 흘러가지만, 맥락을 모르는 나는 고개만 끄덕일 뿐이다. 억지로 끼어들고 싶지는 않다. 그렇다고 그 자리를 피하고 싶은 것도 아니다. 이 시간 역시 지나가야 할 과정임을 알기 때문이다.


점심시간, 학교 근처 분식집에서 오므라이스를 먹었다. 나는 구석 자리에 앉았다. 같은 테이블에는 30대 초반 선생님들이, 건너편에는 40~50대 선생님들이 앉아 있었다. 30대 선생님들의 대화는 빠르게 흘렀고, 나는 그 속도를 따라가지 못했다. 달걀지단을 숟가락으로 잘게 나누며 점점 줄어드는 밥의 양을 바라보았다. 알 수 없는 이야기 끝에 웃음이 터질 때마다, 나도 모르게 볼 근육이 따라 움직였다. 그 자리에 있으되 완전히 속하지는 못한 사람의 미소였다.


돌아보면 학교를 옮길 때마다 늘 비슷한 시간을 통과해 왔다. 특히 50대가 되면서부터 새로운 환경에 적응하는 속도는 눈에 띄게 느려졌다. 아마도 내향적인 성향 때문일 것이다. 사람 많은 자리에서 나는 쉽게 에너지를 잃는다. 그러나 이제는 안다. 어울림은 애써 만들어내는 것이 아니라, 시간을 함께 견딘 뒤에야 생겨난다는 것을.


나이를 먹는다는 건 두려움이 사라지는 일이 아니다. 두려움을 안고도 자리를 지키는 일에 조금 더 능숙해지는 것이다. 나를 알고 있으면, 상황에 휩쓸려도 완전히 무너지지는 않는다. 낯선 자리에서도 적어도 나 자신만큼은 낯설지 않기 때문이다. 계절을 건너며 수십 년을 버텨온 나무처럼, 중년의 시간은 조용히 단단해진다. 바람이 불어도 뿌리는 제자리를 꿋꿋하게 지킨다. 오늘의 뻘쭘한 점심시간도 언젠가는 웃으며 떠올릴 장면이 될 것이다.


내향인의 새 학년 준비법을 쓰면서 괜히 쑥스럽다. 그래도 새로운 동료를 만나는 일이 내게는 쉽지 않다는 걸 솔직히 적어 내려가니, 마음이 조금은 제자리를 찾는 듯하다. 그렇다고 이런 긴장감을 밀어내고 싶지는 않다. 낯선 자리에서 괜히 숨을 고르고, 말 한마디를 고심하는 순간들 덕분에 내가 아직 무뎌지지 않았다는 걸 알게 되기 때문이다. 긴장하고 있다는 건, 여전히 사람과 관계에 의미를 두고 있다는 증거일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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