받은 온기를 다시 건네며
한 해의 시작은 달력이 아니라 개학과 함께 시작된다고 해도 될 성싶다. 겨울 방학 동안 몸과 마음을 추스르고, 서서히 날개를 펼쳐 다시 날아오르는 출발점이 바로 이 날이기 때문이다. 이번 개학이 남다르게 느껴지는 이유는 지난 5년간 작은 학교에서 지내온 시간과는 또 다른 결의 시작이 될 것 같다는 예감 때문이다. 기대가 앞서지만, 긴장도 솔직히 따라온다. 늘 경험해 온 일이지만 늘 새롭다. 아마도 학생들이 매번 새롭고, 그 사이 나 역시 조금씩 변해왔기 때문일 것이다.
내 교직생활의 삼분의 이가 이미 지나왔다. 감회가 새롭다. 남은 시간을 나는 어떻게 보낼 것인가를 고민한다. 내가 교사가 되고 싶었던 이유는 단순했다. 국민학교 1학년 담임선생님의 따뜻함. 그 따뜻함은 어린 아이의 가슴에 꿈 하나를 새겨 놓기에 충분했다. 그래서 나는 아이들을 바라볼 때마다, 나를 바라보고 있을 아이들의 눈으로 다시 나를 본다.
교직은 언제부터인가 천직이라기보다 직업이 되었다. 가정을 이루고 자식을 키우며 생로병사를 통과하는 동안, 나는 교사이기 이전에 한 사람의 삶을 살아내야 했다. 때로는 이상보다 현실이 앞섰고, 사소한 일들에 정신을 빼앗기기도 했다. 그 시간들이 나를 단단하게 만들었는지, 아니면 조금은 무심하게 만들었는지는 여전히 알 수 없다.
그래서 종종 존 윌리엄스의 『스토너』의 한 대목, “넌 무엇을 기대했나?”를 떠올리며 스스로에게 묻는 일이 많아진 요즘이다.
그는 또한 가르치는 사람이 되고 싶었다. 실제로도 그렇게 되었지만, 거의 평생 동안 무심한 교사였음을 그 자신도 알고 있었다. 언제나 알고 있었다. 그는 온전한 순수성, 성실성을 꿈꿨다. 하지만 타협하는 방법을 찾아냈으며, 몰려드는 시시한 일들에 정신을 빼앗겼다. 그는 지혜를 생각했지만, 오랜 세월의 끝에서 발견한 것은 무지였다. 그리고 또 뭐가 있더라? 그는 생각했다. 또 뭐가 있지? 넌 무엇을 기대했나? 그는 자신에게 물었다.
- 존 윌리엄스의 『스토너』중에서
나는 무엇을 기대했나.
곰곰이 생각해 보니 내가 붙들고 있었던 기대는 남부럽지 않은 삶과 자식의 성공, 눈에 보이는 성취와 외적인 행복 같은 지극히 세속적인 것들이었다. 그러나 가장 순수했던 시절의 나는 다만 하루가 건네주는 작은 기쁨을 고스란히 받아들이며 살았을 뿐이다. 어쩌면 기대가 많아질수록 행복은 멀어졌는지도 모른다. 나역시 타협에 안위를 보장받고, 무지를 드러내는 일에 온통 신경쓰느라 점점 본래의 나와 멀어져 간 것은 아닐까.
개학을 앞두고 퇴직하는 날을 떠올리다니.
시작과 끝을 동시에 바라보는 일이 그리 나쁘지만은 않다. 오히려 앞으로 어떤 삶을 살 것인지 다짐하는 출발점이 되기 때문이다. 그동안 부차적인 일들에 적지 않은 에너지를 쏟아왔다면, 이제는 가르치는 일에 조금 더 마음을 기울여도 되지 않을까 하는 안도감도 든다.
그저 다른 선생님들이 정성껏 만들어 놓은 자료를 받기만 했던 시간에서 벗어나, 이제는 내가 만든 자료를 용기 있게 공개하고 함께 나눌 여유가 생긴 것 또한 반가운 변화다. 우리 반이 될 아이들을 위해 새학년 자료를 준비하면서, 동시에 그것을 공유할 수 있다는 자신감이 생겼다는 사실. 나는 그것을 아주 바람직한 징조라고 생각한다.
내일 아이들과의 첫 만남에서 아리 창의『섞어봐』를 읽어줄 예정이다.오직 세상에 단 세 가지 색(빨간색, 노란색, 파란색)만 존재하는 곳에서 일어나는 이야기. 빨간색은 자신이 최고라며 뽐내고, 색과 색 사이에는 보이지 않는 벽이 생긴다. 그러나 의도치 않게 노란색과 파란색이 만나 만들어낸 초록색이라는 새로운 색을 통해, 그들은 이전에 상상하지 못했던 아름다움을 발견한다. 그리고 그 순간, 마음이 녹아내리듯 벽은 허물어지고 더 많은 색들이 탄생한다. 세상은 이전보다 훨씬 다채롭고 풍성해진다.
이 책을 선택한 이유는, 개학이 서로 다른 색을 지닌 아이들이 처음 한 자리에 모이는 날이기 때문이다. 각기 다른 기질과 배경을 지닌 아이들은 낯선 교실과 낯선 선생님, 그리고 스쳐 지나기만 했던 친구들과 이제 한 공간에서 마주 서게 된다.
누군가는 빨간색처럼 또렷하고 적극적일 것이고,
누군가는 노란색처럼 밝고 따뜻할 것이다.
또 누군가는 파란색처럼 조용하고 수줍을 지도 모른다.
이렇게 다양한 색을 지닌 아이들과 첫 만남을 시작하는 교실에서, 나는 우리가 함께 어울리며 만들어갈 아직 이름 붙여지지 않은 색을 조용히 상상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