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향인의 학급살이 1

한 달 같았던 4일, 교실과 업무 사이에서

한 달 같았던 지난 4일의 기록-첫째 날


새 학교의 등교 시간은 8시 30분이다. 집에서 도보로 15분 거리라 7시 40분에 나섰다. 내가 사는 아파트에서 학교까지 가는 길은 세 가지. 그중 지름길은 길 건너 다른 아파트 샛길을 통과하는 길이다.


개학날이라 교문 앞에는 교감선생님과 유관기관 담당자가 나와 아이들을 맞이하고 있었다. 가볍게 인사를 건네고 4층 교실로 올라갔다. 이른 시간의 학교는 고요했다. 계단 바로 앞이 우리 반 교실이라 문을 열자 어둑한 공기가 먼저 맞았다. 불을 켜고 운동장 쪽 창문을 활짝 열었다. 쌀쌀한 아침공기가 교실 안으로 스며들었다.


아이들이 수줍은 얼굴로 뒷문을 열고 들어왔다. 미리 준비한 환영 프레젠테이션을 화면에 띄우고 자리를 찾아 앉도록 도왔다. 나도 긴장했고, 아이들은 더 긴장했을 것이다. 반가운 인사를 건넸지만 컬컬한 목소리가 오히려 낯설게 들렸다.


개학날의 교실은 참 조용하다. 이름표가 놓인 책상에 앉아 아이들은 동그란 눈으로 교실을 둘러본다.

준비한 그림책 『섞어봐』를 읽어주었다. 책표지를 함께 살펴보고, 이야기를 읽어가다 몇 장면에서 멈춰 섰다. “궁금한 점이 있으면 손을 들어 말해볼까요?” 하고 물었다. 그러나 아이들은 그저 조용히 내 얼굴을 바라볼 뿐이었다. 앞자리에 앉은 한 여학생과 남학생 두 명만 꾸준히 손을 들고 질문을 이어갔다. 다른 아이들은 그 질문을 따라가며 조용히 듣고 있었다. 말은 없었지만, 눈빛만은 화면과 친구 사이를 분주히 오가고 있었다.

‘궁금한 것을 찾아보라’는 내 질문이 아이들에겐 아직 낯설었을지도 모른다. 스스로 질문을 만들어보는 연습은 이제 막 시작되는 중이니까.


자기소개 활동지를 나누어 주고 자기 얼굴을 그리게 했다. 막상 앞에 나와 소개하라고 하니 아이들은 머뭇거렸다. 그래서 연수에서 참고한 ‘자기소개 말판놀이’로 방식을 바꾸었다. 활동지를 ㄹ자 모양으로 붙이고, 아이가 주사위를 던져 나온 칸의 친구를 대신 소개하는 방식이다. ‘내가 아닌 친구를 소개한다’는 설정 덕분에 긴장이 조금 풀렸다. 23명이 모두 마치자 한 시간이 훌쩍 지났다.


쉬는 시간, 한 아이가 다가와 말했다.

“선생님, 배가 너무 고파요. 지금 급식하러 가면 안 돼요?”

2학년까지는 4교시 후 급식을 했으니 아직 그 습관이 남아 있었던 것이다. “5교시만 꾹 참아보자.” 하니 아이는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며 자리로 돌아갔다.

또 다른 아이는 활동지를 다 못 썼다며 “죄송합니다”라고 했다. 죄송할 일도 아닌데 쉽게 꺼내는 그 말이 오히려 마음을 찡하게 했다.


5교시를 마치고 급식실로 향했다. 맨 앞 아이에게 길 안내를 부탁했다. 부탁을 받자 아이의 표정이 달라졌다. 씩씩하게 길을 이끌었다. 급식실은 소란스러웠지만, 우리 반 아이들은 밥을 참 잘 먹었다. 교실로 돌아와 청소를 마친 뒤 알림장을 썼다. 올해 해보고 싶은 것 중 하나는 ‘좋·아·해’ 쓰기다. 좋(았어요) · 아(쉬웠어요) · 해(보고 싶어요).


처음엔 “좋아요.” 한 줄만 써 온 아이들이 많았다. 실물화상기로 예시를 보여주며 함께 써 보았다.

“개학해서 좋았어요.”

“그림책을 읽어서 좋았어요.”

“오늘 발표를 안 해서 아쉬웠어요.”

“친구와 친해지고 싶어요.”

무사히 하루를 보냈다는 안도감과 함께, 아이들의 눈높이를 다시 가늠해 보게 된 첫날이었다.






한 달 같았던 지난 4일의 기록-둘째 날부터 넷째 날까지(압축)


기초학력 업무가 주어졌다. 비중이 큰 업무라 우리 학년에서 세 명이 함께 맡게 되었다. 그러나 올해 새로 도입된 ‘국가기초학력지원포털’은 만만치 않았다. 로그인 방법부터 오류와 인증 문제까지, 시작부터 순탄하지 않았다. 담당청에 문의하고 매뉴얼을 뒤적이며 한동안 갈피를 잡지 못했다. 공문을 해석하고, 사이트에 접속해 동영상 매뉴얼을 함께 보며 우리는 연신 한숨을 내쉬었다.


“이게 정말 뭐죠? 하나도 모르겠어요.”
“기안도 같이 보고 한 번 더 확인합시다.”
“다음 주가 진단평가인데, 회원가입 매뉴얼을 만들어서 선생님들께도 안내해야겠어요.”
“저는 컴퓨터 작업은 잘해요. 그 부분은 맡을게요. 대신 발표는 부끄러우니 다른 분이 도와주시면 좋겠어요.”
“걱정 마요. 발표는 또 잘하는 선생님이 계시잖아요. 제가 부탁해 볼게요. 그럼 저는 계획서를 맡을게요.”


서로의 강점을 나누고 약한 부분을 보완해 가며 역할을 정했다. 막막함은 여전했지만, 혼자가 아니라는 사실이 그날의 작은 위로였다. 우리는 잠시 서로를 마주 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공통 업무를 함께 짊어지고 있다는 연대감 속에서, 조금은 숨을 돌릴 수 있었다.


교실 안에서는 분위기가 조금씩 달라지기 시작했다. 첫날이 서로를 탐색하는 시간이었다면, 둘째 날부터는 아이들 고유의 성향이 서서히 드러났다. 말이 트이고, 웃음이 커지고, 각자의 습관이 모습을 드러냈다.

자기만의 시간에 온전히 빠져드는 아이가 있는가 하면, 짝과 더 이야기하고 싶어 몸을 들썩이는 아이도 있었다. 의자 위에 올라가 쪼그려 앉은 아이는 위험해 보여, 2학년 때 배웠듯 바르게 앉도록 조용히 유도했다. 책상에 엎드린 채 내 말을 듣는 아이, 말을 들으면서도 종합장에 무언가를 열심히 그리고 있는 아이, 이유 없이 콧노래를 흥얼거리는 아이까지. 조용했던 교실은 어느새 각자의 리듬으로 숨 쉬고 있었다.


그래도 하루의 중심은 아침활동이다. 그림책을 읽고 표현하는 시간. 아직 3학년은 생각을 글로 길게 구조화하는 훈련이 필요한 시기다. 그래서 그림과 한 줄 쓰기로 표현의 문턱을 낮추었다. 완성된 활동지는 칠판에 붙이고 작은 미술관에 온 것처럼 아이들이 감상했다.


“이 그림 멋지다.”

“글씨를 잘 쓴다.”

“나랑 똑같다.”


그러던 중 한 아이가 자기 활동지를 떼어 들고 가더니 책상 속에 넣어버렸다. 다른 친구들은 색연필로 알록달록 채웠는데, 자신은 연필로만 끄적여 놓았으니 보여주기 싫고, 발표도 부끄럽다고 했다.

나는 조용히 말했다.

“발표는 안 해도 돼. 멀리서 감상하는 거야. 그리고 연필로 적어도 괜찮아. 저기 봐. 다른 친구들 것도 그러잖아.”

아이는 한동안 망설이더니, 책상 속에서 활동지를 천천히 꺼냈다.

“그럼 제 것은 높은 곳에 붙여주세요.”

“그래.”

높은 곳에 붙여주겠다고 하니 그제야 조심스럽게 내 손에 건넸다. 작은 종이 한 장이었지만, 그 안에는 아이의 자존심과 용기가 함께 담겨 있었다. 아이는 색을 칠하지 않은 것이 마음에 걸렸던 것이다. 그것은 단순히 발표가 싫어서가 아니라, 혹시 자신이 조금 부족해 보일까 봐, 다른 친구들보다 못해 보일까 봐 생긴 마음이었을지도 모른다.

처음에는 숨겼다가, 다시 꺼내 들었다. 그리고 조건을 걸었다. '그럼 제 것은 높은 곳에 붙여주세요.' 완전히 숨기지도, 그렇다고 완전히 드러내지도 않는 선택이었다. ‘높은 곳’은 덜 보이는 자리이면서도, 분명히 걸려 있는 자리다. 숨지 않겠다는 마음과, 아직은 조심스럽다는 마음이 함께 담긴 절충안. 그 선택이 바로 그 아이 나름의 용기였다.


하루를 마치며 알림장을 확인했다.

“학교에 오니 좋았어요.”

“친구가 생겨서 좋았어요.”

“미술을 해서 좋았어요.”

“금요일이라 아쉬워요.”

어쩌면 ‘해보고 싶어요’가 잘 보이지 않는 것은, 자기 바람을 말하기까지 아직 조금 더 시간이 필요해서일지도 모른다. 내 생각, 그중에서도 내 바람과 욕구를 드러내는 일은 생각보다 큰 용기와 자신감이 필요한 일이니까.

한 달처럼 길게 느껴진 4일을 정리하고 나니, 못다 쓴 이야기가 참 많다는 걸 새삼 깨닫는다. 하루하루 기록을 남기겠다고 스스로와 약속했건만, 늘 학교에서의 하루 끝은 업무 고민으로 마무리되었다. 교실 문을 닫고 돌아오는 길에도, 집에 와 가방을 내려놓은 뒤에도 머릿속은 여전히 복잡했다.


교사의 업무는 솔직히 말해, 교사 본연의 학급살이를 종종 밀어내곤 한다. 아이들 얼굴을 떠올리며 수업을 구상하고 싶다가도, 현실은 포털 접속과 자료 입력, 처리해야 할 공문들로 채워진다. 마음은 교실에 두고 싶은데, 몸과 시간은 다른 곳으로 끌려가는 느낌이다.


그렇다고 맡은 자리가 무겁다고 해서 쉽게 등을 돌릴 수는 없다. 교사라는 자리는 교실만이 아니라, 그 바깥의 구조까지 함께 감당하는 자리이기 때문이다. 다만 그 무게 속에서도 내가 놓치지 말아야 할 것이 무엇인지, 스스로 계속 묻고 있을 뿐이다.


아마도 그 답은 여전히 교실 안, 아이들 사이에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