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향인의 학급살이3

아이들에게 역할이란

3학년 우리 반은 3분의 2가 남학생이다. 여학생들은 비교적 조용한 반면, 남학생들은 자잘한 말다툼이 잦고 장난꾸러기들 덕분에 하루에 한 번쯤은 꼭 잔소리하는 시간이 생긴다. 특히 남학생 중 두 명은 유난히 내 말에 집중하지 못하고 자기 일에 푹 빠져 있을 때가 많다. 서너 번 이름을 부르고, 무엇을 해야 하는지 구체적으로 말해야 그제야 시선을 내게 돌린다.


그중 한 아이는 수업 중 몰래 책을 읽다가 꾸중을 듣기도 하고, 해야 할 아침활동 대신 학원 숙제를 하다가 또 잔소리를 듣곤 했다. 자기가 하고 싶은 것 외에는 누구 말이든 잘 흘려보내는 아이였다.


그런데 모둠을 만들고 그 아이가 이끄미, 그러니까 모둠장이 되자 지금까지 보아 온 것과 다른 모습이 보였다. 이끄미들을 불러 모둠원들이 해야 할 일을 전달하니, 진지한 표정으로 귀담아 들었다. 전달 내용을 유심히 듣고 모둠으로 돌아가 친구들에게 자세히 설명하기 시작했다. 하교 전에는 모둠 자리 정리와 바닥 쓰레기 확인을 부탁했더니, 누구보다 먼저 책상과 의자를 꺼내 바닥을 살피고 있었다.


그 모습을 보며 정말 예전의 그 아이가 맞나 싶을 정도로 의아했다. 더 놀라웠던 건 그다음이었다. 그 아이가 조심스럽게 다가와 오늘 만든 모둠이 언제까지 유지되느냐고 물었다. 이끄미가 되어서 자기는 너무 좋고, 오래 하고 싶다는 것이었다.


그 말을 듣는 순간 3월에는 모둠 만들기와 역할 연습을 일주일 단위로 돌아가며 해보려 했던 내 계획이 흔들렸다. 물론 사람이 그렇게 갑자기 변하기는 어렵다. 하지만 지금까지 한 번도 보여주지 않았던 그 아이의 적극적인 모습을 보니 조금 더 두고 보고 싶어졌다. 일단 2주 동안은 모둠이 유지될 거라고 말해 주었더니, 안심한 표정으로 자기 자리로 돌아갔다.


자리가 사람을 만든다는 말이 아주 틀린 말만은 아닌 듯하다. 아이들도 자기에게 맡겨진 역할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생각보다 잘 안다. 그래서 그 아이도 여태까지 보여주던 모습과는 다른 모습을 드러낸 것일지 모른다.

하지만 또 다른 아이는 전혀 다른 모습을 보였다. 부반장이 되었고, 모둠에서는 이끄미가 되었는데도 별다른 관심이 없어 보였고 행동에도 변화가 없었다. 더구나 그 아이는 학급임원 선거에서 반장 후보 연설을 아주 유창하게 했던 아이라 더 의아했다. 이상은 높지만 행동은 아직 그 마음을 따라가지 못하는, 참 어린이다운 모습이었다.


아이들에게 자리란, 결과를 보여주는 자리가 아니라 자신을 배워 가는 자리인지도 모른다. 어떤 아이는 그 자리를 통해 처음으로 책임을 배우고, 어떤 아이는 아직 그 무게를 견디는 연습을 시작하는 중일 테니, 아이들은 그렇게 작은 역할 하나를 통해 저마다의 속도로 자라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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