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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로 발령받은 학교에 다녀왔다.

여백의 미

by 책그림 Feb 11. 2025

새로 발령받은 학교에 다녀왔다. 기존 학교에서 10분 정도 더 멀리 있는 곳에 위치한 곳이다. 전교생 약 47명 정도 되는 작은 학교다. 아담한 교문을 지나 주차장에 차를 두고 다시 운동장 쪽으로 향했다. 

한겨울이라 황토색잔디 밭은 어린 왕자에 나오는 밀밭색을 떠오르게 했다. 마치 내가 어린 왕자가 된 듯 저기 어디서 여우가 반갑게 맞으러 나올 것 같은 착각도 들었는데, 본관 건물 앞에 놓인 각종 동물모양 모형들 때문이기도 했다. 

자연과 어우러진 푸른 빛깔 외벽을 지나 본관 입구 문을 열자 공사가 한창이었다. 화장실에 잠깐 들러 헝클어진 머리도 다듬어볼까 했더니 여기도 역시 공사 중이었다. 대충 손가락으로 삐져나온 머리카락을 고무줄로 간단히 묶은 후 교무실 문을 두드렸다.

남향에 1층인 교무실 안이 환했다. 친절하게 환영해 주는 세 분 선생님들 표정과 함께 적당한 온도와 이제 막 끓기 시작한 투명전기포트에서 나오는 하얀 수증기가 주는 아늑함이 나를 반겨주었다.

 "어서 오세요, 반갑습니다."

 마주하는 상대방에게 신뢰감을 주는 교감 선생님의 목소리에 낯선 곳을 방문한 나의 긴장감이 사라져 버렸다.

 "안녕하세요, 교감선생님!" 

 덕분에 내 목소리도 하이톤으로 바뀌었는데, 살짝 흥분했던 것 같다.

 선생님 한 분이 우려낸 차를 건네주셨고, 차향의 온기를 손끝으로 받아 조금씩 목을 축였다. 새로 발령받아 인사차 학교에 오면 제일 먼저 해야 할 일이 학년과 업무선택이다. 교감선생님은 남아 있는 학년과 업무에 대해 말씀하시면서 계속 미안하다고 한다. 

"5학년과 6학년이 비어있습니다. 기존에 계신 선생님들에게 선택권이 우선 주어지잖아요. 업무도 보시면 알겠지만 꽤 많습니다."

전달하는 입장에선 이제 막 새 학교에 온 선생님에게 부담되는 내용인 터라 분위기를 부드럽게 하시려고 애를 쓰는 모습이 내가 보기에도 안쓰러웠다.  

잠시 후 다른 선생님 한 분이 비타 500을 한 손에 들고 교무실로 들어오셨다. 마침 화제도 돌릴 겸 나는 선생님이 들고 온 비타 500을 보고 감탄을 했다. 그리고 나도 뭔가 가져올 걸 그랬나! 하는 아쉬움도 들었다. 어쨌거나 비타 500을 들고 온 선생님도 사람 좋은 인상을 더해 마음씀씀이도 그만큼 넉넉했다. 함께 학년과 업무를 나누면서 최대한 상대방을 위하려고 애쓰는 마음이 뭉게뭉게 피어올랐다.

동양화에 나타난 여백의 미를 통해 말로 표현할 수 없는 진한 감동을 종종 받기도 하는 데, 사람과 사람사이 여백도 마찬가지다. 따뜻한 대화가 만들어 내는 여백이 곧 친절이라고 생각한다. 그 친절로 인해 모든 상황을 긍정적으로 바라보게 되면서 학년과 업무에 대한 고민이 스스로 달아나버린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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