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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반이 돼줘서 고마워

선생님의 고백

by 나비


우리 삶을 스쳐 지나가는 모든 이들은 각각 특별한 존재이다.
누구든 항상 그의 무언가를 남기고, 또 우리의 무언가를 가져간다.
많은 것을 남긴 사람도 적은 것을 남긴 사람도 있지만,
무엇도 남기지 않고 지나가는 사람은 없다.
이것은 누구든 단순한 우연에 의해 만나게 되는 것이 아니라는 분명한 증거이다.
-보르헤스-



작년 이맘때 관내내신을 쓰고 발표가 난 후 큰 학교에 대한 기대감 반, 두려움 반으로 설레었던 기억이 떠오른다. 지난 1년간은 소위 코로나 세대와 알파세대로 불린 5학년을 가르치면서 깨달음을 얻었던 시간들이었다.


교사라는 직업을 처음으로 다시 생각해보게 했던 순간들이 참 많았다. 그 이유로는 크게 두 가지였다. 하나는 내적으로 두 번째 찾아온 갑상선 암이 주는 공포로 힘들었던 나는 물리적인 통근시간의 피로감으로 지치기 시작했다. 다른 하나는 외적으로 새로 옮긴 학교에서 마주친 낯선 환경 속에서 마주한 24명의 다양한 아이들 모습을 받아들이기 버거웠던 것 같다. 정신적 물리적 심리적 환경이 모두 내 반경을 비껴간 것이다. 지금도 기억한다. 나는 당시 '끝까지 버틴다!'라는 말을 수없이 반복하면서 견뎠다. 하루하루를 전쟁하듯이 치열하게 학교에서 일어나는 여러 사건들을 마주했다. 나중에 상담건수를 통계를 냈더니 하루에 한 건씩 평균적으로 기록했다는 걸 알 수 있었다.


친구들과 갈등이 생길 때마다 어디론가 사라져 버리는 아이, 에이디에이치로 인해 교실에서 매일 친구를 때리거나 나에게 욕을 하는 아이, 매일 지각하는 아이, 친구를 이간질하는 아이, 쉬는 시간마다 복도에서 소리를 꽥꽥 질러대는 아이, 수업시간마다 엉뚱한 말을 하며 수업을 중단시키는 아이, '염병하네'라는 말을 달고 사는 아이, 친구 책상 위에 놓인 학용품을 가져가는 아이, 고자질이 습관인 아이, 체육시간마다 자기를 왕따 시킨다고 교실로 와버리는 아이, 아재개그만 골라서 친구들을 웃기는 아이, 한 여자애만 계속 괴롭히는 아이, 술래잡기하다 억울하다고 폭발하는 아이, 친구들에게 험한 말을 잘해서 아이들이 싫어하는 아이, 키가 작고 조용해서 괴롭힘을 자주 당하는 아이, 공부시간에 돌아다니는 아이, 학교에 오면 화장실만 들락거리는 아이, 친구관계가 너무 힘들다고 남아서 상담을 수시로 했던 아이들, 쉬는 시간 바깥에서 함께 놀다 큰 싸움이 일어나 뛰어가서 말렸던 일, 교담시간에 아이가 사라져서 교문 밖까지 찾으러 돌아다녔던 일......


나는 점점 회의감에 빠져들었다. 더 이상 내가 더 어떻게 해야 아이들은 변화될까? 성장할까? 내가 잘못 가르치고 있는가, 나는 자격미달인가, 이제 그만 교직을 떠나야 되는 것인가. 저 아이들은 나를 교사로 생각은 하고 있는가, 두려워지기 시작했다. 그래도 끝은 내야 하지 않을까? 1년 동안 담임으로서 마무리까지 아이들을 가르치고 올려 보내야 한다.라는 생각에 매달렸다. 화장실 가는 시간을 제외하고는 교실 지박령이 되었고, 행여 발생할지도 모를 사고를 대비해 늘 내 자리를 지켰다.


일어나지 말았어야 할 일이라고 생각이 되지만, 교실을 지키고 있었기에 빠른 대처를 할 수 있었던 사건이 떠오른다. 점심시간이었다. 그날도 급식 후 양치를 한 후 바로 자리에 앉아 책을 읽고 있었다. 그런데 남자아이가 내 앞에서 왔다 갔다 장난을 치더니 복도로 나갔고 잠시 후 앞쪽 문 유리창이 와장창 깨졌다. 깨진 창문 앞에는 여학생이 서 있었는데 놀랍게도 깨진 유리조각이 여학생을 피해 갔다. 유리를 깬 남학생은 얼굴이 창백해졌다. 순간 나는 얼른 일어나 놀란 여학생과 손을 다친 남학생을 데리고 보건실로 급히 향했다. 책임감이 강한 아이들 몇몇이 자기들이 치우겠다고 걱정 마시라고 뒤에서 소리치는데 어찌나 믿음직스럽던지 지금도 생생하다.


종업식날 출근하는 차에서 울었다. 1년이 이렇게 마무리된다는 안도감과 함께 그동안 아이들에게 나는 어떤 담임선생님이었을까를 떠올렸다. 그리고 아이 한 명 한 명에게 해 줄 말을 생각했다. 그러다 보니 그토록 내가 힘들다고 생각했었던 지난 시간들 속에 아이들 모습이 보이기 시작했다. 1년간 성장한 모습이 왜 이제야 생각이 나는 걸까? 그랬다. 나는 그때 아이들이 잘못한 것들에 관심을 쏟았기 때문에 보지 못한 거였다. 지금은 아이들 한 명 한 명에게 어떤 점이 성장했는 지를 말해 주려고 생각하니 그때부터 눈앞에 펼쳐졌다. 잘하려고 노력한 것들, 힘들지만 애썼던 것들, 자신이 달라진 점을 친구들이 알아준 것들, 욕을 입에 달고 살던 아이가 머릿속에 맴도는 욕을 떨쳐버리는 모습들, 친구에게 심한 말을 자주 하는 자신을 알고 고치려고 하는 아이, 솔직하게 자신의 생각을 말하려고 용기는 내는 아이......


지금도 기억난다. 차에서 내린 나에게 달려온 두 녀석이 조금 늦게 교실에 들어가라며 입구에서 서성거렸다. 뭘까? 속으로 궁금했고 교사 촉으로 대충 상황을 짐작했다. 종업식이라고 뭔가를 준비했구나. 그리고 시간이 됐는지, 뒷문이 열리고 이제 들어오셔도 돼요 하며 씩 웃었다. 흠, 심호흡을 한 번 하고 교실 앞문을 열려다 깜깜한 안쪽에 둥그렇게 앉아 있는 아이들 앞에 놓인 촛불을 보고는 나도 모르게 욱! 하고 뜨거운 눈물이 쏟아져 내렸다. 연이어 '이젠 안녕'이라는 노래를 조용히 부르는 아이들 모습에 나는 얼굴을 두 손으로 가리고 울었다. 아이들도 한 명씩 울기 시작했고, 그러다 모두 함께 울었다. 너희들, 이렇게 감동을 주다니...... 이건 반칙 아니냐! 나는 너희들에게 화만 내는 선생님이었단 말이다. 칠판에 써놓은 수많은 글들과 4절지에 수놓은 24명의 손 편지를 읽어가다 오열을 하고 말았다.

아이들은 알고 있었다. 단지 표현이 서툴러서, 타이밍이 맞지 않아서, 그랬던 거다. 우린 그동안 함께 가르치고 배우면서 수많은 사건들을 통해 성장해 왔던 거였다. 어른인 나도 마찬가지였다.


마지막으로 나는 아이들 한 명씩 이름을 불러주면서 처음 만났던 그 순간과 성장한 모습을 말해주었다. 그리고 우리 반이 되어주어서 정말 고마웠다는 말을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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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생애 가장 힘들었던 5학년이었지만 그만큼 내가 교사로서 어떤 삶을 살아야 하는가를 고민하게 된 작년은 인생 터닝포인트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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