꽤 괜찮은 이유
유난히 추웠다. 일주일 계속 눈이 펑펑 내렸고, 바깥 기온은 영하를 맴돌았다. 오늘 막내를 데리러 나갔다 온 남편이 싱글벙글 웃으며 한소리를 했다.
"막내가 누구를 닮았는지 알겠구먼. 엄마를 닮았어요. 꼭 이렇게 추운 날 밖에 나가야 했냐고. 저번에 눈이 펑펑 내린 날에 산책 나갔다 온 당신이랑 똑같아."
맞는 말이기에 나는 그냥 웃었다. 밤새 눈이 펑펑 내린 다음날 아침에 일어나 서둘러 두꺼운 패딩을 입고 바깥을 돌아다녔기 때문이다. 겨울방학이라고 집에만 있었는데, 눈 쌓인 풍경은 참을 수없었던 나였나 보다.
내가 생각해 봐도 참 이상한 구석이 있다. 굳이 그렇게 추운 날 나갔어야 했을까? 하고 남편의 말을 곰곰이 고민해 봤다. 알 수 없는 이끌림이라고 해야겠다. 산이 있으니 산에 오른다는 말처럼 그 당시 눈이 펑펑 내리는 날엔 동천이 어떤 모습을 하고 있을지 궁금했다. 그래서 무의식 중에 넋 나간 사람처럼 갔을 것이다.
아름다웠다. 다른 말로 표현하기엔 내가 가진 단어의 빈약함이 야속할 뿐이었다. 비행기를 타고 가야만 볼 수 있는 남의 나라 설경 못지않은 신비스러운 모습에 입을 다물었다.
'다른 사람이 보지 못하는 사물을 누군가는 볼 수 있는 이유는 그 사람한테 나타나 보이고 싶은 그 사물의 소망 때문이다.'라는 말이 떠올랐다.
그렇구나! 나를 여기까지 오게 만든 건 나의 의지가 아니라 이 풍경의 소망 때문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