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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국 나의 공명은 치유로 귀착된다.

끌어당김

by 나비

공명한다는 말을 나는 좋아한다. 공명은 울림을 생각나게 한다. 그리고 울림은 공감으로 공감은 치유로 연결시켜 준다. 결국 나의 공명은 치유로 귀착된다.


네이버에 검색을 해보니 '공명하다''진동하는 계의 진폭이 급격하게 늘어나다'라든가, '양자 역학에서 입자끼리의 충돌로 생기는 에너지의 총량이 복합 입자의 에너지 준위(準位)와 일치하는 곳에서 단면적 에너지의 극대가 나타나거나 새로운 복합 입자가 생기다.'로 나온다. 전문적인 용어는 늘 나를 힘들게 한다.


나의 공명은 지극히 주관적인 것이고, 즐거운 것이다. 가령 산책하다 맑은 하늘을 올려다보면 그 하늘에 내 몸이 울려 감동을 받게 되고, 지저귀는 새소리에 깜짝 놀라 귀를 기울이다 보면 어느새 가지고 나온 근심덩어리가 사라진다. 그래서 머리가 복잡하거나 마음이 갈피를 못 잡고 방황하거나 속상하면 산책을 나간다.


가끔 이런 생각도 든다. 근심이 먼저인가, 공명이 먼저인가! 자연이 그곳에 있어 매일 나를 부르는 것이라면 공명이 먼저일 테고, 근심거리가 생겨 본능적으로 해결하고 싶은 욕구가 생긴 것이라면 근심이 먼저겠다. 그때그때 내가 느끼는 대로 바라보면 될 테니 고민할 필요는 없다. 그래도 내가 좋아하는 보노보노처럼 막연한 고민을 해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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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존재는 자신이 한 가지로 규정되는 것을 부자유하게 여긴다.
모든 사람이 자유를 원하는 것은 그 때문이다.
우리의 존재 안에는 무한히 역동적인 세계가 있다.
별들의 운항이 있고, 새들의 지저귐이 있고, 꿈과 환상이 있다.
우리는 햇빛 속 먼지인 동시에 광활한 우주이다.
나무를 흔드는 바람이고, 빗방울이고, 절벽에 부서지는 파도이다.
우리는 존재하는 모든 것이다."
-좋은지 나쁜지 누가 아는가/류시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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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존재하는 모든 것이기에 세상과 공명하고 서로 끌어당겨서 새의 지저귐에, 스치는 바람에, 건강한 음식에, 따뜻한 대화에, 도움의 손길에, 세상 모든 것에 치유를 얻는 건 아니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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