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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는 데도 이유가 있나요?"

일침

by 나비

"주는 데도 이유가 있나요?"


이 말은 작년 우리 반 아이에게 들었던 말이다. 5학년 아이들 몇몇은 유난히 학교에 먹을 것을 가져오는 일이 많았다. 먹을 것이 부피가 그렇게 큰 것은 아니었고, 등굣길에 들른 문방구에서 산 불량식품들이 대부분이었다.


한 번은 출근해서 보니, 알약처럼 생긴 작은 사탕이 책상 위에 놓여 있었다. 앉아서 책을 읽거나 대화중인 아이들에게 누가 가져왔는지 물었다.


"제가 가져다 놓았습니다. 선생님 드시라고요."

두꺼운 안경을 쓴 남자아이가 씩 웃으며 말했다. 순간 나는 장난기가 발동했다. 그땐 왜 그랬는지 나도 모른다. 내 안에 장난꾸러기 아이가 살고 있다는 건 확실하다.


"혹시, 무슨 꿍꿍이가 있는 건 아니니? 선생님께 잘 보이고 싶은 거 아냐?"

내 말이 끝나자마자 아이는 버럭 소리를 질렀다.


"아니, 선생님. 주는 데 무슨 이유가 있습니까? 그냥 드리고 싶어서 드린 거예요. 선생님도 우리한테 먹을 거 많이 주셨잖아요. 선생님도 그럼 우리한테 잘 보이고 싶어서 주신 건가요?"


순간, 아차! 싶었다. 아이가 내 유머를 그대로 받아들이겠지......라고 생각한 나를 탓했다. 더구나 이 아이는 늘 옳은 말만 했다. 주변 아이들도 무슨 일인지 궁금한 듯 귀를 쫑긋거렸다.


"아...... 미안해. 고마워. 잘 먹을게."

"괜찮습니다. 그럴 수도 있죠. 하하하."


얼굴이 다소 상기된 아이는 웃음소리를 필요이상으로 크게 냈다. 버럭 소리를 잘 내지르다가도 또 확 사그라지는 성격이기에 이후 아이는 조용히 책을 읽기 시작했다. 나는 의자에 앉아 아이가 준 사탕 한 알을 꺼내 입안에 넣었다. 달콤 쌉싸름한 맛에 순간 몸이 떨렸다.


"참, 선생님. 그 사탕이 셔요. 저도 아침에 먹었는데 맛이 엄청 셔요."

"응, 진짜 시다. 아니, 엄청 셔."


지금 생각해도 웃음이 픽 나온다. 괜히 꺼낸 농담에, 아이가 너무 심각해져서 오히려 내가 더 당황스러웠다. 아이가 맘에 상처를 입을까 걱정이 돼서 빨리 사과를 했다. 하지만 아이는 시디 신 사탕을 먹는 내 표정때문에 금새 잊어버린 눈치였다.


이후 나는 아이 성향에 따라 농담도 가려서 하게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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