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멧돼지와 만날 확률

확률은 중요하지 않다.

by 나비

우리가 살면서 멧돼지와 만날 확률은 얼마나 될까?


내가 멧돼지를 우연히 만난 건 당시(2021년도) 시골로 발령받고 학교 관사에서 1년 정도 살았을 때다. 꽃샘추위가 사라지고 날이 따뜻해지자 가끔 관사에 사는 선생님들과 동네 주변을 산책했다. 그날도 친한 여선생님 두 명과 동네 한 바퀴를 돌기 위해 마을로 향했다.


우리가 산책했던 마을 오른쪽은 주로 주택들이 듬성듬성 이어져 있고 그 사이로 산속으로 향한 굽은 흙길이 서너 군데 보였다. 왼쪽은 넓은 밭들이 서로 옹기종기 이웃하고 있었고 이제 막 심은 새싹들과 겨울 끝자락을 뚫고 나온 대파와 상추 등 여러 채소들이 군데군데 나 있었다.


고즈넉한 시골 분위기를 만끽하면서 바닷가로 이어진 길을 천천히 걷던 우리는 찢어진 어망, 관광객들이 버린 비닐과 페트병들, 깨진 술병 등 각종 쓰레기로 널브러진 해안가를 뒤로하고 망망대해 바다를 향해 속으로 각자 평안을 빌었다. 돌아오는 길목에선 가끔 목줄을 한 개들이 여전히 우리가 영 못마땅한 듯 짖어댔고 어둑어둑한 주변과 공명하는 그 소리에 조금씩 나는 불안해지기 시작했다.


그때 갑자기 밭에서 내 몸뚱이보다 훨씬 큰 시커먼 멧돼지 한 마리가 확! 하고 나타났다. 너무 놀라면 비명소리도 나지 않는다는 걸 그때 알았다. 우리는 동시에 얼음이 됐고 곁눈으로 서로를 쳐다보았다. 바로 눈앞에서 코를 벌렁거리는 이 시커먼 멧돼지에게 자칫 해를 입거나 생명까지 위태로울 수 있겠다는 생각이 머리를 스쳤다.


순간, 나는 옆에 있던 선생님과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서로 부둥켜 담벼락 쪽으로 숨었는데, 시골에서 자랐다는 선생님은 보이지 않았다. 정신을 차렸을 땐 기다란 막대를 들고 있는 선생님과 산길을 따라 뛰어가는 멧돼지의 튼실한 엉덩이가 눈에 들어왔다.


"선생님! 괜찮아요? 안 무서웠어요?"

덜덜 떨리는 몸을 두 손으로 부둥켜안고 우리는 놀란 토끼눈으로 선생님을 쳐다봤다. 긴 막대를 저 멀리 던져 버리고는 무표정에 무덤덤한 목소리로 선생님이 대답했다.

"안 무섭긴요...... 나도 무서웠죠. 멧돼지도 겁을 먹은 것 같더라고요."

"네에? 그걸 어떻게 알아요?"

"감이요. 그냥 그런 감이 들었어요. 우리는 셋이니까 멧돼지가 보기엔 자기보다 덩치가 더 커 보이지 않았을까요?"

듣고 보니 맞는 말인 것 같아 우리 둘은 감탄을 했다. 역시 시골에서 자라 용감하시고 똑똑하시다!


우린 멧돼지가 다시 쫓아올까 봐 빠른 걸음으로 마을을 벗어났다. 그 후로 동네 산책은 중단됐고 안전한 학교 운동장만 돌고 끝내는 것으로 했다.

지금도 멧돼지 얼굴과 몸통이 눈에 선하다. 특히 몸통은 내가 들어가도 충분할 정도로 엄청 컸다. 참 신기한 건 그 상황에 두 사람은 겁에 질려 도망을 가고 한 사람은 겁에 질린 멧돼지를 조용히 쫓아낸 것이다. 위급한 상황이 닥치면 그 사람의 평소 성격이 나오는 건 아닌가 하는 생각도 해본다.


'혹시 또 멧돼지와 마주할 일이 생긴다면?'은 생각하고 싶지 않다. 절대 멧돼지와 마주치고 싶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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