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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만의 작은 자동차 책방 카페

상상은 힐링이다!

by 나비

2025학년도 새 학년 집중 기간 일정이 오늘부터 3일간 시작됐다. 새 학교 첫 출근인만큼 지각하지 않으려고 일찍 일어나 준비를 했다. 통근 거리가 예전학교보다 10분 더 늘어난 것도 이유다. 출근 시간대를 잘 맞춰야 혼잡한 도로를 잘 빠져나갈 수 있기 때문이다. 더구나 아침 시간에 마음먹고 시작한 일(책 필사하고 생각 쓰기)을 중단할 수없어 새벽 5시에 알람을 맞췄다.


첫날이라 긴장했는지 알람시간보다 더 빨리 눈이 떠졌다. 정신도 멀쩡해서 '이게 무슨 일이고, 앗싸!' 환호성을 속으로 지르며 침대에 누워 명상을 했다. 10분 감사 명상을 하는데, 이미 내게 일어난 일들과 일어났으면 하는 것에 감사를 한다. 이후 5분간 두 손을 잡고 위로 뻗기를 30회를 한다. 1년 전 이맘때 왼쪽팔에 난 오십견때문에 꾸준히 해 오고 있다. 그 당시 스트레스가 극에 달했을 때라 오십견 통증이 심해 왼팔을 올리는 게 불가능했다. 지금은 많이 좋아졌다. 딱 1년 전 그 시작점으로 되돌아왔지만, 희망을 가져본다. 5시 10분부터 필사하고 생각을 간단히 적고 나니 6시였다.


오늘 아침엔 순두부찌개를 간단히 끓였다. 국물용 한알 육수와 얼린 다진 마늘을 쌀 씻은 물이 담긴 냄비에 넣고 팔팔 끓였다. 마법의 바지락 순두부찌개 양념을 넣고 끓이다가 순두부를 숭덩숭덩 넣은 후 마지막에 달걀 한 개를 퐁! 넣고 살짝 휘저으면 끝이다. 걸린 시간은 약 10분. 간단히 순두부찌개국밥 한 그릇에 김치를 곁들여 먹었다. 방학이라 자고 있는 막내를 깨운 다음 주차장으로 내려갔다. 참, 그 사이 내린 커피는 텀블러에 넣어가지고 운전하면서 홀짝홀짝 마셨다.


아파트를 나온 시각은 7시 30분이다. 이 정도면 양호했다. 요즘 구독 중인 밀리의 서재에서 '줄리언 반스의 우연은 비켜 가지 않는다'를 오디오북으로 듣고 있어서 블루투스로 연동을 시켰다. 6시간 43분 56초 분량이다. 짬짬이 운전할 때 들었던 책인데 짧은 시간을 나눠서 듣다 보니 욕심이 생겼다. 출퇴근 2시간 20분 정도 걸리니 3일 정도면 한 번 더 완독(?)할 수 있겠다. 출퇴근 시간에 나만의 작은 자동차책방카페를 만들어 놓으니 제법 느낌이 새로웠다.


새로 옮긴 학교에 생각보다 일찍 도착했다. 겨울을 보내고 봄을 맞이할 준비 중인 학교 안 풍경이 아침 공기를 머금어 다양한 색을 보여줬다. 파란 하늘, 겨우내 꿋꿋하게 버틴 연갈색 나무들, 동면 상태에서 아직 덜 깬 누런 잔디, 넓은 운동장을 감싼 황토색 트랙, 정글짐, 미끄럼틀, 철봉들까지 한데 어울려 나를 반겼다.


자연이 품고 있는 학교는 건강하다. 그 건강함이 아이들을 키우고 자라게 한다. 누가 가르쳐 주지 않아도 계절이 바뀌는 자연을 제일 먼저 알아차리는 이들이 바로 아이들이다. 어떤 편견도 없이 풀과 나무와 곤충과 꽃들에게 다가가 그들의 언어로 대화하는 것, 급식실 가는 언덕길을 올려다보며 뱀구멍을 찾아내는 것, 길고양이가 낳은 새끼 고양이들이 어디서 몸을 피하고 있는지 알고 츄르를 가져다 놓는 것, 갯강구를 손으로 잡아 투병 페트병에 넣어 관찰하는 것, 땅속 개미들이 움직일 때마다 흙을 파 길을 만들어 노는 것, 다리 잘린 사슴벌레를 안전하게 피신시키는 것을 바라볼 때면 아이들은 네모 교실에 앉아 배우는 선생님의 설명보다 그들이 스스로 찾아낸 깨달음으로 훌쩍 성장함을 느낀다.


자연은 언제나 변함없이 자기 자리를 지키며 우리를 기다린다. ‘기다린다’라고 표현한 건 지극히 개인적인 생각이다. 그리고 기다리고 있을 누군가를 떠올리면 돌아갈 곳이 있다는 안도감에 하루가 힘들어도 그 힘듦이 상쇄된다. 오늘 하루도 기다림을 준비하는 시간으로 온전히 보냈다. 신⦁구 교직원 인사 및 업무 분장, 학교 구성원 간 교육철학과 학교 비전 공유, 찾아오는 학생 교육 신청 협의를 하다 보니 시간이 훌쩍 지나갔다.


퇴근 시간까지 여유가 있어 교실 정리를 했다. 창문 블라인드를 모두 올리니 옹기종기 모여있는 나무들 사이로 넓은 운동장이 시원하게 펼쳐졌다. 2층 교실에서 바라본 풍경을 눈에 담아 집으로 가져왔다. 누군가 꽃을 꺾으면 그 꽃의 생명을 빼앗는 것이지만, 꽃을 그림에 담아두면 그 꽃은 영원함을 얻는 것이라 했다. 나는 눈에 담아 온 오후의 하늘과 잔디와 강풍에 휘청거렸던 나무들을 글로 쓰니 이것 또한 그들의 영원함이 되지 않을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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