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마트 외식
신세계 오만 원 상품권을 들고 우리 부부는 이마트로 향했다. 6시가 조금 넘은 시각인데도 이제 제법 날이 환했다. 불과 한두 달 전까지 오후 5시 정도부터 어둑어둑해졌는데 말이다. 괜히 마음이 덩달아 즐거워졌다. 하는 것도 없이 배가 고파져 남편에게 저녁 먼저 먹고 간단한 찬거리를 사자고 했다. 오래간만에 외식 기분도 낼 겸 메뉴를 고르는 즐거움이 꽤 쏠쏠했다.
마라탕에 맛을 들이기 시작한 나는 홍대 쌀국수를 클릭해 쌀국수를 골랐다. 남편은 직화한 상 돼지고기볶음을 골랐다. 앉을자리가 꽤 많아서 4인용에 앉았다. 남편은 주변을 둘러보다 2인용을 슬쩍 보며 자리를 옮길까 고민하는 눈치였다. 이왕 앉았으니 나는 그냥 있자고 했다. 곧 남편의 식사가 나왔다. 지난번보다 콩나물국이 따뜻하다며 꽤 만족한 표정이었지만, 사실 점심을 먹은 지 불과 4시간이 지난 터라 살짝 고민하는 눈치였다.
나는 내 번호표를 뚫어지게 쳐다보며 음식이 나오길 기다렸지만, 시간만 계속 흘렀다.
“혹시 착오가 생긴 건 아닐까?”
내가 일어서려고 하자,
“세트로 주문해서 시간이 걸릴 수 있지 않을까? 기다려 봐.”
남편이 번호표를 확인하며 말했다.
“이 정도 시간이 지났다는 건 착오가 있는 게 확실하다고.”
어느 정도 흐른 시간에 살짝 짜증이 올라온 나는 홍대 쌀국수 간판이 있는 곳으로 향했다.
아주머니 한 분만 분주하게 음식을 만들고 있었다. 슬쩍 나와 눈이 마주친 아주머니는 팔팔 끓고 있는 냄비에 쌀국수를 넣는 중이었다. 번호를 누르길래 쳐다보니 265번이었다. 내 번호는 365번인데 이상한 느낌이 들었다. 번호표는 차례를 나타내는 것이고 내가 가지고 있는 번호 대와 265번은 100명 차이가 났기 때문이다. 고개를 갸우뚱거리며 주변을 서성거리는 날 한참 쳐다보던 아주머니도 잠시 고민하는 표정이었다. 그러다 살짝 동공이 흔들렸고(지극히 개인적인 생각) 번호를 수정했다. 365번! 그러면 그렇지. 나는 얼른 번호표를 보여주며 음식이 담긴 쟁반을 들었다.
“번호를 잘못 입력했어요. 죄송해요. 오래 기다리셨죠!”
이마에 땀이 송골송골 맺힌 아주머니의 목소리가 살짝 지쳐있었다.
“괜찮습니다.”
주방에 혼자 바쁘게 요리하는 모습을 보고 나니 조금 더디게 나오는 게 이해가 됐던 나는 눈으로 인사를 하고 돌아섰다. 그리고 번호를 정정해 주셔서 다행스러웠고 고마웠다.
자리로 이동하면서 앉아 있던 곳에서 괜히 마음만 초조해지다 이곳에 와서 결국 다짜고짜 화를 냈을 뻔했을 수도 있겠다, 하는 맘이 들자 오히려 와서 보길 잘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국물 한 모금을 떠서 입 안에 넣자, 아삭한 숙주와 어울려 입안에서 시원한 맛을 자아냈다. 오래전 한참 텔레비전 광고에서 김혜자 님이 활짝 미소를 지으며 하셨던 “그래, 이 맛이지!”가 생각났다.
어느새 밀려드는 손님들로 자리가 메워졌다. 네 사람 자리에 앉아 있던 남편과 나는 미안함에 서둘러 음식을 먹었다. 그냥 처음에 남편 말처럼 옮길 걸 하는 마음이 남아 슬슬 자리가 불편해지기 시작해 그냥 남길까 생각도 했지만, 쌀국수 맛과 함께 땀 흘리며 음식을 만들던 아주머니 모습이 떠올라 국물까지 다 마시고 일어섰다.
삶에는 늘 선택의 순간이 함께 한다. 선택은 결국 내면의 이기심과 줄다리기를 하게 되며 결과는 예측하기 힘들다. 중요한 건 선택 후 오게 되는 만족감이다. 오늘 나는 자리에 대한 아쉬움보다 기다림 끝에 맛본 쌀국수의 감칠맛이 훨씬 의미가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