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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루잰 Oct 12. 2023

[길:] 화곡로 드라이브

 위로와 위안

  13여 년 전쯤이었나? 남편과 뜻이 달라 갈등을 겪었던 적이 있었다. 둘 다 굽히지 않았던 사안이어서 말다툼 끝에 남편은 가출하고 나는 함께 운영하던 체육시설을 혼자 운영하면서 어렸던 세 아이들을 챙기고 동시에 외부 강의를 소화하며 그렇게 바쁘게 시간을 보냈었다. 그렇게 버텼던 기간이 6개월쯤 되었던 것 같다. 그때 몸은 힘들었어도 젊은 혈기로 충분히 버텨낼 수 있는 악과 깡이 있었기에 1인 다역에 문제는 없었다. 서로가 전화 연락 한번 안 하고 독하게 버텼었다. 몸 힘든 것은 충분히 이겨낼 수 있었던 시기였다. 다만 마음이 고달프니 그것이 더 힘들었던 것 같다. 연민은 아니었지만 그런 갈등 상황을 겪는 것 자체가 심적으로 많은 스트레스를 받게 했었다. 


  운영하던 체육시설에는 초등학생들도 많았기 때문에 수업이 끝나면 지도진들은 다음 클래스를 준비하고 나는 차량 운행을 전담했었다. 아마도 그때 화곡동에 살던 학생이 있었던 듯하다. 그래서 특정한 시간대에 화곡로를 많이 다녔던 기억이 있다. 비록 차량운행이었지만 그 길을 다니며 좋아하는 음악을 백뮤직으로 틀어 놓고 남 앞에서는 흘리지 못하는 눈물도 흘리면서 나를 다독이고 스스로 위안할 수 있는 시간을 많이 가졌었다. 

  

  화곡로는 강서구의 메인 도로 중 하나이기 때문에 수없이 다녔던 길이기는 하다. 하지만 오늘 오후 2시경의 화곡로. 특정한 공간과 시간이 트리거가 되어 갑자기 뇌 안에서 저절로 퍼즐이 움직이며 맞춰지듯이 잊고 있었던 그 당시의 감정이 떠올랐다. 그리고 내가 여전히 그곳에 있다는 사실을 인지했다. 공교롭게도 번아웃으로 인해 지금 아주 조금씩 회복되어 가는 내 상태가 그때와 비슷하다.


   주변의 거리 풍경은 바뀌었지만 내게는 거시적인 '화곡로'라는 전체적 이미지와 느낌으로만 다가온다. 그리고 마음이 조금씩 편안해지는 느낌이다. 13년 전에 위로받았듯이 여전히 나는 화곡로에서 위로받고 있나 보다. 크게 대단하거나 예쁜 건물이 있는 것도 아니고 유별나게 특이한 길도 아니다. 그냥 편도 3차선의 차도일뿐이다. 그러나 길이란 그냥 그렇게 존재하는 것만으로도 때로 그 길 위에 있는 존재에게 위안을 베풀어 주나 보다. 


  오후 2시. 꽤 괜찮은 화곡로 드라이브였다. 


[커버사진: 네이버맵 거리뷰 캡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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