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다리는 시간에 엄마도 할 일이 있어

by 루카

두어 달 전부터 딸은 피아노 학원에 다닌다.

“엄마 피아노 보내줘.”하고 조르기를 두어 달, 이제 다닌 지 두어 달. 딸도 나도 이제는 조금이나마 이 생활에 적응했다.

먼저 유치원으로 하원 시키러 가는 길이다. 처음에는 유치원 활동 시간이 언제 끝나는지 몰라 선생님께 묻고도 조금 이르게 가서 기다렸는데 이제는 오히려 선생님이 알려주신 시간보다 조금 늦게 가야 한다는 사실을 안다. 어린이 오후 유치원 활동 마무리 시간이 딱 끝나는 것이 아니라 유동적이기 때문이다.

그렇게 끝난 딸은 기다렸다는 듯이 문구점에 가자고 한다. 요즘 문구점 보기가 힘들어졌다. 대형마트에서 문구를 다 팔고 다이소나 팬시 전문점은 있을지언정 프랜차이즈가 아닌 우리 어릴 때 말로 문방구는 찾기 힘들다. 그런데 우리 아이가 다니는 유치원 근처에는 이 문방구가 두 개나 있다. 바로 앞에 중학교가 마주하고 있어서 인지 어쨌든 군것질과 학용품 그득한 모습이 내 어릴 적 초등학교 문구점 판박이이다. 여기서 군것질 거리를 사고 다시 학원까지 20여분에 걸려 도착해서 들여보내고 나면 ‘야호! 자유시간’이다.

물론 내가 노예도 아니고 자유시간이 없는 건 아니지만 아이를 학원에 보내고 주변을 탐방하는 시간은 꽤 즐겁다. 가끔은 귀여운 동물을 보러 애견샵 앞을 지나고 때로는 액세서리 점이나 화장품 가게에서 필요한 것을 산다. 그래도 역시 주로 가는 곳은 서점과 카페이다. 책을 읽기도 하고 둘러보기도 한다. 때로는 앉아서 글을 쓴다.

이런 일들이 우왕좌왕 벌어지며 시간을 보내면 금방 아이의 하원 시간이 된다. 나는 그래서 이 시간이 조금 더 효율적이길 바랐다. 물론 피곤하고 힘든 날은 쉬고 책을 읽거나 하고 싶은 일들을 하겠지만 그중에서도 내가 제일 좋아하는 글쓰기를 하는 것! 생각만으로도 내가 얼마나 건실한지 모른다. 아이가 공부하는 시간에 나도 글공부를 하겠다는 이 마음가짐. 사실 어영부영 보내기 딱 좋은 시간인데 말이다. 자투리 시간이라기에는 나에게 너무 소중한 느낌이라 ‘골든타임’이라는 이름을 감히 붙여본다.

이 ‘골든타임’의 원래 뜻처럼 나를 살리는 시간이기를 바란다.

그리고 지금 이 글도 골든타임에 계획하고 쓰기 시작했다. 갑자기 그냥 아이가 학원에 가는 동안에 엄마는 이런 생각과 글들을 쓴다고 일들을 한다고 얘기해주고 싶어서 쓰는 글이다. 그렇다고 글에 집중이 되는 건 아니다. 아이가 언제 어떤 연락을 할지 몰라서 엄마는 상시 대기 중이니까. 지금도 공부는 싫은지 ‘힝 엄마’하면서 톡이 온다. 나는 성실하게 ‘파이팅’이라고 답변한다.

사실 아이에게 연락이 오면 뭔가 재치 있는 답변을 하고 싶은 꾸러기 엄마이기도 하지만 그저 연락을 받아서 기쁘고 녀석이 연락을 했다는 것 자체가 기특한 딸바보이다. ‘엄마는 글을 쓸 테니 너는 피아노를 치거라. 딸이여, 용자는 죽지 않는다.’ 따위의 말을 떠올리는 사람이지만 애써 점잖게 ‘파이팅’ 한 마디. 물론 지금 엄마는 너한테 파이팅 해 놓고 토마토 주스 먹으면서 글 쓰고 있다. 대신 끝나면 네가 좋아하는 핫도그 사줄게-물론 나도 먹을 것이다-. ‘다녀오라 용사여.’

벌써 학원을 다닐 만큼 자랐다는 사실에 한 번 놀라고 나는 절대 안 할 거라 생각했던 학원 데려다주고 데려오는 엄마가 된 것에 두 번 놀란다. 나는 7살 때 걸어서 유치원에 혼자 다녔고 학원도 혼자 다녔다. 물론 지척이기에 가능한 일이었지만. 그래서 7살이 되면 학원 혼자 다녀오라고 하면 되는 줄 알았더니... 학원을 엄마가 데리고 다니지 않으면 걸어가기에 먼 거리고 건너야 하는 곳도 많고 차도 많다. 유치원은 학원보다 더 멀다. 그래서 절대 하지 말아야지 하는 짓을 하면서 엄마들이 왜 학교와 학원을 출퇴근시키느라 바쁜지 알아버렸다. 아... 역시 겪어보지 않으면 모르는 영역이 너무 많다. 특히 엄마가 되고는 그 전과 차이가 너무 크다.

그 이전에 생각하고 계획한 것 중에 하나라도 아이와 관계하여 유지하고 있는 사람이 있다면 난 존경한다. 바로 기립박수 감이다. 내가 체력적으로나 정신적으로 더 약한 걸지도 모르지만 대한민국에서 엄마가 되어 아이 키우는 거 정말 극극극한 직업이다. 오죽하면 나도 이렇게 아이가 다니는 학원을 따라다니면서 틈을 내고 있겠는가. 모든 어머님들 존경한다. 특히 바로 길 건너라고 해도 딸을 믿고 피아노 학원을 쉬이 보내주던 우리 엄마의 담력에 깊은 찬사를 보낸다. 나는 아직도 아이가 횡단보도를 건너는 것만 봐도 조마조마해 죽겠다. 내가 새 가슴인 것도 있지만 '우리 엄마 강심장, 인정. 아무리 생각해도 대단해.'

나는 아직은 내가 조무래기 엄마지만 엄마처럼 대단한 건 없다고 생각한다.

어쨌든 기다리는 시간을 보내는, 기다리는, 때우는 시간으로 만들지 않기 위한 내 프로젝트의 출발점이다. 이 시간에 목적을 찾기.

일단 글쓰기를 시작한다는 목적, 달성.

토마토 주스가 바닥을 보이고 있다. 시계를 본다. 아직은 하원까지 시간이 좀 더 있다. 글을 몇 자 더 쓴다. ‘쓰는 만큼 늘겠지.’라고 생각하며 내 어깨에 뽕을 넣는다. 당당해지자. 아이를 유치원 하원 시키고 간식도 사주고 데려다준 후에 글도 쓰는 슈퍼 맘! 내가 이렇게 해야 하는 이유는 나 스스로 작아지지 않겠다는 포부이다. 그럼에도 어느 날은 작아지고 초라하고 나약한 내가 서 있겠지만 되도록 당당하고 부드럽게 서서 바람을 맞는 갈대가 되어 보자.

그러고 보니 가을이라 갈대들이 예쁘던데 코로나라 직접 나들이는 못 간다. 그 마저도 인터넷이나 차를 타고 지나가며 본 광경이다. 딸이 가끔 “코로나가 오면 고춧가루를 먹일 테다!”하면서 “잡히면 죽는다.”는 식으로 말할 때가 있는데 웃기기도 하지만 나도 같은 심정이다. 어딜 가든 조심조심해야 하는 이 사회적 거리가 좋을 때-주로 혼자이고 싶을 때-도 있지만 아쉬움이 크다. 여러 가지 제약과 사생활 침해들이 두렵다. 그래서 나야말로 고춧가루를 멕이고 싶은 심정이다.

그래서 결국 내가 하려는 것 하고자 하는 것의 목적은 뭐냐고?

‘나는 글을 쓸 테니 너는 피아노를 쳐라.’이다.

한석봉의 어머님의 가르침을 본받아 각자의 본분을 하고 또다시 만나면 그것 또한 기쁘지 않을까? 어쨌든 아이가 공부할 때 우리도 떡을 썰자. 그냥 수다 떠는 시간이 아니라 수다를 떨 거면 스트레스 풀리도록 알차게, 공부를 할 거면 그것도 알차게... 나처럼 글을.... 글은 제 소관이니 다른 것을 해주시기를 부탁드립니다. 기왕이면 저의 독자를 해주시면 가장 감사하겠습니다.

우리의 인생은 크게 다르지도 달라질 것도 없으면서 시간을 즐겁지 않은 데 쓰는 건 아닌지 생각해보는 시간이길 바란다. 나는 나의 목적을 찾았으니 당신들도 자신의 길을 즐거이 가시기를 바라며, 이 길에 안내는 오로지 자신뿐이라는 것을 잊지 말자. 누군가를 따라 수렁으로 가더라도 원망하지 말고. 선택은 자신의 몫입니다!라고 힘 있게 말하는 나. 하지만 나도 그리 자신 있지는 않다.

이 모든 건 그냥 재밌어서 하는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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