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이다. 오늘도 아이를 보내고 집에 와서 노트북 앞에 앉는다. 오늘은 눈이 많이 내렸다.
나는 눈이 오면 미끄러워서 싫은데 아이는 눈이 마냥 좋아서 소리치며 눈 위를 뛰어다닌다.
순수하게 눈이 와서 좋아하는 모습을 보고 있으니 이제 나는 나이가 먹은 건가 싶다. 눈이 싫어지면 나이 먹은 거라고 하던데. 그냥 경험이 누적돼서 싫은 것이기는 하지만 아직 눈에 대한 감상이 없어진 것은 아니다. 그러니 나이 먹었다는 말은 일단 무르고 싶다.
나는 나이를 먹는 것에 대해 별로 깊이 생각하지 않는다. 사실 나이를 먹었다는 말에도 그다지 타격이 있는 건 아니다. 이미 오래전에 크게 나이 먹는 것이 싫다는 생각이 지나간 이후로는 감흥이 없다. 심지어 내 나이도 잊는다. 이게 나이를 먹었다는 증거라면 나도 뭐라 할 맒은 없다.
어쨌든 나이에 연연하던 때는 이제 지나왔다.
어제 뉴스에서는 오늘 폭설이 예상된다고 떠들었다. 그럴 때 먼저 드는 것은 걱정이다. 내일 눈길은 어떻게 다녀야 할까 하는 일들. 새 눈을 밟는 건 좋지만 미끄러운 건 싫다. 넘어질 위험이 도사리고 있다고 생각하면 끔찍할 정도다. 어딜 다녀도 조심히 다녀야 되고 긴장해야 된다는 사실이 싫다. 그렇다고 매일 편하게 다닐 수 있는 건 아니라는 사실 정도는 알지만 그래도 싫은 건 싫은 거다.
누구는 맑은 날을 싫어할까.
생각 없이 길을 걷고 어딘가를 향하는 일을 싫어할 사람이 어디에 있을까. 인생도 그렇다 맑고 고운 날이 싫은 사람은 없다. 그런 날은 오히려 의식을 안 할 정도로 편하게 산다. 그런데 눈이 내리는 인생이란 걱정거리가 한가득이겠지. 그런데 그런 날이 있어서 눈이 오지 않는 날이 더 소중하게 느껴지는 것 같다.
나는 지금 맑은 날에 있을까 눈 오는 날에 있을까.
아마도 나는 눈 오는 날이지 싶다.
나의 생은 맑은 날보다 눈 오는 날이 많은 거 같다.
다른 사람들도 그렇겠지만 하루하루 살아가는 것이 얼마나 버겁고 힘겨운 일인가. 게다가 나는 병과도 싸우는 날을 보내고 있어서 눈 오는 날 걷는 것처럼 아슬아슬하게 긴장한 채 살아간다. 아직도 병을 이기는 방법은 찾지 못했다. 그저 이렇게 저렇게 시도를 해보고 싸우는 중이다.
조울증이라는 병이 참 무섭다. 너무 과잉활동을 하는지 의심해야 하고 무기력한 건 아닌지 의심해야 한다. 보통이란 어디쯤일까. 어느 범주에 들어야 보통인 건지 도무지 알 수가 없어서 또 생각한다. 오랜 시간 병을 앓고 있으니 이게 나한테는 보통이 아닐까 하는 생각도 하지만 전문의가 아니라니 아닌가 보다 할 수밖에.
남들에게는 쉬운 일이 나에게는 너무 어려운 숙제이다.
보통이 되는 법을 누가 알려주면 좋을 텐데. 아니, 남들도 어려운지 모른다. 보통이란 기준은 어차피 자신 안에 있는 거니까. 그렇게 생각하면 나는 나를 보통이 아니라고 생각하는 것이 맞다. 내가 생각하는 보통의 범주에는 들어오지 못한 것도 맞다. 그렇다고 생활이 망가질 정도는 아니다. 물론 그건 약의 힘이지만.
언젠가 나도 눈 오는 날을 지나서 맑은 날에 도착할 수 있겠지 하고 생각한다.
보통의 날이, 맑은 날이, 내 인생에도 며칠은 있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