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이는 숫자에 불과하다
공짜로 먹게 되는 나이. 어릴 때는 한 살 먹는 게 즐거웠다. 나는 언제 10대가 되나 생각했고 마침내 10대가 되었을 때 기뻐했던 것이 여전히 생각난다. 나누어진 10대, 20대, 30대... 그런 기준 안에 들어가고 싶었다.
지금은 나이를 잊고 산다. 내가 몇 살이었는지 잘 기억이 나지 않는다.
“엄마는 몇 살이에요?”
“어... 몇 살이더라?”
아이의 물음에 이렇게 대답을 하면서 언젠가 과거에 이런 광경이 있었다는 걸 깨닫는다. 내가 엄마에게 했던 질문과 엄마가 나에게 했던 답이다. 그때는 엄마는 자기 나이도 잘 모르나 하고 이상하게 생각했지만 내가 그 나이가 되고 보니 정말 내 나이도 잘 모르게 되었다.
나이를 먹으면서 분명히 경험치가 쌓이고 생각도 변하게 된다. 그리고 아는 것이 많아지는 만큼 신경 쓰이는 것도 많고 내 나이에 관심을 두는 일은 적어진다.
게다가 나이를 먹어가도 그거 뭐, 아무것도 아니다. 나는 여전히 20대에서 아니 10대에서 크게 자라지 않은 마음을 가지고 있는 것 같은데 나이만 먹는다.
어릴 때는 “어른이 되어서...”라는 생각을 자주 했다. 어른은 뭐 특별한 줄 알았다. 특별히 더 많이 알고 듬직하고 유치한 행동은 안 하고 얕은 생각도 안 하고 점잖아야 어른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막상 내가 어른이 되고 보니 그렇지도 않다.
사실 내가 어른인지도 잘 모르겠다.
근데 어떤 일에 도전하거나 할 때는 갑자기 나이가 마음에 턱 하니 걸린다. 아무래도 몸도 둔해지고 뇌가 굳어가는 것을 느껴서 그런지 걱정이 앞서고 두려움이 크다.
“이 나이에 무슨...”이라는 생각을 하게 된다. 나이를 잊고 살다가 무언가 시도할 때는 번뜩 나이가 떠오른다. 신기하다.
“나이 뭐 그까짓 거.”
하면서 살다가 갑자기 새로운 일 앞에서는 나이 때문에 일을 진행할 수 없다. 물론 몸이 그만큼 따라주지 않을 것과 이제 실패했을 때 리스크가 클 것이라고 생각하면 두려울 수밖에 없다. 이거 해서 안 되면 내 인생은 돌이킬 수 없는 길을 걷게 된다고 생각한다. 그런 생각들이 행동에 제약을 건다. 도전과 실패를 두려워하게 된다. 점점 확실한 성공이 아니면 꺼려지게 된다.
특히나 무언가를 배울 때 그런 마음이 더 드는 거 같다. 그래서 연세 지긋하신 어른들이 새로 배움을 자청할 때 멋지다고 생각하게 된다. 나이가 먹을수록 쉽지 않은 결정이라는 것을 알기에.
그런데 한편으로 생각해보면 그 연세에도 하는데 나는 못할 이유가 뭔가?
내가 10대만큼 머리가 빠릿빠릿하게 돌아가지는 않지만 반복하면 될 일이다. 그리고 뭐, 잊어버리면 어떤가? 배움에는 자세가 중요한 법이다.
뇌는 쓸수록 단련이 된다고 한다. 몸의 근육도 단련하면 되는 것처럼.
뇌를 단련하면 주름이 생긴다고 한다. 나의 뇌 주름은 아마 나이를 먹으면서 쭉쭉 펴졌을 것이다. 더 이상의 배움도 귀찮고 두렵고 그거 해서 뭐하나 생각이 들기 때문에 그냥 두었으니 당연하다. 그러나 뇌를 쓰는 일은 분명히 필요하다. 일단 치매 예방도 되고 변하는 세상에 적응하기 위해선 배움이 필수이다.
공부는 평생 해야 된다는 걸 우리 모두는 알고 있다.
공부든 뭐든 계속 무언갈 해가는 도전정신은 분명히 중요하다. 물론 그동안 방치했던 몸과 마음을 이용해 도전하기 위해서는 쉬운 일부터 해야 할 것이다. 쉬운 미션부터 천천히 늘려가야 된다. 예전만큼 안 되는 건 그 사이 공백이 크기 때문은 아닐까.
요즘은 멋지게도 나이와 관계없이 배움을 하시는 분들을 접할 수 있다. 나도 그렇게 되고 싶다. 그리고 나 스스로에게 뿌듯함을 느끼게 해주고 싶다.
나이는 숫자이다. 내가 거부해도 자꾸만 얹어준다. 누가 주는지는 모르겠지만 참 쓸데없이 사람을 위축시킨다. 그럴 때일수록 어깨를 펴자. 나이가 대수인가.
늦지 않았다. 오늘은 내가 살아갈 날 중에 가장 젊은 날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