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급 예비공무원

by Luke


2021년 여름

불합격


단기합격

2020년 7월, 나의 오만한 도전은 시작됐다. 단기라는 단어가 주는 어감이 왜 이리 달콤했는지 모르겠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벌써 두 번째 낙방이다.


'아, 진짜 마지막이었는데... 이제 시험 과목도 개편되는데 진짜 어떡하지...'


긴 한숨을 내뱉었다.

누구보다 열정에 차 있었으며 자신감 넘치던 모습은 어느새 사라졌다.

나란 놈은 두려움에 휩싸여 축 처진 어깨와 함께 자신감을 잃은 패잔병만 덩그러니 서있을 뿐이었다.


나는 이리저리 정처 없이 떠돌았다. 다시 돌아가 시험을 쳐야 할지 그만둘지 조차 결정하지 못했다. 매일매일 아침에 해가 뜨는 게 무척이나 두려웠다. 나의 얼굴을 비추어 내는 모든 빛이 무서웠다.


자연스레 내 마음에는 그림자가 드리우기 시작했다. 그 그림자가 나에겐 그늘인 것만 같았다. 그곳이 차라리 안식처인 것만 같아서 그렇게 숨어들었다. 방구석에서 온종일 쭈그려 앉아 시간을 보내기 일쑤였다.


방문을 잠그기 시작했다. 늘 기다려주신 어머니의 얼굴을 볼 자신이 없는 것은 물론이거니와 제 놈의 낯짝을 누군가에게 보여줄 자신이 없었다. 누군가 만나고 교류한다는 거, 그런 건 다 사치일 뿐이라고 생각했다. 친구들을 보러 나갈 용기 또한 나지 않았다. 애초에 웃으며 친구들을 만날 수 있을 리 없었다.


유일하게 여자친구에게만 삶을 공유하고 의지했다. 아주 조금, 살고는 싶었나 보다. 그녀를 만나는 날은 항상 더할 나위 없이 행복했다. 다투는 날도 있었고 많았지만 늘 나를 위해 알면서 져주었다. 언제 터질지 모르는 시한폭탄과 같은 마음속 울분들을 그녀는 항상 받아내주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잠시 숨을 돌리고 집에 돌아오면 다시 방문을 닫고 방바닥에 납작 엎드려 숨죽이기 바빴다.


그렇게 2년이 가까이 되는 시간이 지나갔다.




2023년 초여름 새벽 4시

쉬었음 청년


새벽 중에 방문을 열고 몰래 나갔다. 방 안에 홀로 숨어 있다 늦은 새벽이 되고 나서야 굶주린 배를 채우기 위해 나가는 형국이 흡사 바퀴벌레와 같았다. 거실에서 주무시고 있는 낯선 어머니의 얼굴이 보였다.

'벌써 세월이 이렇게나 지났구나. 남들 다 취업하고 제 앞길 자기가 알아서 책임지며 살아가고 있는데 나만 기생충처럼 살아가고 있구나.'

또다시 자기 혐오감이란 놈이 나타났고 저 자신은 그를 이겨낼 재간이 없었다. 정신적으로나 육체적으로나 꼴이 말이 아닌 건 분명한 사실이었다.


여느 때처럼 인터넷 창을 틀어 놓고 멍하니 있었다. 그러다 눈에 확 띄는 단어가 있었다.


쉬었음 청년


실업자들과 달리 구직 활동, 취업 준비 따위를 하지 않고 단순히 휴식을 취하는 상태를 의미했다.


'이거 바로 나잖아?'


뜨끔하다 못해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 외면했던 현실을 직시하는 일은 절대 녹록지 않았다.

의미 없이 틀어 놓는 인터넷 창들을 끄고 싶었다. 어머니가 일하러 나가시면 그제야 방문 문을 열고 나가는 나란 놈이 너무 수치스러웠다. 사람 없는 새벽에나 나가서 집 앞 의자에서 멍하니 앉아 있는 일도 지긋지긋했다. 그러나 내 방 이불은 마치 늪과 같이 느껴졌고, 내 몸과 생각은 이불을 빠져나가기조차 쉽지 않았다.


계속해서 다시 일어나려고 시도했다. 문득 생활 습관부터 고쳐야 한다며 일정한 시간에 일어나라고 했던 여자친구의 말이 생각났다. 그러나 게으름과 우울함에 점철되어 왔던 나는 제대로 해낼 수 있을 리 없었다. 낮에 눈이 떠진 날이면 매번 자책했다.


고민이 될 때 글로써 생각을 정리하면 좀 낫다는 말을 어디선가 들었다. 문제를 적고 옆에 해결방안은 쓰면 마음이 나아진다나 뭐라나. 잃을 것도 없겠다 책상 구석에 놓여 있던 연습장 노트를 오래간만에 꺼내와 자리에 앉아 적기 시작했다.


첫 번째, 아무것도 하지 않는 무료한 일상이 힘들다.


아마 아무것도 하지 않는다는 게 무언가 열심히 한다는 것보다 더 힘들다는 걸 깨달았다. 무언가 열심히 하긴 힘들 거 같으니까 일단 꾸준히만 하자.


두 번째, 꾸준히 뭘 하지?


달리기가 떠올랐다. 그래서 무작정 나가서 뛰어 봤지만 오랜 시간 패스트푸드와 정크 푸드만 먹은 나의 몸은 예전 같지 않았다. 숨이 순식간에 턱끝까지 차올랐다. 이대론 안 되겠다 싶었다.


'혼자서 하다간 분명 포기할 거야. 포기만은 안돼 정말로.'


무작정 검색했다. 한 달 완성! 30분 달리기라는 프로그램이 나왔다. 마음에 들었다. 속도가 아니라 시간이니까 걷듯이 뛰어도 충분히 해낼 수 있지 않을까 싶었다.


30분 달리기 성공해 보기


새로운 도전이 생겼다.


세 번째, 나이가 찼는데 아직까지도 경제적으로 지원받는 사실이 힘들다.


매번 더 이상 편의점 도시락 하나 김밥 한 줄 사 먹는데 몇 백 원 차이를 계산하고 기록하고 싶지 않았다. 그래서 난 무슨 일을 하고 싶은지 고민했다.


나의 아버지는 좋은 사람이 아니었다. 내 방 피아노 옆애서 날 앉혀 두고는 나의 눈빛이 적잖이 기분 나쁘다는 이유로 뺨을 연달아 때려서 이명소리가 꽤 오래갔던 일을 몇십 년이 지났지만 아직도 기억한다.


그때부터였을까? 범죄는 왜 일어나는지, 범죄자들의 심리는 어떠한지, 다시 재발하지 않게 우리가 할 수 있는 조치 등 범죄학에 관심이 많았다. 그래서 마음속 깊은 곳에선 항상 이와 관련된 일을 하고 싶었다.


합격하게 된다면 이미 일어난 일은 되돌릴 수 없지만 악몽이 반복되는 것만큼은 막을 수 있지 않겠나 싶었다. 사회 복귀를 도모하는 일, 나에게 잘 맞을 것 같았다.


그리하여 나는 다시 수험생이 되었다.

어찌 됐든 기어코 시작해 내었다.




2025년 3월 25일 오전

인대봉합술



오른손 엄지손가락을 크게 베었다. 피가 멈추지 않았다. 쓰레기통에 손을 넣고 눌러내다 안에 있던 깨진 사기그릇에 그대로 베인 것이다. 방바닥과 화장실에는 새빨간 피로 범벅이 되었다. 오 분정도 기다려 보았으나 멈출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응급실은 비싸다는 걸 어디에선가 들은 터라 재빨리 동네 정형외과로 가고자 했다. 택시도 부담스러웠던 난 무작정 뛰기 시작했다. 그리고 대강 병원 방향으로 가는 버스에 올라탔다. 행여나 누가 날 볼까 고개는 푹 숙인 채 빨간 수건으로 손가락을 꼭 쥔 채 그렇게 실려갔다.


나의 진료 차례가 되었고 의사 선생님께서는 대수롭지 않게 "꿰매드리면 되겠죠?"라고 말씀하셨다. 다행이었다.


수술실에 나의 손가락이 올랐고 의사 선생님께서 상처 부위를 열어서 보는 순간 정적이 흘렀다. 간호사에게 무언가 준비 안 했냐고 타박하는 말도 들려왔다. 무언가 단단히 잘못되어가고 있다는 걸 단박에 느꼈다.


"하... 이거 인대 끊어졌는데? 이거 일단 열어 놓고 천천히 할게요."


소독냄새 가득한 수술실은 나에게 삭막한 법정과 같이 느껴졌고, 의사 선생님의 나지막한 한숨과 함께 흘러나온 한마디는 마치 사형선고처럼 느껴졌다. 수많은 생각이 스쳐 지나갔다.


'왜 하필 지금... 신도 무심하시지... 악력 시험은 어떡하지? 앞으로 영영 손을 못 쓰는 건가? 수술비는 많이 나오나? 필기시험이 얼마 남지 않았는데...'


내 옆에는 간호사님들이 분주하게 저의 수술을 준비했다. 텅 빈 수술실에는 큰 기계가 들이 찼다. 접수대에 계신 간호사님 외에 모든 직원들이 나에게 붙은 것 같았다. 온몸은 경직되고 긴장의 끈을 놓기 힘들었다. 수술대가 마치 관짝처럼 느껴졌다. 아무 생각도 들지 않았다. 너무 버거워 눈을 살며시 감았다.


10분쯤 지났을까 저 멀리에서 여자친구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혹시 OOO, 여기에 있는지 확인해 주실 수 있나요?"

내가 다쳤다는 말을 듣고 단번에 달려와줬음이 분명했다.


의사 선생님께서 다친 부위를 열어 놓고 사진을 찍으라고 하셨다. 나는 배터리도 없어 사진을 찍을 수가 없다는 핑계로 그녀를 불러달라고 했다. 조금이라도 그녀에게 의지하고 싶었다.


그녀는 손가락이 퍽이나 징그러울 텐데 아무 내색도 하지 않았다. 오히려 계속해서 제 얼굴을 어루만지며 괜찮다고 위로해 주었다. 자기 어머니 이야기를 말해주면서 요즘 별 거 아니라고, 너무 걱정하지 말라고 그렇게 날 안심시켜 주었다. 또다시 나는 그녀에게 감사함을 느꼈다. 어떤 보상도 바라지 않고 아낌없이 주는 그녀인데 나는 줄곧 화부터 내었던 걸 후회했다.


"시험은 어떡하지... 진짜 얼마 안 남았는데...."

조그맣게 말하며 겨우 숨죽여 울었다. 눈물이 볼을 타고 떨어져 내렸다. 의사 선생님께서 물었다.

"무슨 시험 보길래 그래요?"

"공무원 시험 준비해요."

그녀가 대신 답해주었다.


차가운 정적만이 흘렀다. 뛰어오느라 땀으로 떡진 머리, 후줄근한 트레이닝 바지와 후드티를 입은 초라한 수험생의 소리 죽여 울고 있는 상황을 이제야 이해했기 때문일 터다.

"이 정도로는 괜찮아요. 너무 걱정하지 마요. 내가 정성껏 잘 꿰매드릴게."

의사 선생님께서도 애써 그렇게 나를 위로했다.


수술을 무사히 마치고 원장실에서 수술에 대해 설명을 들었다.

"여기는 뼈고... 여기가 인대거든요. 깨진 사기그릇이 아마 이런 모양이었나 보죠. 이런 식으로 파였다고 보면 돼요. ··· 내가 시험 준비하는 사람들 만나 봤는데 모두 다 좋은 결과 있었어. 분명 예후가 좋을 테니까 너무 걱정하지 마요."

걱정이 많아 보였는지 아니면 의사로서 환자에게 설명할 의무를 다하는 것인지 모르겠지만 최선을 다하고 있음이 느껴졌다. 종이 위에 그림까지 그려가며 설명하고 너무 걱정 말라며 자신의 경험에 비추어 나를 위로했다.


괜히 억울했다. 살아오면서 겁이 많아 학창 시절에도 그 흔하다는 다리 한번 부러진 적이 없는데 어느새 내 오른팔에는 반깁스와 하얀 붕대가 감아져 있었다.


곧이어 두려워졌다. 아마 어쩌면 그때의 나는 앞으로의 미래와 지금 내가 처한 현실을 마주하기가 몹시 두려웠을지도 모르겠다.

'휴... 어머니에겐 다친 건 어떻게 말하지.'

몇 년간 벽을 쌓고 살아온지라 대화하기가 덜컥 겁이 났다.

'왜 하필 안 하던 짓을 해서....'

후회가 거친 파도가 되어 몰아쳤다.

신이 있다면 나를 버린 게 분명했다. 그렇지 않고서야 시험 10일 전에 이런 시련을 주실 리가 없었다.
'정녕 어디까지 견뎌낼 수 있는지 저울질하는 건가?'

제 놈의 인생을 가지고 장난치고 있음이 분명했다. 그 날 만큼은 하늘을 마구 탓했다.

여자친구에게 쭈뼛쭈뼛 다가가 조심스레 말을 건네었다.

"나 너무 마음이 힘들어. 혹시 당분간 네 집에서 좀 지내도 될까?"




2025년 3월 24일 오후

연락



어머니에게 전화를 했다.

"그 어... 어... 손가락 다쳤어. 수술받았는데 인대 40... 40% 정도 끊어져서 3주는 반깁스 해야 하고... 2주는 재활해야 되고... 응... 미안해... 내가 실수해서 그랬어... 응 내 잘못인 거 알아. 미안해."


안 울 줄 알았는데, 5년여 만에 듣는 어머니 목소리에 결국 흐느끼고 말았다. 스스로 방문을 걸어 잠갔던, 숨어들었던 나는 또 무너졌다. 여자친구는 말없이 다가와 어깨를 토닥여 주었다.


여자친구와 함께 집에 갔다.

"아이고..."

마룻바닥도 세면대도 내 방도 온통 피투성이었다.
"내가 뭐부터 하면 돼?"

탓하지도 비난하지도 않았다. 더러울 법도 한데 아무 내색도 하지 않았다. 그렇게 그녀는 나를 위해 청소를 시작했다.


한두 시간 지났을까, 방이 깨끗해졌다. 근 몇 년간 중에 제일 깨끗했다. 그동안 우울에 짙게 깔려 보지 못했던 쌓였던 먼지와 때들이 비로소 닦인 걸 알아챘다. 집이라는 공간이 이제야 구색을 갖춘 듯하였다.
또다시 내가 너무나도 부끄러웠다. 여태 어떻게 살아온 건지 허송세월한 나날들이 스쳐 지나갔다. 짙은 후회가 너울이 되어 애써 진정된 마음에 물결을 또다시 일으키기 시작했다.


다친 손가락은 나에게 좋은 핑계가 되었다. 또다시 예전처럼 포기하고 싶었다.

'이번은 팔이 이러니까 더 이상 하기 힘들지 뭐... 하필 오른손이 다친 걸 어떡해. 내년을 노리는 게 더 낫지 않을까.'

그렇게 또다시 도망치려는 수작이었다.


그때, 그녀가 말했다.


"일단 우리 집에 가서 푹 쉬자. 환자잖아. 다쳤잖아. 당분간은 공부도 하지 마. 책 들고 가면 화낼 거야. 가서 쉬기만 해. 공부하더라도 마음 정리하고 해. 하루만이라도 푹 쉬자."


나를 또 잡아주기 위함이었다. 행여나 굴 파고 숨어버릴까 항상 지켜보기만 했던, 배려라는 이름 아래 절대 개입하지 않는 그녀가 오늘 만큼은 파수꾼이 되어 주었다. 나를 위해 자기 소리를 내어 주었다.


그녀가 마련해 준 보금자리 또한 아늑했다. 갑작스레 찾아온 불청객이 불편할 법도 한데 그녀는 또 그녀만의 공간을 나에게 내주었다. 경제적으로나 정신적으로나 단 하나도 도움이 될 리 없는 민폐덩어리를 또다시 품어주었다.




2025년 3월 26일 오후 1시 47분

문자메시지


"어머님한테는 말씀드렸어?"

그녀가 물었다.

"응? 아니... 나중에 말하지 뭐..."

괜히 또 주눅 들었다.

"그래도 말씀드려야지. 얼른 연락드려."

"어차피 여기 있는 걸 알 텐데 뭐..."

"꼭 해. 있다 퇴근하고 와서 확인할 거야. 여기 왔다고 당분간 지낸다고 말씀 꼭 드려. 아무리 여기 와있는 거 아신다고 해도 할 건 해야지."

"알았어. 있다가 바로 할게."


꾹꾹...

전전긍긍하며 문자를 보냈다.



"치료 잘해"


나는 속으로 또 울었다. 어머니도 분명 나에게 하고 싶은 말도 물어보고 싶은 것들도 많을 텐데 나 때문에 말을 아끼셨음이 느껴졌다. 내가 상황을 어렵게만 만들었던 것에 대해 후회했다. 어머니께 죄송스러운 맘뿐이었다.




2025년 4월 9일

쉬었던 청년


그동안 다시 일어나야 하는 이유들을 생각해 봤다.


항상 웃게 해 주고 힘이 되어주는 여지친구

차가 없어 짐 옮기기 힘들 때 나를 위해서 왕복 3시간 넘는 거리를 운전해 주었던 친구

밥은 챙겨 먹냐며 카레와 반찬들을 챙겨 무작정 찾아온 형

오랜 시간이 지났지만 마치 어젯일처럼 생생하게 그려졌다.


'아, 내가 관운이 없지. 인복은 넘치나 보다.'


다들 각자의 방법으로 나를 위로해 주었다. 이들을 위해 열심히 살아보고 싶어졌다.


'불합격할지언정 절대 포기하지 아니하겠다.'


그렇게 단단히 마음에 새기고 도서관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잊고 있었던 나의 꿈을 다시 좇기 위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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