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쓰기 수업

by Luke


2025년 5월 25일

수강신청


오늘도 나는 몸을 이끌고 도서관으로 향했다. 엘리베이터에 게시된 포스터를 보았다.
나의 마음을 돌보는 첫 에세이 쓰기라고 써져 있었다.

'아니, 에세이 쓰기면 에세이 쓰기지 마음을 돌보는 건 또 뭐람?'

나란 놈은 또 무언가 일을 하기 전에 엄청나게 걱정을 하는 스타일이다. 생각지 못한 일을 맞닥뜨렸을 때 무척 당황하고 몸이 얼어버리기 때문이다. 그 기분이 너무 싫어서 항상 모든 걸 준비하고 알아본다. 그래서 언제나 그래왔듯이 바로 자료조사를 시작했다.

'뭐야, 책이 있네'

제목에 돌봐준다는 단어가 있었다.

'뭘 돌봐준다는 거지. 에이 몰라 일단 읽어나 보자. 뭐 별거 있겠어. 읽다 보면 알게 되겠지.'


도서관에서 책을 빌려와 집에 가져갔다. 하루하루 공부 계획에 쫓기다 보니 마음에 여유가 없어 나중에 읽을 심산으로 책상 위에 올려놓았다.

"몇몇 부분은 맘에 들어서 포스트잇 붙여놨어. 그 부분은 꼭 읽어 봤으면 좋겠어."

여자친구가 나보다 먼저 책을 읽었나 보다. 포스트잇을 붙여놨단 건 적어도 마음에 울림이 조금이나마 있었단 것이겠지? 흥미가 생겼다.


다음날, 점심시간에 책을 펼쳐서 읽기 시작했다.


'혈액암, 림프종'


오랜만에 본 단어들이었다. 아직도 서랍 저 편 놓여 있는 학교 제출용으로 받았던 진료 확인서쯤 되는 서류에 적힌 단어들. 그 순간 아버지의 암 소식을 듣고 온 가족이 병원에 갔던 순간이 떠올랐다. 처음으로 암 병동에 들어가서 맡았던 그 병원 냄새, 몇 년이나 왕래가 없던 아버지란 작자가 눈앞에 휠체어 위에 앉아 있는 산송장이 되어 나타난 순간, 어머니가 그에게 원망하듯이 소리 높여 얘기했던 문장들, 스트레스 많아 보이던 주위 환우분들까지 모두 다 10년이 지났는데도 모두 생생했다.


책을 읽으면서 몇 번이나 울컥했다. 작가님의 글들은 내가 애써 외면했던 나의 과거의 기억들이 다시 선명하게 불러일으켰다. 희로애락이라고 하던가. 갖은 감정들이 내 마음속에 휘몰아쳤다.


다음 날 쉬는 시간, 화장실 가는 시간 다 모아서 하루 만에 책을 다 읽었다. 여러 내용들이 있지만 결국 글을 쓰면서 자신을 돌아봤구나, 알아갔구나 그리고 위로했었구나 싶었다. 마음이 따뜻해졌다.

문장들도 정말 쉽게 술술 읽혔기에 나도 이렇게 글을 쓰고 싶었다.


울림 있게, 간단명료하게, 딱 부러지게


곧바로 강의 신청 일자를 메모했다. 캘린더 앱에 하나, 평소에 쓰는 스터디 플래너에 하나, 휴대폰 알람에 하나. 혹시나 까먹을까 봐 준비를 3개나 해놓았다. 강의계획서도 읽어보고 미리 그림을 그려놨다.

'방문 접수도 있구나, 만약 인터넷 수강신청 실패하면 바로 달려가서 수기로 신청해야겠다.'

행여나 모집 인원 내에 들어가지 못할까 봐 모든 걸 준비하는 나였다.


하루하루 예정된 수업 날이 다가오자 기대감은 더더욱 증폭 됐다.

"나중에 질문할 시간이 있으면 꼭 물어보고 싶어. 내가 글 쓰면서 어려운 점들 말이야. 근데 사람들이 내 연배도 아니고 다양한 사람들이 올 텐데 물어보기 좀 그래. 그냥 기회 되면... 그래, 그냥 기회 되면 물어볼래."

어린애처럼 설레하며 여자친구에게 연신 조잘대는 꼴이 아주 웃겼다.


부담감 없이 도전한다는 거

참으로 오래간만이었다.

어느새 예정된 수업일이 다가왔다.


도서관 4층 구석에 마련된 교실에 들어갔다.


'별거 아니겠지 뭐, 하나만 배우자 하나만! 뭐 있겠어?'


그런데 별거 아니라고 생각했던 수업 첫날

별거가 되었다.




2025년 6월 5일

내가 좋아하는 일


우울에서 빠져나오기 위해 내가 했던 일 중 하나는 내가 좋아하는 일들을 찾아내는 것이었다. 잘하진 못해도 그 일을 함으로써 즐거워지는 것들 말이다.


나는 커피를 마시면 기분이 좋아진다. 커피 향이 기분을 좋게 만들어 주기도 하는 거 같고, 커피를 마시면서 무언가 일을 하면 마치 나 자신이 멋져 보이는 것 같다. 머릿속으로 멋진 사무실에 앉아 책을 읽는다거나, 일에 몰두하고 있는 나를 상상하면 기분이 매우 좋아진다. 그래서 그날도 한 손에 따뜻한 커피를 챙겨 교실에 들어갔다.


수업 시작 전 어떤 분께서 나오셔서 가볍게 안내사항을 말씀하셨다.
"앞으로 이 수업에 함께하게 될 저는 000 주무관입니다. 혹시 출석체크 안 하신 분 게시면 꼭 저에게 말씀해 주시고, 너무 덥다거나 등 필요하신 사항 있으시면 본래 보내드렸던 문자메시지의 번호로 연락 주시거나 0000과로 오시면 됩니다. 감사합니다."


'주무관'


저 3글자가 정말 멋있어 보였다. 앞에 서 계신 저분도 결국 시험을 치고 합격했다는 것인데 너무 부러웠다. 꼭 나도 직책을 가지리라고 다짐했다.

그렇게 또 우울을 이겨내야 할 이유가 하나 더 생겼다.


이윽고 수업이 시작됐다.

질문지가 나누어졌고 5가지 질문 중 하나는 다음과 같이 쓰여 있었다.


'키워드를 골라 나를 소개하는 한 문장을 만들어 봅시다.'


수험생은 본래 특별한 것이 없기에 빠르게 적었다. 곧이어 적은 문장들을 발표하고 강사님께서 짧게 코멘트하는 시간을 가졌다.

"뭐라고 적으셨나요?"

"저는 여자친구의 도움을 받아 시험을 준비하고 있는 수험생입니다."

"여자친구 도움을 받으신다고 하셨는데 혹시 어떤 도움을 받으시고 계신 건가요? 얘기하기 힘드시면 안 하셔도 됩니다."


나는 두서없이 허겁지겁 답했다.

"아버지가 혈액암이셨는데 결국 집을 나가시고 가정이 해체되었습니다. 또 수험기간이 오래되다 보니 힘들기도 해서 여자친구에게 경제적으로 정신적으로 도움을 받아가며 다시 수험을 준비하고 있습니다."

"아 그러셨군요, 그러하다면 그 아픔에도 불구하고 계속해서 공부를 한 이유에 대해 생각해 보시면 어떨까요? 힘든 이야기를 나누어주셔서 너무 감사하고 글쓰기가 수험생활에 꼭 도움이 됐으면 좋겠어요."


저 한마디가 그동안의 긍정적인 경험들을 파노라마처럼 불러일으켰다.


처음 30분 달리기를 성공하던 그 순간 흘렸던 뜨거운 눈물

나를 아껴준 사람들을 다시 기억했던 순간

여자친구가 나에게 베푼 아낌없는 사랑

생각이 복잡할 때마다 도서관에 가서 책을 살펴봤던 일들


그리고 무슨 글을 써야 할지 깨달았다.


긍정적인 감정들은 기억해야 되는구나.

부정적인 감정들은 슬기롭게 다루어야 하는구나.

나의 행복은 지속하는 방법들을 쓰자.

나의 우울은 이겨내는 방법들을 쓰자.


수업을 마치고 나는 그날부터 내가 좋아하는 것이 두 개나 더 생겼다.


글쓰기.

그리고 감정과 소통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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