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쓰기 연습장

by Luke


2025년 6월 5일

SNS


첫 글쓰기 수업날 작가님께서 먼저 물어보셨다

"혹시 브런치라던지 SNS에서 글을 쓰시는 분?"


몇몇 분들이 손을 든 것을 본 적이 있었다. 간단한 코멘트 시간에도 "제가 사실 브런치에서 글을 쓰는데..." 하면서 말씀을 나누어준 분도 계셨다.


'브런치는 먹는 거 아냐?'


쉬는 시간에 서둘러 검색해 보니 '브런치스토리'라는 플랫폼이 있었다. 다른 플랫폼들과 차별화된 가장 큰 특징이라 하면 '작가 신청'을 하고 승인을 받아야지만 글을 공개적으로 올릴 수 있다는 점이었다.


그렇지만 나에게 '신청'이라는 단어는 마치 '시험'으로 읽혔다.

'글을 쓰기 위해서 시험을 봐야 한다고?'

연이은 수험 실패로 인해 무언가 도전한다는 것에 설렘보다 두려움이 더 앞섰다. 나는 또 수험생이지 아니한가. 그저 공부하기 싫어 허울 좋은 구실 아래 도망가고자 하는 도피처로 삼는 것 아닐까 싶었다.


나의 걱정들은 모두 다 기우였다. 글쓰기 수업을 마치고 브런치에 있는 아무 글이나 읽어 보았는데 모든 글들이 크건 작건 마음에 주는 울림이 있었기 때문이다. 글쓰기 연습장은 많지만 굳이 고르자면 브런치라는 브랜드가 적힌 연습장 위에다 나의 기록들을 하나하나 적어 내려가고 싶어졌다.


그 순간 머리 위에 알림이 떴다.


새로운 도전 과제가 있습니다. 도전하시겠습니까?

'브런치 작가 되기'



2025년 6월 8일 오전

주제


'그런데 무슨 글을 써야 하지?'


글 쓰기 첫 수업에서 작가님이 하신 말씀이 떠올랐다.

"여러분 혹시 구입한 책이 있나요? 빌려서 본 책 말고 정말 내가 직접 구입한 책 말이에요. 그런 책들을 생각해보세요. 왜 구입했나요? 왜 굳이 샀을까요? 내가 필요했기 때문이에요. 결국 내가 감명 깊게 읽은 책도 결국은 나의 필요에 의해 읽은 것이에요."


초 가을로 넘어갈 즈음, 비가 많이 오던 날이었다. 오래간만에 대학 친구를 만나기 위해 약속장소에 갔던 나는 시간도 남는 김에 서점에 갔다. 서점을 돌아보다 눈에 확 띄는 표지를 보았다.


'에곤 실레의 자화상'


그 그림의 표정을 보자마자 내 마음은 사로잡혀 버렸고 홀린 듯 집어 들어 원목 책상으로 몸을 옮겼다. 무작정 집어 들어 읽은 책인데도 불구하고 읽다 보니 시간이 순식간에 지나가 버렸다. 화자가 담담하게 풀어내는 이야기를 읽다 보면 늦은 밤 달빛 아래 정자에 앉아서 그의 이야기를 듣는 듯하였다.


그렇게 글이 주는 즐거움에 처음으로 매료되어 버렸던 책은 바로 '인간실격'이다. 우울하고 보잘것없어 보이는 주인공 요조의 이야기가 마치 내 이야기인 것만 같아서 나도 모르게 그 이야기에 흠뻑 빠져들었었다. 그의 문장 하나하나가 나의 마음을 대신 표현해 주는 것만 같았다.


'그래, 내가 우울했던 이야기를 써보자. 내가 느꼈던 감정들을 누군가도 느낄 수 있었으면 좋겠다. 누군가 힘들 때 그냥 옆에 앉아 '나는 이랬어.'하고 담담하게 이야기해 주며 술잔을 채워주는 친구와 같은 글을 써보자.'


결심이 서자 다음은 쉬웠다. 도서관에서 인간실격을 다시 빌려 읽고 무작정 따라 썼다. 우울한 이야기가 주를 이루었지만 그런 건 중요치 않았다. 내 인생을 하나하나 되돌아보는 과정에서 느끼는 기분은 마치 국제 시상식의 후보에 오를 만큼 한 편의 잘 짜인 드라마를 보는 듯하여서 감정의 소용돌이가 자꾸만 휘몰아쳤다.




2025년 6월 8일 오후

첫 독자


나는 처음이라는 단어가 주는 아련한 기억이 무척이나 좋다.

'올해 첫눈, 첫 도전, 처음 30분 달리기를 시작했을 때, 처음 일기장을 샀을 때, 처음 수험을 시작했을 때'

처음은 항상 긍정적이던 부정적이던 쉽게 지워지지 않는 흔적이 되기에 여자친구가 내가 신청한 글의 '첫 독자'가 되었으면 했다.


"나 정말 괜찮으니까, 꼭 느낀 거 말해줘야 해. 가감 없이! 꼭 주저하지 말고 모두 다 말해줘야 해!"


식당에 가면 가끔 팔고자 하는 메뉴들을 무료로 드릴 테니 미리 평가를 해달라고 하는 경우가 있다. 그때마다 '만약 맛이 없다고 느꼈어도 결국 상처가 될까 싶어 솔직한 마음을 드러내기 힘든데 하나마나한 것 아닐까?'라고 생각해 왔다. 그렇지만 역지사지가 되어보니 이젠 그 식당 주인의 의중을 확실히 이해하게 됐다. 아무리 부정적인 평가라도 정말 필요했음을, 그리고 겸허히 받아들일 준비가 되어있었다는 것을 말이다.


여자친구가 내 글을 읽으면서 곧바로 아쉬운 점을 말해주었다.


"이건 마치... 사건을 나열만 한 것 같아. 또 글이 너무 우울하기만 해서 재미가 없어."

"난 지금 너무 힘든데, 힘든 이야기를 쓰면 누군가 읽고 공감해주지 않을까 싶어서."

"저번에 작가님께 배운 게 뭔지 기억나? 일기랑 에세이가 다른 게 뭐다?"

"독자의 유무"

"맞아, '일기는 독자가 없어서 자유롭게 써도 되지만, 에세이는 누군가에게 읽혀지기에 꼭 읽는 사람을 염두에 두고 써야 한다.'라고 하셨잖아. 그러니까 '나 정말 힘들었어요.'에만 그치지 말고 글을 잘 끝맺어 보는 게 어떨까?"


그녀는 내가 애써 쓴 글에 기분이 나쁠까 싶어 말을 조심스럽게 표현해 주었다. 게다가 그녀는 나의 글에 필요한 점을 단박에 찾아냈다. 용두사미와 같은 글이 문제였다는 걸 깨닫자 부끄럽기보다 풀리지 않았던 고민이 해결되어 마음속에 십 년 묵은 체증이 내려간 듯하였다.


"신청한 글 그냥 취소할까? 어차피 떨어질 거 같은데 떨어지면 이에 대한 주제는 더 이상 못쓰잖아."

"신청한 건 그냥 둬야지! 어차피 기회는 무제한이잖아. 떨어지면 그 글을 더 다듬어서 다시 제출하면 되는 거야.'


그래 맞다. 나는 항상 기준을 세웠고 기준에 부합하지 않은 것들은 항상 버려내고자 했다. 가령 새로 맘에 드는 팬이 생기면 이전에 사용했던 팬들은 잘 쓸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죄다 버리고 새로 맘에 드는 팬으로 대체하는 식이다. 내 마음에 들지 않는다는 이유로 내가 쓰려는 주제를 모두 폐기하는 건 사용할 수 있는 팬을 굳이 버리는 것과 같았다. 내 글이 심사에서 떨어진다면 다시 돋보이게 잘 다듬으면 되는 일이라고 생각하니 마음이 한결 편해졌다.


"글을 그리고 네가 뭔가 멋있게 쓰고 싶었다는 건 잘 알겠어. 그치만 나를 등대지기 비유한 거, 설명 없이 갑자기 등대지기가 나오니까 나는 좀 어색한 것 같아. 등대지기가 무슨 의미야?"

"등대지기는 혼자서 비가 오나 눈이 오나 항상 그 자리에서 꿋꿋이 자기 할 일을 해내잖아. 항상 나를 위해 서있는 그런 느낌을 이미지로 보여주고 싶었어."

"그렇지만 독자는 글쓴이가 그렇게 생각하고 있는지 잘 모르는걸? 앞에 부연설명 없이 갑자기 '그녀는 마치 등대지기 같았다.'라고만 쓰면 전달하고자 하는 의미를 파악하기가 어려울 것 같아."


그녀의 말을 듣고 나의 고개는 연신 위아래로 끄덕이고 있었다. '그녀는 마치 등대지기와 같았다.'라는 문장은 결국 나의 '가치판단'이 담긴 문장이다. 나는 자연스레 꿋꿋하고 흔들리지 않는 굳건한 모습을 생각하지만 누군가에게는 등대지기의 쓸쓸함과 외로움이 더 생각날 수 있는 법이다. 그래서 앞으로는 너무 애쓰지 않기로, 최대한 힘을 빼고 자연스럽게 써보기로 했다.


"주제가 잘 드러나게 쓰는 게 더 좋을 것 같아. 너무 많은 이야기가 있으니까 무엇을 전하고자 하는 것인지 모르겠어."


내 글을 읽은 친한 형도 비슷한 평가를 내렸다. 나는 보여주고 싶은 것들이 너무 많았다. 마치 '네가 뭘 좋아할지 모르겠어서 다 준비해 봤어.'라는 식의 글이었다. 너무 과한 준비는 다채롭다는 느낌이 아니라 번잡하다는 느낌을 주었다. 나무에 가지치기를 하듯이 너무 사사로운 이야기들은 덜어내고 주제에 관련된 내용만 담아보기로 했다.


그렇게 우리는 새벽까지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웃으며 즐겁게 대화했다. 그녀의 평가들은 내가 하루 종일 끙끙 앓아가며 고민했던 흔적들을 정확하게 짚어냈다는 점이 너무나도 놀라웠다. 물고기를 주기보다는 물고기를 잡는 법을 가르치라고 했던가, 내가 해결하지 못한 매듭들을 대신 풀어주는 게 아니라 내가 직접 풀 수 있도록 도와주었다는 것 또한 고마운 일이었다. 덕분에 내 글이 반려되어 나에게 다시 온다면 어떻게 고쳐야 될지 분명해졌다. 실패에 대한 두려움은 앞으로 어떻게 고쳐나갈지 설렘으로 바뀌었고 그날 밤은 옅은 미소를 지으며 기분 좋게 잠에 들 수 있었다.


'아, 나 글쓰기를 재밌어하는 것 같은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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