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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crow Jan 20. 2016

[미얀마 여행] DAY 04. 바간#2

160118 :

여행 중에 쓰고 있습니다. 두서도 없고 인터넷이 느려 사진도 없지만, 일단 올리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습니다. 지금은 소소한 감상과 개인적인 생각을 위주로 하고, 여행 정보는 간략하게라도 나중에 따로 정리해볼까 하네요.




5시 반에 추워서 깼다. 새벽은 꽤 쌀쌀하구나. 껄로에선 정말 준비를 단단히 해야겠다. 30분쯤 침대에서 미적거리다가 일찍 깼으니 일출을 보러 갈까 싶어 칭다오에서 입던 두꺼운 옷들을 주워 입고 로비로 내려가 일출 장소를 추천받았다. 대번에 쉐산도 파야부터 나오지만 사람이 많은건 싫다고 하니 삐아타다(Pya tha da)를 추천해 준다. 왕복 택시가 15000짯. 비싸지만 밝은 이미 조금씩 밝아지고 있고 이제사 이 바이크를 타고 가긴 늦은 감이 있으니 별 수 없이 오케이.



택시에서 내리니 할머니 동네 같은 시골 냄새가 난다. 쌀쌀한 새벽 공기에 실린 물기 머금은 흙냄새 풀냄새. 맨발에 닿는 차가운 벽돌 바닥도 상쾌하다.

세상은 이미 훤해졌는데 구름이 많아 해는 커녕 붉은 빛도 별로 없다. 하긴 해보다는 벌룬이 뜨는 것을 보러 오는 것이겠지. 터키 카파도키아에 비하면 얼마 되지도 않는 벌룬들이 뜨지만 사원과 어울리는 풍경은 또 다른 느낌이다. 꽤 가까이로 지나가기도 하고. 너무 깔깔대고 소리치는 태국인지 어딘지 아무튼 돈 많아보이는 애들이 이 서정적인 새벽 정취를 망치지만 않았다면 좀 더 완벽했을텐데.


숙소에서 아침을 먹고 수영장이 보이는 비치베드에 앉아서 같은 방을 쓴 아이와 한참 이야기했다.  Vu라는23살  베트남 청년인데 영어가 아주 유창하다. 이름 외우기가 쉬워 좋네. 프린스턴을 졸업하도 지금은 하버드에서 박사 과정 중이란다. 그저 동남아 사람이았던 애가 갑자기 엄청 똑똑해 보인다. 이 간사한 마음. 머리로는 항상 다문화가 어쩌고 나대는데 나도 그런 편견이 있었나보다. 부끄럽네.


부의 전공은 경제학, 취미는 음악 만들기 꿈은 교수. 기타 치고 드럼 치는 경제학 교수라니, 너 인기 많겠다. 나이를 묻길래 그냥 한국 나이로 서른이라고 했더니 충격이랜다. 고마워. 근데 날 엉클이라고 부르겠다고. 내가 아저씨라니, 형저씨 정도는 안되겠니. 베트남 여행 갔던 이야기, 한국에 대한 이야기, 두 나라 부모들의 공통점(Ah, all the parents)에 대해 한참 아야기했다. 나의 짧고 더듬더듬하는 영어를 참을성 있게 잘 들어주니 다행이다. 미얀마에 와서 처음으로 이렇게 오래 이야기 한 외국아이로군. 일단 숙소를 옮겨야하니 이따 점심을 먹기로 하고 헤어졌다.


숙소에 물어보니 뉴바간까지 가는 택시가 8000짯. 1000짯이라도 아껴보겠다고 배낭을 짊어진 채 어제 이바이크를 빌린 가게로 걸어갔다. 안녕, 친절하지만 묘하게 비지니스적인 첫 숙소. 이바이크 가게 주인은 날 알아보고 반갑게 인사해 주며 손님들이 쓰고 간 방명록 중 한국어로 된 것을 보여 준다. 그런데 알고 보니 이들은 연상연하 부부였다. 세상에. 누나 동생인가? 근데 사이 좋을 것 같다 둘이. 계속 그렇게 웃으며 함께하시길. 나도 짧게 방명록을 남기고 냥우를 떠났다.


뉴바간은 확실히 냥우보다는 조용한 편인 것 같다. 숙소비는 더 비싸지만 이바이크로 민난뚜에 가기네도 좀 더 편리할 것 같다. 여사장이 말끝마다 마이 프렌드를 붙이는 것이 뭔가 불편하지만 영어도 잘 통하고 잘 도와준다. 도미토리를 예약했는데 방이 하나 비웠다고 독방을 내어준다. 뜻밖의 호사로군. 오늘은 짐을 엉망으로 펼쳐놓고 빨래도 하고 더블 침대에서 둘러더니며 자야지.


어제 정작 냥우에 있는 사원은 하나도 안 가서 부를 만나기 전에 쉐지곤 파야라도 가 보려 했는데 아무래도 시간이 빠듯하다. 그냥 1시에 보자고 할 것을. 얼른 점심 먹고 돌아다닐 욕심을 부린 것이 되려 화근이 됐네.


부가 추천하고 내 가이드북도 추천하는 웨더 스푼. 서양 여행자들이 그득그득이다. 햄버거가 맛있는 곳이라지만 그래도 미얀마 커리를 시켜 먹는다.확실히 어제 먹었던 것 보다는 맛있는데, 옆 테이블에서 먹는 햄버거가 살벌하게 맛있어보인다. 햄버거를 먹을걸 그랬나.


와이파이 비번을 건네주면서 옆 테이블과 통성명을 했다. 승무원이라는 프랑스 여자와 이탈리아 남자. 선남선녀로군. 한참 이야기하고 있는데 부가 양곤서 만났다는 친구가 들어와 또 인사를 한다. 그런데 부의 친구와 옆 테이블 프랑스 여자는 또 같은 회사에서 일했던 사이랜다. 이런 우연이. 내가 만달레이에서 만났던 민트와 패트릭이 식당에 들어올 때엔 놀라지도 않았다. 신기하다. 내가 유럽 사람들과 이야기하고 있는 상황이. 혼자 있었으면 말을 붙였을리 없는데 유쾌하고 영어도 유창한 부가 있으니 함께 끼어들어 이야기하게 되네. 유럽에 가도 옆 테이블의 유럽인들이 아시아인과 이렇게 즐겁게 대화를 나누나? 올 여름에 유럽에 가면 시도해 볼 수 있을지.


냥우까지 올라온 김에 쉐지곤 파야에 가 보고 싶지만 부는 어제 다녀왔고, 오늘 떠나야 하니 새로운 지역 민난뚜를 뚫어보기로 한다. 술라마니 파토에 들렀다 부가 가장 좋아하는 곳이라는 사원으로 간다. 위층으로 올라갈 수 있는 사원이었는데 전망도 시원하고 사람도 없고 분위기가 너무 좋아 그늘에 앉아 책이나 보며 시간 보내기 딱이겠자. 나도 여기 너무 좋다고 극찬을 했는데, 내려와서 코코넛을 먹으며 구글맵으로 현재 위치를 찍어보니 삐아타다랜다. 아침에 일출 보러 온 곳. 부는 어떻게 그것을 못 알아볼 수 있냐며 웃었고, 나는 너도 서른이 되어보라고 했다. 하지만 정말 왜 못 알아봤지. 술을 좀 줄여야하나 보다. 부에게도 술 때문인 것 같다고 하니 자기도 술 좋아한단다. 이런 안타까운 일이. 내가 굳이굳이 고국에서 소주를 이고지고 왔는데. 부가 하루 더 있었으면 대나무 잔을 산 뒤 바간의 사원을 바라보며 노상에서 소주를 깠을텐데. 부가 한국에 오거나 내가 미국에 가면 술을 먹자고 약속했다. 얘들도 새끼 손가락 손에 걸고 꼭꼭 약속해를 하네? 미국에서 배운건가 베트남에서 배운건가.


숙소에서 받은 지도에 크게 표시된 탐불라 사원을 향해 또다시 모랫길을 헤쳐 왔는데 뭐지 개털도 없다. 내 가이드북에도 없고, 구글에서 검색해봐도 신통한 것은 없어 보이네. 왜 여길 이렇게 크게 표시해놨을까. 답을 찾지 못하고 아까부터 계속 눈에 들어오던 하얀 사원인 Lemyethna에서 부와 헤어진다. 살면서 언제 또 볼 수 있을까. 페이스북 친구를 맺었지만 여행이 끝나면 또 어떻게 될지 모르지. 아무튼 안녕. 훌륭한 경제학자가 되어 고국의 발전에 이바지 하렴.


부는 양곤 가는 버스를 타기 위해 떠나고 난 좀 더 돌아다녀 보기로 했다. 그 길고 험난한 모랫길을 다시 가고 싶지는 않아 좀 돌아가지만 아스팔트 길인 뉴 바간 쪽으로 가기로 하고, 일몰은 가이드북에서 작게 추천한 미녠곤에서 보기로 결정. 다행히 구글맵에 표시되어 있으니 찾아갈 수 있겠다. 하지만 여기서부터 실패의 연속이다. 지나가다가 담마양지 표지만이 보이길래 가이드북의 설명을 보며 구경했는데 뭔가 이상. 알고 보니 담마야지카다. 어쩐지 설명이 안 맞는 것 같더라. 지도를 보고 찾아낸 미녠곤은 풀이 무성하고 어두침침. 마침 지나가던 미얀마 청년이 말을 걸길래 여기가 미녠곤이 맞냐고 물어봤다. 맞긴 한데 몇 년 전 부터 출입 금지돼서 아무도 안 들어간다고. 이런. 해는 이미 저쪽까지 기울어 버린 시간. 급히 찾아뒀던 사원 중 가장 가까운 밍갈라제디로 핸들을 돌렸다. 어두워지기 전에 도착은 했는데, 이것저것에 시야가 가려 전망도 탁 트이지 않고 여기서는 이미 해가 보이지도 않게 넘어가 버렸다. 오늘 일몰은 허탕이구먼 허허. 하지만 지도 보며 재미나게 잘 다녔다.


저녁은 카페에서 약속한 분과 함께 먹기로. 오늘은 한국말로 실컷 떠들 수 있겠군. 이 분은 그 유명한 오스텔로 벨로에서 지내셨다는데, 아침에 다 같이 이바이크 끌고 일출을 보러 출동하거나 저녁에 모여 미얀마어를 배우는 등 여행자를 위한 프로그램이 잘 만들어져 있다고 한다. 외국 애들이랑 친해지기도 좀 더 쉽고. 하지만 나는 별로 끌리지 않아 더 쌌던 오스텔로 벨로를 굳이 피해 다른 숙소를 잡은 것을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카톡 프로필 사진의 인상을 보고 뭔가 느낌이 왔는데 역시 선생님이시다. 이 시기에 여행다니는 한국 사람 중 대학생을 제외하면 아마 절반이 선생님일 것이다.


숙소에서 추천받은 바로 근처 블랙 로즈라는 식당에서 맥주 한 잔과 함께 저녁. 서양 사람들로 버글버글하다. 오늘은 더 이상 미얀마 커리가 별로 당기지 않아 태국식 볶음면을 시켰는데 아주 젓갈처럼 짜다. 밥을 시켜서 잡채밥처럼 먹어야 간이 맞겠는데, 나는 라지로 주문해 버려 밥까지 먹을 자신이 없으니 그냥 술안주로 생각하고 먹기로 한다. 선생님이 시킨 중국 음식은 안 짜고 맛있더만. 오늘은 시행착오의 날인가 보다.


여행 다니면서 외국 사람과 이야기를 나누고 친해지는 것은 물론 내가 바라던 바지만, 되도 않는 영어를 너무 썼더니 머리가 아파올 지경이었어서, 그 동안 한국말을 못 했던 한을 다 풀 작정으로 떠들어댔다. 그리고 동종 업계의 사람을 만나면 더 할 말이 많은 법이지. 일정이 맞으면 트레킹도 같이 가도 좋을텐데 선생님은 내일 껄로로 가신다고. 그래도 한 시간 반 동안 실컷 떠들었더니 여한은 없다.


점심을 먹을 때까지만 해도 어제 반나절 보고 오늘 반나절 사원 보면 별로 미련도 안 남겠다 싶어 껄로로 일찍 넘어가지 않은 것을 잠시 후회했었는데, 오후에 신을 벗고 사원에 들어선 순간 하루 더 있기로 하길 잘했다 싶었다. 무지몽매한 나에게야 이 사원이나 저 사원이나 생긴 것도 비슷하고 그 유래에도 큰 관심이 없다. 하지만 맨발로 밟아 들어갈 때의 촉감, 마른 낙엽을 밟는 소리, 향 냄새, 벌판에 널린 사원들, 적막하고 고요한 그 분위기가 참 좋다. 종일 따가운 햇빛 아래를 싸돌아다니다가 해가 지고 쌀쌀해지면 저녁에 곁들여 먹는 시원한 미얀마 비어는 덤. 그냥 오감이 배부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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