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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crow Jan 20. 2016

[미얀마 여행] DAY 03. 만달레이 → 바간#1

16011 :  밍글라바간

꿈도 안 꾸고 푹 자고 일어났다. 깨어보니 새벽 4시 반. 한국으로 치면 7시네. 시차가 있어서 그런가? 귀신같이 일어나던 때 일어났네. 한 시간쯤 얕은 잠을 자다가 그냥 일찍 일어나기로 한다. 어제 자기 전에 처음 봤던 아줌마는 벌써 일어나 나갈 채비를 한다. 일본 분 같기도 하고. 눈인사만 했는데 말이라도 붙여볼걸 그랬나보다. 고딩 때 드라마를 보며 야매로 배운 일본어를 써먹어 볼걸.


도둑놈처럼 살금살금 씻고 카톡을 좀 하다보니 날이 밝아 있길래 숙소 주변을 슥 돌아봤다. 어제는 오토바이며 트럭이며로 부산스럽고 매캐하던 거리가 조용하고 상쾌하다. 싸락비로 거리를 쓰는 소리. 참새 짹짹 소리. 그러고보니 우리나라에서 참새 소리를 들은지 오래인 것 같다. 어렸을 때는 아침마다 어김없이 들리던 것인데. 참새가 사라진 것인가 아니면 내 귀에 그런 것이 들리지 않았던 것일까.



직원들이 출근하여 밍글라바. 미얀마 사람들은 참 잘 웃는다. 어제 오토바이 아저씨도, 식당 청년도, 숙소 직원들도 감사합니다 하면 환하게 웃어준다. 이것이 여행자에게 얼마나 큰 안심이 되는지. 그래서 나도 인사할 때 자연스럽게 웃음이 난다. 좋지 않나 웃으면서 여행하면. 어제 간 사원과 만달레이 힐이 모두 기대만큼 대단한게 아니었음에도 이 나라가 벌써 좋아진 것은 이때문이겠지.


옥상에 올라가 아침을 먹었다. 토스트에 치즈를 넣은 계란 프라이, 소세지, 잼, 바나나, 커피의 소박한 한상차림이지만. 떠오르는 해와 살짝 쌀쌀한 공기와 새소리를 들으며 먹으니 기분이 좋아지는군. 빵은 두 번이나 더 구워먹고 커피도 한 잔 더.



짧지만 좋은 분위기였던 숙소를 떠나 바간으로 고. 내가 허 생원도 아니고 매일같이 이동이네. 함께 도미를 썼던 민트도 같은 차를 타고 바간으로 간다. 8시가 되니 뒤가 뻥 뚫린 픽업트럭이 왔다. 군대에서 닷지 타던 느낌이다. 오랜만이네.


1인석이 있길 바랐지만 양쪽에 두 자리씩인 작은 버스. 하지만 옆에 사람이 앉아도 크게 불편하거나 하지는 않다. 오디오에선 묘하게 이슬람 기도같은 것이 나온다. 하지만 불경이겠지. 대학교 졸업하고 처음 들어본다. 소리가 크지 않아 거슬리지는 않는데, 그래도 이것을 바간까지 이걸 계속 틀 셈인가? 없던 불심이 생겨날 지경이다. 출발한 지 삼십 분쯤 지나니 불경 소리가 멈춘다. 그래 아무리 이 사람들의 불심이 깊다한들.


시차가 어쩌고 해도 일찍 깬 여파가 있는 것인지 잠이 쏟아져 잠시 졸았더니 휴게소 같은 곳에 들른다. 내려서 민트와 잠시 대화를 나누는데 어제 함께 다니던 패트릭은 홍콩사람이고 자긴 태국 사람이랜다. 세상에 난 둘이 같이 다니길래 같은 홍콩 사람인 줄 알았지. 그러고보니 누가 봐도 외모가 홍콩 사람은 아니네. 근데 어젠 왜 생각을 못했지. 일단 그렇게 생각하면 다 그렇게 보이나 보다. 아니면 내가 몹시 둔감한 탓일지도.


버스는 여행자 뿐만 아니라 미얀마 사람들이 더 많이 탔다. 모두 바간까지는 안 가고 중간중간 목적지에 내려주는 완행 개념인가보다. 중간중간 마을도 지나고 논밭도 지나며 풍경 구경했다가 졸다가 일기 쓰다가 하니 크게 지루하지는 않다. 길은 고르지 않지만 기본적으로 아스팔트 길이니까. 몽골에선 오프로드로 하루 종일 이동했는데 이정도면 뭐 초 문명도로다.


4시간쯤 왔는데 벌써 바간. 외국인 입장권을 사고 픽업트럭으로 갈아탄다. 숙소 이름을 이야기하니 거기까지 데려다주는 시스템. 걱정했던 것에 비해 참 편리하게 다니고 있다. 별로 신경 쓸 것이 없구만.



아고다에서 최저가로 뜬 도미토리 숙소는 참으로 호화롭다. 이름마저 로얄 바간 호텔. 건물 외부도 내부도 도미토리를 운영할 것 같지는 않은 호텔인데 왜 이게 가장 낮은 가격이었지. 마감이 임박해서 싸게 푼 건가. 심지어 수영장까지 있네. 도미토리 방도 군더더기 없이 깨끗하고 고급지다. 6인실이지만 그것도 또 두 방으로 나뉘어 있어 실질적으로 3인실.



아무도 없는 쪽을 쓸까 하다가 그래도 짧은 영어나마 입이라도 열자 싶어 사람이 있는 쪽으로 골랐다. 아마 서양 사람이겠지 뭐. 어딜 가나 한국 사람 없는 나라 없다지만 미얀마에선 참 보기 힘들다. 아직 많이 알려지지 않은 곳이라 그렇겠지. 누군가는 동남아에서 마지막으로 남은 땅이라고도 하더라. 애초에 동포가 많지 않을 곳을 찾아 미얀마까지 오긴 했지만, 그래도 너무 없으니 하루쯤은 한국말로 실컷 떠들고 싶은 기분이 든다. 사람의 마음이란 참으로 간사하다.



비행기에서 열심히 가이드북을 뒤져보며 어떤 사원에 갈까 지도에 표시까지 해 뒀는데, 막상 도착하니 이런저런 욕심도 다 사라지고 할랑하게 돌아다니고 싶은 생각이 더 커진다. 일단 동네 탐방부터 해 볼까.


숙소가 냥우 쪽이라 냥우 마켓을 찾아 무작정 길을 나섰다. 가는 길에 점심도 좀 먹고. 그런데 걷기에는 은근히 거리가 있다. 막상 도착한 시장은 일요일이라 그런지 절반쯤은 문이 닫혀 있고, 여기에서도 망고는 팔지 않았다. 이러다간 망고를 못 먹어보고 돌아가려나 보다. 미얀마 오기 전부터 론지를 입고 미얀마를 활보하라리 다짐했는데 그런 것도 보이질 않고. 시장은 허탕이다.


어제는 누가 봐도 중국식인 볶음면을 먹었으니 오늘은 꼭 미얀마 식으로 밥을 먹고 싶다. 그런데 막상 또 아무데나 들어가기는 무섭다. 암만 철마다 여행간답시고 싸돌아 다녀도 내공이 늘지를 않는구나. 결국 양인 아저씨와 아줌마들이 먹고 있는 식당으로 들어갔다.


안타깝게도 메뉴가 죄다 차이니즈 푸드. 오늘도 볶음면을 먹어야 하나 싶었는데 뒤쪽에서 마얀마 푸드라고 되어 있는 것들이 보인다. 전부 다 커리이지만 인도식도 일본식도 아니라고 했었으니. 고민 없이 미얀마 커리 주문. 고기를 시켰다가 질기기라도 하면 구멍 뚫린 이에 끼어 빠지지 않는 참사가 일어날 수 있으니 생선 커리로.



영어 메뉴판까지 구비되어 있는 식당이라 관광객들을 주 고객으로 하는 곳인지, 가이드북에 나와 있는 것 처럼 반찬이 푸지게 나오지는 않았다. 커리와 매운 고춧가루, 나물 두 종류 정도. 커리는 상당히 기름진 것이 내 입에 딱이다. 커리라기보다는 좀 짜게 만든 생선 조림 같은데? 다큐에서 봤던 바나나 나무 속살인지 껍질인지를 볶아 만든 것 같은 야채 요리는 먹우 나물처럼 쌉쌀하면서도 고소한 들깨가루 같은 맛이 났고, 다른 야채 요리도 새콤한 것이 아주 입에 딱이다. 이건 뭐 동남아 쌀로 만든 밥만 빼면 한식이나 다름이 없구만. 어제 먹은 샨 족의 발효 음식도 그렇고 음식 맛이 꽤나 비슷한 점이 있다.


불심이 깊은 나라에 와서 그런건지 3일째 이 도시 저 도시로 떠돌아서 그런건지. 그래서 오늘은 소박하게 일몰이나 보고 그 주변 사원들 몇 개만 둘러보고 싶은 마음이다. 자전거를 타고 다녀 볼까 싶어 가게에 들어가니 에너지 넘치는 아줌마와 미소가 순박한 아저씨가 나를 반긴다. 그런데 자전거는 없고 E 바이크만 있네. 어차피 내일 탈 것이니 오늘 연습삼아 주행해볼까 싶어 반나절 저녁 7시 반까지 반납하는 것으로 4000짯에 대여.


그런데 저 탈 줄을 몰라요. 스쿠터 타 본 적도 없는데. 1종 보통 면허 딸 때 시동을 꺼먹고 엉망진창으로 주차해서 턱걸이로 붙은 사람인데. 하지만 아저씨가 친절하게 가르쳐 주신다. 레버를 툭툭 두 번 돌려 시동을 켜고, 그 레버로 속도를 올리고, 자전거처럼 브레이크를 잡고. 간단하네? 속성으로 과외를 받고 출발하는데. 속도가 감이 안와서 그런지 3초만에 자빠졌다.  무릎에서 피나는 걸 보고 아줌마가 물티슈와 소독약 같은 것을 가져다 주신다. 하지만 그것보다, 아 동네 창피. 출발할 때 레버를 살살 돌려야지 빠르게 출발해선 안된다는 가르침을 받고 3-4번째 시도에 균형을 잡는 데에 성공. 이게 뭐라고 뿌듯하다.


바람을 가르면서 달리는 맛이 쏠쏠하다. 비록 나는 안전 제일주의자라 뒤에서 버스가 오면 옆에 붙어 멈췄다 가야 하지만. 구글맵에 웬만한 사원들은 다 표시되어 있어 길 찾기도 어렵지 않다. 이미 해가 기울어 가는 오후 시간이라 오늘은 냥우와 올드 바간 사이의 사원 몇 개만 가보자 싶어 틸로민로 파야, 아난다 파야에 갔다가 불레디에서 일몰을 보기로 계획을 잡았다.

 

해는 따갑지만 생각보다 습하지도 않고 그늘에 들어가면 시원하다. 낮은 봄 저녁은 가을 정도의 날씨. 더운 나라를 기대하고 오긴 했지만, 여행하기는 좋은 날씨다.  맨발로 한낮을 머금은 사원의 붉은 벽돌 바닥을 밟는 기분이 좋다.

건축물의 구조니 불상의 차이 같은 것들은 모르겠지만서도 관광객에게 인기 있는 곳이 아니라면, 평화롭고 고요하여 혼자서 감상에 젖기 좋다.

 

틸로민로를 돌고 있는데 영어가 꽤 유창한 소녀가 이쪽으로 가면 전망이 잘 보이는 곳이 있는데 같이 가자고 한다. 가방 들어주고 돈 받는 것과 유사한 시스템일까. 그래도 전망을 한 번 보고 싶어 따라가니 작고 네모난 사원의 옥상으로 올라간다. 과연 거기에서는 틸로민로의 커다란 모습도 한 눈에 들어오고 벌판 여기저기 널려 있는 사원들의 모습도 보였다. 자 이제 이 삯은 얼마가 될까 싶었는데, 자신의 기념품 가게로 안내한다. 이런 시스템이었구나. 친절하게 이것저것 설명해주고 말도 상냥하게 해줬는데 그냥 홱 가버리기가 뭐하다. 속는 셈 치고 구경해 보는데 조각품이 대부분이라 별로 살 것이 없다. 그나마 눈에 들어온 것이 나무 조각품에 볼트와 너트를 조여 만든 병따개. 집에 누가 놀러오면 이게 뭐게 하면서 맥주를 따 주는 푼수짓이라도 할 수 있겠다 싶어 하나 집어왔다.


아난다 파야는 틸로민로보다 훨씬 거대하다. 해가 이미 기울기 시작해 붉은 해가 아난다의 흰 벽에 닿아 만들어진 색이 예쁘다. 통로 사이로 해가 새어 들어오는 것도 예쁘고. 여기도 사람들이 많이 오는 곳이라는데 다들 일몰을 보러 갔는지 거대한 사원 안이 조용하다. 좀 더 둘러보고 싶지만 나도 일몰을 보고 싶으므로


불레디로 이동한다. 구글맵이 보우하사 아스팔트 길이 아닌 샛길도 대부분 경로 표시가 된다. 헌데 모래도 된 샛길에 들어서자마자 균형을 잃고 자빠졌다. 이바이크 배울 때는 무릎이 까지고 이젠 오른발이 깔리다니. 다행히 모래가 푹신해 까지지도 않고 발목에도 이상이 없는 것 같다. 근처에 아무도 없어서 다행. 모래가 단단하게 다져지지 않은 푹신한 곳으로 들어가면 바퀴도 안 굴러가고 핸들 움직이기도 힘들어 자꾸 넘어진다. 무겁고 큰 이바이크와 씨름하며 가다 서다 넘어지고를 반복해 겨우 불레디 도착. 나름 알려진 장소인지 사람들이 있긴 했지만 거슬리게 많지는 않다.


틸로민로보다 높아 전망이 탁 트여 바간에 사원이 참 많다는 것을 이제야 알겠다. 역시 높은 곳이 좋아. 이미 꼭대기의 좋은 자리는 남들이 모두 차지했지만 한층 내려오니 사람도 셋 뿐이고 전망도 좋다. 그래도 모여 있는 숫자가 꽤 많은데 약속이나 한듯 고요. 이야기하는 사람들도 소근소근 목소리를 낮춘다. 

과연, 붉은 해와 넓은 벌판과 검은 실루엣으로 곳곳에 솟아 올라 있는 사원들의 풍경은 누가 시키지 않았어도 분위기를 깨고 싶지 않을만큼  신비하고 적요하다. 스쳐 지나갈 사람들이지만 이 순간을 함께 공유하고 있는 것 같은 기분이다.


다시 숙소 근처로 돌아와 저녁을 먹으러 미얀마 음식점을 찾아나섰다. 관광객들이 많은 도시라 그런지 입간판에 타이 푸드, 차이니즈 푸드라고 적어둔 곳이 많다. 두어군데를 가 봤는데 모두 미얀마 음식은 커리뿐. 커리는 낮에도 먹어서 다른걸 먹어보고 싶은데. 마지막 가게도 마찬가지길래 젓가락으로 호로록거리는 시늉을 하면서 누들 스프를 외쳤더니 영어를 할 줄 아는 직원을 불러낸다. 그녀가 말하길 메뉴엔 없지만 만들어 줄 수 있다길래 그럼 그렇게 해달라고 했다. 닭고기, 닭발, 계란, 야채와 생강을 넣고 끓인 밀가루 국수가 나왔는데, 닭육수로 끓인 칼국수 맛과 비슷하다. 아까 그 할머니가 끓여 주신 것이라 생각하니 더더욱 집에서 먹는 것 같네. 기분 좋게 한그릇을 국물까지 싹싹 비우고 맛있다는 말을 가이드북으로 배운 미얀마어로 했더니 웃어주신다. 발음도 교정 받고.

 

 배움이 느린 나를 상냥하게 지도해준 이바이크 아저씨와 까진 무릎에 바르라며 소독약을 가져다 준 이바이크 아줌마, 어설픈 미얀마어에 웃어주던 식당 할머니. 여행자 천지인 관광도시이니 상업적인 냄새가 없다고 할 순 없지만 그래도 첫느낌이 좋다. 이 정도면 양반 중에서도 안동 김씨 양반일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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