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0722 치앙마이
오늘 한 일 : 마야몰 생필품 구매, 낮잠, 선데이 마켓, 발코니에서 빗소리 들으며 아비정전에 맥주
1.
푹 자고 싶었는데 망할 출근 리듬이 여지없이 나를 깨우고 말았다.
생필품을 사러 오픈 시간에 맞춰 마야몰을 돌다가 갑자기 너무 좋아서 비죽비죽 웃음이 났다. 생활을 떠나온 것이 실감이 난 것일까. 다이소 모시모시 왓슨스 등등을 돌며 가격 비교하고 아이 쇼핑하고 마야몰 4층 식당 하나 골라 팟타이와 쏨땀으로 태국식 첫 끼를 해결했다. 팟타이는 뭐 고국에서도 자주 먹던 것이었지만, 쏨땀은 처음이었는데 매콤하고 아삭한 것이 아주 좋았다. 틈날 때마다 자주 사먹고 소스의 비밀도 배워가야겠다.
2.
이것저것 사고 집에 와서 낮잠 좀 자고 비적거리다가 걸어서 깟수언깨우 백화점에 들러도 보고 오늘의 메인 일정 선데이마켓.
크기도 크기도 세상에 크다. 5시쯤 도착해서 많이 붐비지 않았는데 시간이 지날수록 점점 불어나는 것이 느껴진다. 대개 선물하면 좋을 잡동사니들이지만 난 그런 것에 유약하므로 눈이 팽팽 돌아가는 인간인지라. 조명, 원단, 가방, 바지, 노트, 지갑 등등 동남아 느낌 나는 것들이 한가득이라 다 싸들고 가고 싶은데 정신을 차리고 사기로했던 비누와 반바지만 하나 샀다. 하지만 난 다음 주말에 또 와서 또 뭔가를 사겠지.
3.
사원 안에도 노점 식당들이 즐비하다. 쌀이 먹고 싶어 닭고기 덮밥을 사 먹었는데 거기에 뿌려 먹은 소스가 몹시 맛있었다. 된장같이 걸쭉한 갈색의 생강맛이 나는 것이었는데. 이것이 무엇인지 알아내서 어떻게 만드는지 반드시 알아내야한다.
4.
정신없이 과일 비누를 고르다가 계산하고 나가려는데 사람들이 길에 멈춰 서 있다. 스피커로 동네방네 웬 노래가 나오는데 아마 국가 비슷한 것이 아닐까 싶다. 어디서 주워 듣기로 왕이 아직도 귀한 존재고 국가주의가 심하다는 말을 들은 것 같기도 하다. 여기 있는 동안 태국 역사에 대해 좀 알아가면 좋겠는데.
5.
그래봤자 3시간 걸어 다닌 것인데 몸이 노곤노곤하고 발목이 시큰거린다. 20대 후반부터 이미 여행체력마저 떨어져 가는 것이 느껴지는데 이정도라니 좀 서글프다.
시장에서 1kg을 1000원 꼴에 팔길래 눈이 돌아가서 사 온 망고스틴에 맥주를 홀짝이며 아비정전을 보는데, 바깥 빗소리가 좋아 발코니로 나갔다.
빗소리, 풀벌레 소리가 영화 속의 빗소리와 음악과 섞여 기가 맥히게 센치해 진다. 크레딧이 올라가고 나서도 자신만만한 아비의 공허한 눈과 쓸쓸한 뒷모습이 잔상으로 맴돌았다. 다가오면 차갑게 내치고 삐딱하고 제멋대로 구는 아비의 모습은 따져보면 어리광일 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마음에 슬픔과 분노가 가득한데 누구도 미워할 수는 없어서, 아비는 차마 누구도 진심으로 탓할 수 없어 자기를 그렇게 갉아먹은 것은 아닐까. 외로움에 몸서리 치면서.
겉멋 든 생각만 가득해지네. 어쩐지 근원적으로 외로워지지만, 기분 좋게 쓸쓸한 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