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저 없이 만든 계획은 현실에서 무너진다
창업을 준비하는 많은 사람들을 만나며 한 가지 공통점을 자주 목격합니다. 대부분의 예비 창업자들은 사업을 시작하기 전, 계획서부터 완벽하게 만들려고 합니다. 시장조사, 경쟁사 분석, 비즈니스 모델, 수익예측까지 정리된 사업계획서를 손에 들고 이렇게 말합니다. “이제 거의 준비 끝났어요. 이제 실행만 남았습니다.” 하지만 저는 그럴 때마다 속으로 이렇게 생각합니다. “당신은 아직 아무것도 시작하지 않았습니다.” 왜냐하면, 그 모든 계획은 ‘가정’일 뿐이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대부분의 가정은 현실에서 틀립니다.
우리는 종종 ‘시장’이라는 단어에 속습니다. 수조 원 규모의 산업, 빠르게 성장하는 트렌드, 수많은 경쟁자들… 이 모든 숫자와 단어들은 ‘있을 것 같은 기회’를 그려주지만, 그 안에 있는 ‘진짜 유저’는 그려주지 않습니다. 사업계획서 안의 시장 분석은 너무나 익숙한 형태로 작성됩니다. TAM, SAM, SOM 구조에 맞춰 퍼센티지를 나누고, 수십 페이지에 걸쳐 수치를 근거로 붙이죠. 그러나 이 수치들 속에 실제 내 서비스를 필요로 하고, 사용할 준비가 된 유저는 존재하지 않습니다. 그들은 보고서 안에 있는 게 아니라, 현장에서 당신의 서비스를 냉정하게 평가할 사람들입니다. 그리고 이들은 계획서 따위에는 전혀 관심이 없습니다. 기껏해야 한 번 써보고, 필요 없으면 바로 지웁니다.
창업에서 가장 흔한 실패는 무엇일까요? 바로, ‘완벽한 계획’을 세운 뒤, 현실에서 한 번도 검증하지 않은 서비스를 정식으로 출시하는 것입니다. 제품 개발에 수개월, 혹은 수년과 마케팅 예산 수천만 원, 그리고 거창한 런칭 행사 이후 실제로 런칭하면 이탈률 90% 이상의 대시보드만 남게될 확률이 높습니다.
이후 창업자는 말합니다. “아직 마케팅을 본격적으로 안 해서 그래요.” “조금만 더 다듬으면 유저가 늘어날 거예요.” 그런데 아닙니다. 문제는 처음부터 그 제품을 원하는 유저가 없었다는 것입니다. 당신이 몇 달, 몇 천만 원, 수백 시간 동안 만든 그 제품은 아무도 기다리고 있지 않았던 겁니다. 이걸 알기 위해선 MVP 하나로 충분했을 수도 있었습니다. 기능을 최소한으로 줄이고, 핵심만 구현해 실제 유저에게 보여줬다면, 몇 주 만에 더 적은 비용으로도 ‘그들이 진짜 원하는 것’을 알 수 있었을 텐데요.
사업계획서를 쓰는 건 굉장히 안정감 있는 일입니다. 모든 요소를 통제하는 느낌이 들고, 데이터와 차트로 미래를 예측할 수 있을 것 같죠. 그런데 현실은 언제나 통제를 벗어납니다. 유저는 당신이 예측한 방식으로 움직이지 않습니다. 계획서 안에서는 매출이 3년 뒤 수십억이 될 수 있지만, 실제 서비스는 오픈 하루 만에 유저 3명이 전부일 수도 있습니다. 유저 인터뷰를 단 한 번이라도 해본 사람이라면 압니다. 현실은 계획서보다 훨씬 냉정하다는 걸요.
“유저는 왜 이걸 써야 하죠?”이 질문에 답하지 못한 채 수십 장짜리 사업계획서를 쓰는 건 자기 혼자 벽보고 말하는 것과 다르지 않습니다. 당신이 설득해야 하는 대상은 투자자도, 정부도, 심사역도 아닙니다. 가장 먼저 설득해야 할 사람은 유저입니다. 그들은 솔직합니다. 필요 없으면 바로 이탈하고, 기능이 불편하면 욕을 하고,
경쟁 서비스가 낫다고 느끼면 곧바로 옮깁니다. 그리고 바로 그 피드백이 당신의 제품을 현실로 이끌 수 있는 유일한 나침반입니다.
계획은 필요합니다. 하지만 순서는 반드시 피드백 → 계획입니다. 대부분의 창업자들이 반대로 합니다.
계획 → 개발 → 런칭 → 피드백, 그리고 그 피드백은 때로 너무 늦게 도착합니다. 차라리 MVP 하나로
5명의 유저에게 테스트를 돌리고, 그 중 3명에게 “쓸만하다”는 말을 듣는 게 10장의 사업계획서보다 강력한 신호입니다.
창업은 현실 위에서만 움직입니다. 책상 위가 아닙니다. 보고서 속 숫자도 아닙니다. 유저의 행동 안에서만 사업은 움직입니다. 그러니 다음번에 다시 사업계획서를 열기 전에, 작게라도 MVP를 만들어 유저에게 보여주세요. 그 반응이, 그들의 말이, 그들의 행동이 당신이 정말로 알아야 할 계획서가 되어줄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