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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노파 Apr 12. 2024

아들, 남편, 아빠의 교육

 나는 ‘어떤 교육 철학’ 속에서 자라왔을까? 나는 ‘어떤 교육 방법’을 받고 자란 걸까? 나는 올바른 사람인가? 나는 적절히 도덕적인가? 직설적인 질문들에 그렇지 못한 답변들이 되돌아온다. 그런 답변에 어떻게 자성하지 않을 수 있을까.

    

‘교육’. 아이와 함께 지내기 전에는 한 번도 고민해보지 않았던 소재다. 아이를 키우는데 사교육비가 많이 든다는 기사들. 고가의 영어 유치원을 보내는 부유한 가정들. 고등학생들의 폐관 수련 장소 같은 기숙학원. 이 정도의 이미지가 나에게 떠오른다. 한 아이의 부모가 되고서 부모로서, 아버지로서 그리고 남편으로서 어떤 교육이 나와 아이에게 닿게 해야 할까.

      

사회생활을 하며 때때로 가정교육에 대해 말해야 할 때면 좋은 부모님 밑에서 평범하고 잘 자랐다고 말할 수 있었다. 유복한 가정이었다. 금전이 아닌 올바른 부모님 밑에서 자랄 수 있다는 ‘복’을 나는 타고났다. 나는 부모님이 다투시는 걸 본 적이 없다. 언젠가 명절에 가족들이 모였을 때 관련된 이야기가 나온 적이 있었다. 부모님도 서로 싸운 경험을 제대로 기억하지 못하셨다. 그러다 아버지가 한 번이 기억이 난다고 하셨다. 아주 오래전. 아버지가 동네 친구분 집에 가셨다가 그 집 고추장을 드시고 집에 돌아오셨다. 어머니께 우리 집 고추장보다 맛 좋았다는 말을 전하신 아버지는 어머니께 혼났었다는 사연을 들려주셨다(참고로, 우리 집 장들은 어머니가 메주로 손수 만드신다).

     

나는 위로 누나가 넷인 남매의 막내다. 10대에는 이 사실이 아무런 영향도 미치지 않았다. 그러나 이 사실을 타인에서 알리는 게 20대 초반에서 중반까지는 외부에서 나를 판단할 잣대를 내가 손수 주는 것 같았다. 그럼에도 그 사실을 말해야 할 때면 한 번도 부끄럽거나 위축된 일은 없었다. 적어도 나는 '나'를 귀여움만 잔뜩 받고, 천덕꾸러기의 안하무인이 아님을 단언할 수 있다(남들은 어떻게 생각하는지 묻고 싶진 않다). 잘못된 행동을 하면 그 시절의 다른 집들과 비슷하게 말과 매로 적절히 혼나며 컸다. 부모님 또한 막내아들에 대해 사회적 시선을 염두에 두지 않고 사실 순 없으셨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평범한 아들로서 부모님이 잘 길러주셨다. 이제 30대의 나는 부모님에게 여러 형태의 감사함 밖에 보이질 않는다. 표현의 책임은 왜인지 자꾸 뒤로 밀리지만 말이다.

      

 아내가 임신하고 수많은 정보의 바다로 구명조끼 없이 뛰어들었다. 검색에 대해 검색을 그리고 다시 검색하며 검색의 반복을 이어갔다. 내가 맞닥뜨린 그리고 아내에게 적극적으로 어필했던 첫 의도한 교육은 아기의 '수면교육'이다. 아기들은 태어나서 잠자는 법도 부모가 알려줄 수 있다. 생명체로써 졸리면 자는 것이 당연하겠지만 '어떻게' 잘지는 교육할 수 있다.

    

육아의 매 시절이 꽃동산이지만 산후조리원에서 집으로 돌아오면 바로 첫 꽃동산을 맞이한다. 이때 초보 부모들은 생전 처음으로 끊임없는 울음을 맞이한다. 약 2시간마다 아이에게 수유하고 트림시키고, 기저귀를 갈기도 한 다음에 '다시' 재워야 한다. 그렇게 '다시', '다시'를 반복하다 보면 아침이 '다시' 밝아 온다. 우리는 육아 초기부터 ‘수면교육’과 ‘분리수면’을 통해서 육퇴(육아퇴근)를 나름 규칙적으로 할 수 있었다.

      

'수면교육'과 연동되어 사용되는 용어가 '분리수면'이다. 가장 우선적으로 부부는 '조그만 아기를 어떻게 혼자 재울 수 있겠는가?'에 대한 합의가 필요하다. 요즘은 보통 집 안임에도 내부에 소형 CCTV를 설치한다. 작은 크기의 카메라를 아기침대를 향해 또는 거실에 설치한다. 카메라는 여러 기능들이 있다. 동작감지, 소리감지, 야간모드 등 부모를 위한 여러 기능이 추가되어 있다. 그럼에도 분리수면을 하게 되면 가장 믿게 되는 기능은 본인의 '귀'다.

     

 나 같은 경우는 새벽에 옆 방의 아기가 잠깐 ‘부스럭’ 소리만 내도 잘 들렸다. 아이의 '낑'소리에도 나는 금방 잠에서 깼다. 평소에 흔히 말하는 '잠귀'가 밝은 편이 아님에도 잘 들을 수 있었는데 그건 내 마음속에 존재하는 '걱정' 때문일 것이다. 그럼에도 나는 그리고 우리는 분리수면과 수면교육을 적극적으로 했다.

     

수면교육이라고 특별한 건 없다. 아기가 '등'을 대고 혼자 잠들 수 있도록 도와주는 것이다. 그 과정에 있어서 부모의 관심 끄기가 핵심이고 그 정도에 따라서 방법이 또 파생된다. 부모는 일정한 시간에 매번 동일한 순서의 행동들을 한다. 이것을 수면의식이라고 한다. 만화책에서나 보던 어떠한 의식을 행한다는 게 이때가 아니면 언제 해볼까 싶긴 하다. 실제로 '수면의식'은 별 것이 없다. 부모들마다 다르겠지만 우리의 경우에는 1. 집 안 소등, 2. 아이 목욕, 3. 마지막 수유, 4. 백색소음과 함께 침대에 눕히기, 5. 아기와 스몰토크 및 책 읽어주기. 이 정도로 크게 나눌 수 있다. 처음에 아이는 부모의 품이 아니기에 운다. 당연하다. 하지만 곧 아이는 '등'대고 스스로 자는 것을 배운다. 신생아 시기에 '등'을 대고 자주시는 일은 큰일이다. 밤새 아이를 안고서 고무볼에 앉아서 아이를 재워줘야 했다는 직장 선배의 사례가 생각난다. 이와 동시에 하게 되는 분리수면은 불필요한 소음 등으로부터 아기의 수면을 보장받기 때문에 부모뿐만 아니라 아이도 수면의 질이 상승한다고 한다. 요즘은 이렇듯 별의별 고민을 다 하게 된다.

    

 통용적인 육아 교육이 아닌 '개인'적인 욕심의 육아교육은 '하늘 보기' 정도가 있다. 나는 아이를 돌볼 때 산책을 아주 자주 했다. 나와 비슷하게 아이도 아침잠이 없다. 그러다 보니 일찍 일어난 아기를 유모차나 아기띠에 태워서 함께 온 동네를 산책하고는 했다. 그렇게 아침부터 조용한 동네를 이곳저곳 돌아다니며 날씨가 좋은 날이면 아이에게 파란 하늘을 쳐다볼 수 있게 도와줬다. 알려줬다. 그것이 아이에게 어떠한 과학적 이점이 있어서 그런 것은 아니다. 내 생각을 말미암아 그러한 것이다. 하늘을 쳐다보는 것은 의도해야 하는 일이라고, 자주 해봐야 자주 한다고 생각한다. 그러다 보면 삶이 팍팍할 때 한 번이라도 쳐다보게 되는 것 같다. 사회생활을 하면서 종종 하늘을 보는 행위는 나에게 '공감'으로 다가올 때도 있었고 '낭만'으로 다가올 때도 있었다. 두 가지 모두 삶에 필수적인 요소라고 지금의 나는 생각한다.

     

좀 더 유년 시절을 회상해 보면 나에게 '하늘을 보는 행위'는 놀이의 요소였기도 하다. 한번은 학교에서 돌아오는 길이었다. 막힘없는 하늘로 존재하지도 않는 화살이나 총을 쏘며 맨홀 뚜껑에서 다음 뚜껑으로 달려갔다. 그렇게 집으로 달리고 멈추고를 반복하며 하교했다. 또는 작은 호수에서 친구들과 놀 때였다. 하늘을 한번 쳐다보고는 쨍쨍한 햇살을 확인하고 놀이 방법을 달리하기도 했다. 구름 한 점 없이 날이 좋으면 옷이 금방 마를 것 같아서 친구들과 버려진 폐자재들로 나룻배를 만들어 타고 놀았다. 쭈글쭈글하고 지저분하게 마른 옷을 입고 집에 돌아온 아이를 맞이한 부모님이 어떤 생각이셨을까 문득 궁금해진다. 은근히 깨끗했으려나.

     

이러한 이유들이 여러 형태로 뭉쳐서 오늘날의 나는 우리 아이가 하늘을 종종 스스로 쳐다볼 수 있는 아이로 자라길 바란 것 같다. 언젠가 아이가 먼저 나에게 파란 하늘을 먼저 보라고 권유하는 날이 오면 좋겠다. 그리고 그때가 아마 ‘하늘 교육’의 종착지가 아닐까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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