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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도 나는 이렇게 아빠가 되어간다

두 번째 수능을 치르러 가는 아들을 보내고

by 아메바 라이팅

12월 학력고사 한파를 겪었던 우리 세대에게 11월 수능은 여유 있는 호사인 줄 알았습니다. 아들이 두번째 수능을 치르는 날. 5년 만의 한파라는 오늘 아침이 유난히 어둡고 추웠습니다.


작년 이맘때. 너무나 번잡하고 쓰라린 풍파를 치르느라 아들의 수능 시험이 대수롭지 않았습니다. 그저 그때까지 지나왔던 여러 시험 중의 하나처럼 제게 큰 긴장 없이 웃으며 보낼 수 있었습니다. 고등학교 재학 중이던 시절이라 굳이 정시가 아니라도 수시 결과를 기다리던 백업도 있었으니까요. 그래서 여유를 부리는 호사가 가능했을 것입니다.


하지만 수시에 대한 기대를 버리고 정시에만 올인하는 올해. 제가 28년 전 치렀던 대학입시보다 더 긴장되고 걱정되는 것이 유별나게 느껴지실 수 있습니다. 저 또한 지난해 그런 부모의 입장이던 친구나 선배들을 보면서 같은 감정을 느꼈으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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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들이 며칠 전 학원이 종강되면서 학원에 두었던 참고서와 시험지들을 싸들고 왔습니다. 자기 방에 내려놓고는 하염없이 가만히 바라보다 회한에 잠겼는지 눈시울이 붉어지는 것을 보았습니다.


엄마의 말로는, 그날 짐을 챙겨 집으로 돌아가기 전 학원에서 재수생활을 같이 한 친구들과 함께 울면서 서로를 격려하고 칭찬했다고 합니다. 그리고 한참을 서로가 울며 부둥켜 안아줬다고 합니다. 지금까지 잘 견뎠다,라고 서로의 어깨를 두들겨 주었다고 합니다. 아직도 여리고 어린 친구들입니다. 그리고 그들은 나의 아들이고 우리의 딸입니다.


6시 오늘 새벽 이른 시간에 일어나 아파트 창 너머로 풍경을 바라보았습니다. 오렌지빛 태동이 힘겹게 검푸른 어둠의 장막을 이겨내는 중이었습니다. 무겁고 어두운 장막을 밀어내려고 발버둥 치는 태동하는 태양이 오늘 제 아들의 아침과 같았습니다.


평소와 다름없이 수험장에 가겠다며 평소의 아침식사와 평소의 슬리퍼를 질질 끌던 습관대로 엄마와 함께 제게 인사하고 현관문을 나섰습니다. 마음 같아서는 함께 따라가고 싶었지만, 혹여나 부담스러울까 아들에게 짧은 인사말만 던졌습니다.


긴장하지 말고 여유롭게 쳐, 그리고 저녁에 맛있는 거 사 먹으러 가자. 예약해 둘게.


아들이 바라는 성적으로 오늘 수능의 결과를 얻는다면 바랄 것이 없겠지만, 순진하고 우직했던 아들의 신념을 생각한다면, 하느님께 단 하나의 소원만을 빕니다.


제 아들만이 오늘 시험을 잘 치르게 해달라고 제 소원을 말하지 않습니다.
아들이 노력하고 인내하고 참아왔던 그 정성만큼,
아들에게 밝은 눈을 주시고 아들에게 맑은 정신을 주시고 아들에게 현명한 판단력을 주십시오.




길지 않은 글로 오늘 아들의 건투를 빌며, 누구랄 것 없이 각 집안의 자랑스러운 자녀들이 각자의 노력에 걸맞은 최대한의 능력을 각자가 원 없이 발휘하도록 빌어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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