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아메바 라이팅 Nov 28. 2019

서서 쏴는 이제 그만. 앉아 쏴로 전향하라

남자가 봐도 이상한 남자의 소변 습관

"아니,  화장실 대리석이 썩었잖아요!"



집주인 아주머니가 불같이 화를 내며 화장실 바닥의 고급 대리석을 가리킨다. 변기 주변의 대리석 색이 누렇고 일부는 부식되어 표면이 거칠게 일어나 있었다.


화장실 손해에 대한 보상금으로 보증금에서 1,900유로를 주라는 판결을 구합니다.


집주인은 지방법원에 소송을 제기했고 세입자는 서서 소변보는 것이 상례라는 주장을 하며 억울해했다. 결국 '앉아 쏴'를 하지 않은 남자가 법적으로도 손해를 보상해야 하는가라는 희대의 변곡점에 들어섰다.


판결은, '앉아 쏴'에 대한 인식이 확대 중이나 '서서 쏴'가 아직은 보편적이므로 보상할 필요가 없다, 라는 것이다.


여기서 주목할 것은, 곧 머지않아 '서서 쏴'에 대한 인식이 보편화로 이어질 것이라는 것과 그때는 처벌이나 보상의 원인이 된다는 점이다.


나는 갑자기 이 뉴스를 보고 이상한 생각이 들었다.
왜 바닥 높은 곳에서 오물을 눌까?


지아 창, Omerta 퍼포먼스 일부

대변을 볼 때 서서 보는 사람이나 문화가 보편적이다. 보편적이라고 하는 이유는 일부 남유럽 국가에서 근대  시기까지도 남녀가 모두 서서 용변을 봤다. 완전히 직립한 상태가 아니라 살짝 무릎을 구부리고 엉덩이를 뒤로 뺀 모양이었다.


물론 귀족이나 부르주아들이야 좌변기 양식의 화장실을 이용했지만, 일반 서민들은 우리네 재래식 화장실 같은 곳에서 두 다리를 벌이고 바닥 구멍을 조준해 대소변을 보았다. 그래서 서서 보는 용변은 정말 미개하고 지저분하기 이를 데 없다.


그런데 왜 남자들에게는 서서 소변을 보도록 관습화 되었을까? 야외에서나 급한 용무 시에야 바로 요도를 밖으로 꺼내 들어 소변을 보는 게 편하고 빠르다. 하지만 소변을 받아내는 기구가 한정된 공간이라면? 즉 지금의 변기라는 특정 공간의 기구에 소변을 누어야 한다면 이는 위처럼 그저 방출로 끝나는 문제가 아니다.


현대의 좌변기 문화가 정착되고도 서서 쏴가 용인되는 현실이 인류 문화사적 발전 행태를 고려해도 이해가지 않는다.


서서 쏴는 세 가지 이유로 비인류학적이고 비위생적이다.

첫째, 처음 소변 발은 충분히 원거리에 적합하지만 방광의 적정용량을 빼낸 후에는 소변의 방출 압력이 급격히 낮아져 '졸졸졸' 요도 끝에서 흘러내릴 수밖에 없다. 어떤 소변기나 좌변기로도 이때의 소변 오물은 받아낼 수 없다. 바닥을 흥건히 적시기 마련이다.


둘째, 남자가 사십이 넘으면 전립선 염증과 비대증으로 소변의 줄기압이 급속히 떨어진다. 자주 뇨기를 느끼며 화장실을 들락거리지만 제대로 시원하게 소변보는 일이 드물다. 매번 소변은 발아래로 줄줄줄, 졸졸졸도 아니다, 떨어져 바지를 적시지 않았으면 다행이다. 즉 소변기와 좌변기를 사용하는 남성의 절반이 변기 안으로 소변을 쏘아 보낼 능력이 부족하다.


셋째, 젊고 요도를 통한 방출압이 높은 남자는 한여름 소변기에서 자기가 쏜 소변을 자신의 다리로 반사당하는 비위생을 겪어야 한다. 높은 오물 투척 위치에 비해 발치의 매우 낮은 종착지로 이루어진 남성의 소변보는 현실이 만드는 젊은 소변 발의 반격이다.


소변기를 없애고 남자들도 좌변기에 앉아 소변을 본다면 위와 같이 미개한 현실에서 벗어날  다. 대신 지금의 여자 화장실처럼 줄지어 변기를 향하는 긴 대기줄로 고통받겠지만. 그래도 남자는 여자에 비해 긴 요도를 하느님이 주시지 않았나. 좀 더 기다려도 될 용기와 시간을 주셨다.


마지막 미개한 분뇨의 양식. 이렇게 생각한다.
 '서서 쏴'를 포기하는 그날. 인간 남성은 앉아서 여유롭게 이기로운 문명화를 맞을 수 있다.



매거진의 이전글 중국의 고액 연봉 제안에 이직한 한국 연구원의 최후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